로마에서 그분과 함께
스무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늘 우리 가난한 살림에 자랑할 게 있다면 좁은 집을 가득 채운 아버지의 책장이었거든요.
우연히 "나를 이끄시는 분"이란 책을 집어 읽게 됐어요.
같은 작가의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라는 제목의 책도 이어서 읽었는데요.
어느 예수회 신부님이 소련에 들어갔다가 체포돼 20년 넘게 감옥에서 지낸 이야기에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582955
이 책을 먼저 내고, 후에 다시 "나를 이끄신 분"을 통해 좀더 신앙 체험을 나누신 걸 거에요.
사실 읽은 지 오래돼서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몸으로 느낀 감동은 여전히 살아 있어요.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나는 나와 함께 계신 당신을 믿고 바랐습니다.
그리고 낯선 땅, 이곳 로마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며 쓰게 된 글이 있었는데요.
파일의 제목은 바로 "로마에서 그분과 함께"였습니다.
다락방에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듯, 오늘 나의 다락방에도 거룩한 영이 오셨습니다.
나는 무엇을 청해야 할지 알지 못했어요.
성령의 많은 선물이 있지만 내게 가장 필요한 걸 주실거란 믿음이 있었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가장 큰 선물임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그 함께 함에 힘을 얻으며 차분하게 머무르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로마에 와서 낯선 언어로 낯선 학문을 만났을 때 쉽지는 않았지만 물러서고 싶지도 않았어요.
낑낑거리며 자료들을 읽고 정리했는데 오늘 보니 참으로 재밌더라고요.
많은 질문과 고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너무 나다웠어요.
먼저 공부한 학생들에게도 자주 물어보고 또 혼자서 이것저것 찾아봤었지요.
누군가는 내 노력의 흔적을 엿보았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다락방에서의 공부를 조용히 숨겨버렸어요.
그런데 지난 자료들을 훑는 내 손끝에서 당신이 느껴지는 거 있죠.
나를 다독이며 늘 함께였을 당신 말이에요.
나는 나의 다락방이 참 좋습니다. 항상 여기서 당신을 찾고 그리워합니다.
늘 의심을 하고 질문을 하죠. 그러나 물음표는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확실한 답이 주어지지 않아 나는 계속 찾고 묻게 될 거예요.
답답하지 않아요. 당신께서 나를 이끄실 테니까요.
내 물음은 당신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더 사랑하기 위한 나의 열망의 표현일 테니까요.
당신은 꾸준히 나의 열망을 키우십니다.
나와 함께 있다고,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네요.
그러니 주님, 나는 이 다락방 전부를 내어 당신께 드릴게요.
이 공간에 배어 있는 모든 시간의 흔적들이 당신의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당신 소유 아닌 게 없으니 이 한가운데 숨 쉬고 있는 나야말로 온전히 당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