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주소서.
당신께서 사람이 되어 사셨던 그 땅을 밟아본 적이 없어요.
당신께서 사람을 살리고자 돌아가신 그 땅을 밟아본 적이 없어요.
다만 제 손에 그 땅의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있습니다.
당신이 죄를 없애시기 위해 돌아가신 그 땅엔 아직도 죄의 상처가 움푹 파이고 있어요.
총성이 울리지 않고 화염에 휩싸이지도 않은 나의 안전한 이 땅에서도 나는 늘 불평을 해요.
어제오늘 갑자기 더워져서 몸이 뜨거워졌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서 넋 놓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해마다 여름은 뜨거워지죠. 불평 또한 점점 커집니다.
우리 인류가 짊어져야 할 지구의 고통임을, 가난한 이웃의 아픔임을 잊어버린 거겠죠.
나의 땅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있어요.
평화를 잃어버린 마음, 그리고 불안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나는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겠죠.
밤새 울리는 사이렌에 잠 못 이룰 사람들을 생각하면 많이 미안해져요.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내가 누리는 평안함에 미안해집니다.
하지만 사실 미안해할 필요 없이 내가 누려도 되는 평안함일 거예요.
나의 평안함은 여기에서만 머물 게 아니라 그들에게도 나눠져야 할 우리 모두의 몫일 테니까요.
주님, 당신께서 세상을 이기셨고 평화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죄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죄를 짓고 죽음의 길을 택합니다.
가끔 나는 절망에 빠지고 슬피 울어요. 누군가의 죄는 나에게 상처를 남기니까요.
많이 화가 났어요. 그런데 나는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길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 남아 있군요.
죄짓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도망치지도 않겠습니다.
자신만의 안전한 땅을 견고히 지키면서 누군가의 땅을 불태우는 그 죄를 똑똑히 보고 기억할 거예요.
우리가 이깁니다. 평화가 옵니다.
세상 첫자리부터 함께였던 사랑의 힘이 크니 평화가 올 거라고 믿어요.
그러나 우리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일치와 연대를 위해 부단히 힘써야 한다는 것.
서로의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이뤄낼 생명의 길로 같이 걸어가야 한다는 것.
그 진리를 잊지 않도록 당신의 성령께서 이 시대를 이끌어가시길 바랍니다.
고요한 이 밤,
한낮의 열기가 식은 숲에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분노와 화로 한껏 달구어졌던 우리네 마음의 온도가 단 1도라도 내려가도록 이 밤을 축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