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의 거리

의미를 찾는 소명

by 어엿봄

나에겐 그들의 겉을 보고 속을 판단할 권리가 없을 텐데요.

오늘 길을 걷다 많은 사람들을 보았어요.

처음엔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들의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을 보고 세상 걱정 없을 관광객이라 생각했어요.

나야 물론 관광을 하러 여기에 온 것은 아니지만 이 시간과 공간을 누린다는 것에 대해 늘 부채감이 있지요.

그들 곁을 지나가며 나는 미안했어요.

휴가 하루 쓰지 못하고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

고용 불안으로 안전한 일터를 보장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

그 작은 이웃들에게 나는 너무 미안했어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거리로 나가 울분을 쏟아내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순 없습니다.

나에겐 나의 삶의 터전이 있고 내가 매일 살아내야 할 몫이 있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유난히 노숙인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우리 동네에 유명한 이태리 가정식집이 있는데 거기엔 늘 줄이 길게 늘어서있거든요.

맛있는 한 끼를 위해 한참을 마다하지 않고 시끌벅적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뒤로 누군가 힘없이 누워있었어요.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고 문득 겁이 나 살짝 돌아 지나갔어요.

나는 그의 눈을 마주칠 용기가 아니 그를 나의 이웃으로 안아줄 사랑을 갖지 못했습니다.

저 멀리 고국의 노동자들을 생각한다는 내 마음이 순간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사람에 아프고 미안하고 또 초라해지는 이 마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내일은 성령강림대축일이에요.

나는 오십 일간의 부활 축제를 마치는 이 시점에 다시 죽음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어요. 그것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으니까요.

사랑해서 다 바친 생명 덕분에 세상이 다시 태어났습니다. 희망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제 성령이 내려오시면 우리는 그 힘을 받아 세상 끝까지 당신의 사랑을 증거 할 수 있을 거예요.


성령은 나의 이 자리를 축복할 것이고, 또 오늘 만난 관광객들과 노숙인들의 자리 또한 축복할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 곳곳을 새롭게 하는 그 영에 우리는 각자의 몫 그러나 하나인 몫을 살게 될 거예요.

나의 삶은 조금 다릅니다. 관광객들 틈에 섞여 즐기기엔, 노동자들의 곁에 서서 싸우기엔, 노숙인들과 함께 밥을 나누기엔 나는 어쩌면 멀리 와 있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오늘 마주한 그 숱한 얼굴들을 존중하노라고요.

우리는 모두 존엄한 존재들입니다. 내가 함부로 그들의 겉을 보고 속을, 그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평가할 순 없어요.

그렇게 우리는 모두 높고 귀한 존재들이니 각자의 부유함과 가난함으로 존엄함을 살아내고 있어요.

가려진 그 의미를 찾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어쩌면 그들의 의미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 의미를 찾고 사랑하고 싶은 소망이 내 마음의 본질은 아닐까요?


성령께서 나의 눈을 밝혀주시고 나의 귀를 열어 주셔서, 새롭게 세상을 보고 듣길 희망합니다.

나의 입 또한 새로워져서 작은 이웃들의 의미를 말해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렇게 희망의 존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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