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경계에서
요즘 비가 자주 온다. 한 번씩 쏟아진 후 맑게 개인 하늘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없다. 아직 다 쏟아지지 못한 말들의 무게만큼이나 먹구름도 잔뜩 끼어있지만 그것 조차 멋스럽다. 한 8년 전이었던가. 서울 한복판에서 한가하게 하늘을 바라보다 구름의 탄생과 소멸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작은 하얀 점이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나중에는 다시 빛깔과 형태를 잃어가며 내 눈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 순간을 구름의 탄생과 소멸이라 명명했다. 내 시야에 잠시 머물다 간 그 구름을 알아봐 준 건 나뿐이라 믿었다. 그게 그렇게 기쁘고 좋았다. 마치 어떤 특권이라도 받은 듯 말이다.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세상을 읽고 해석한다. 다양한 형태와 빛깔의 구름의 생애에 각자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과 같다.
상대방의 얼굴에서도 나는 내 얼굴을 읽는다. 때론 그의 슬픔과 눈물에서 지난 시절의 아픔을 떠올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 기쁨과 환희에 나도 모르게 함께 미소를 짓기도 한다. 그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나는 오늘 그의 얼굴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사랑을 갈구하는 나를 보았다. 습관처럼 나 자신을 의심하고 책임을 묻던 나는 내 얼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사랑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두려움에 주눅 든 나의 얼굴엔 슬픔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 슬픔을 손끝으로 만지면 온몸을 물들일 것 같아 차마 거울 너머의 나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런데 그 슬픔은 내 앞의 그의 얼굴에서 또한 번져나고 있었다. 그가 살고 있는 시공간의 한 올이 내 세상에 와닿았다. 그 한 올의 촉감이 낯설지 않다. 마치 내 몸에서 빠져나가기라도 했듯 익숙하다. 어디까지가 나의 이야기고 또 어디서부터 그의 이야기일까.
이렇게 나는 혼돈의 경계 속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또 너와 내가 얽히고설켜 무엇이 슬픔이고 기쁨인지 모를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숨 쉬고 있는 것만 같다.
직면할 때다.
이 시간과 공간을 고스란히 살아내며 온몸으로 다 받아들이고 느껴야 할 때다. 한 올 한 올의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도록, 그렇게 깨어 찬찬히 느껴야 할 때다. 우리가 서로 품어 온 한 올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니 살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당신을 잃을 것이다. 당신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려 당신을 잃고, 또 나 또한 잃을 것이다. 그대의 얼굴을 바라보고 싶다. 그대의 얼굴이 그리는 그 꿈을 품어주고 싶다. 내 슬픔에 빛바라지 않은 또한 당신 슬픔에도 빛바라지 않은 우리의 얼굴이 그리는 꿈을 응원하고 싶다.
우리 사이의 분명한 경계에 선 그날, 나는 내 입으로 이 두려움을 넘어 사랑으로 건너간다 말하리라. 나는 온전한 내가 되어 당신에게 새겨진 슬픔과 아픔 그리고 행복을 나눠 담으리라. 하여 그대 때문에 아프고 또 그대 때문에 행복하노라고 온전히 그대의 시공간에 함께 머무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