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야 할 것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축일

by 어엿봄

오늘 아침엔 든든하게 챙겨 먹고 싶었어요.

일찍 잠에서 깼지만 공동체 기도와 미사에 참석하지 않고 대신 천천히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유 있게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었지요.

원래 계획은요. 시험 후에 도서관에 남아 있다가 이냐시오 성인 경당에서 기도를 하고 옆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거였어요. 시험을 마치는 건 내일이지만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오늘 꼭 들르고 싶었거든요.

성인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신 작은 경당이 있는데 저의 최애 장소라고 할 수 있죠.

자주는 못 가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때에 항상 들러 기도하는 곳입니다.

오늘 안토니오 성인의 축일에 이냐시오 성인께 가겠다니, 안토니오 성인께 살짝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안토니오 성인을 만나고 왔습니다. ^-^


요 며칠 주어진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쌓이긴 했나 봐요.

도서관에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잠시 한숨 돌리려고 했는데 너무 지쳐서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어요.

이러다간 내일 시험에 지장이 있겠다 싶어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동네에 있는 안토니오 성당에서 매 시간대 미사가 있었으니 우선 그걸로 된 거죠.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은 잃어버린 뭔가를 찾아주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강론 때 주례 신부님께서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물으시더라고요.

우리가 잃어버린 건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그 신앙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어요.

그 질문을 계속 품고 미사를 마치고는 친구 A를 만났어요.

환대를 잘하는 친구인데 덕택에 시원한 음료와 간식거리를 누릴 수 있었어요.

종알종알 그간의 노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주님, 제가 잃어버렸고 다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사실 어젯밤에 좀 괴로웠어요. 아니 괴로웠다기보다는 혼란스러웠죠.

고통에 깊이 머무르려는 나의 지향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지 헷갈렸어요.

나는 그것이 당신에게서 왔다고 믿었는데 내가 다시 어둠에 안주하려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더라고요.

밤잠을 방해할까 그 생각들을 책상 위에 던져 버리고는 나에게 말했어요.

'지금은 더 고민할 때가 아니야. 다음에 좀 더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우선은 잠시 치워두자.'

그러고는 잊어버리고 오늘을 살았습니다.


십자가는 내 삶의 목적이 될 수가 없어요.

십자가는 단지 수단일 뿐인 거예요. 더 사랑하여 생명을 얻게 되는 길과 같은 거죠.

우리의 고통도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거예요.

고통에 머무르겠다는 건 누군가의 아픔을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절망의 순간에 땅에 엎드려 목이 쉴 때까지 울겠다는 건요. 희망의 힘을 믿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진짜 끝은 아니라는 걸 알아서 마음껏 머무를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언제까지 그 머무름을 내게 허락하실 건가요?

얼마 동안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거죠?

이 모든 건 모두 나의 책임인가요? 나에게 결정권을 주신 거예요?


사실 나는 알고 있어요.

그 어떠한 시간에도 당신이 나와 함께 하고 이끌어주신다는 걸요.

그래서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어요.

내가 행여 일어나야 할 순간을 놓치고 너무 오래 땅에 엎드려 있어도

코앞에 다가온 희망을 끌어안지 못하고 절망 속에 눈 감고 있어도 당신이 다 이끌어주시리란 걸요.

당신이 말씀만 하시면 나는 나의 의지로 일어설 거예요. 눈을 뜰 거예요.

숱한 물음표들을 잠시 지워두고 좀 쉬고 싶습니다.

무얼 잃어버린 건지 아직 알지 못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편안히 쉴 테니 제 머리맡에 두고 가셔요.

새로운 선물도 좋아요. 어린 시절 산타 할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제게 꼭 필요한 걸 놓고 가셔요.

여름의 성탄도 참 아름다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