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의 단상

지겨울 때 나는 나를 들여다봐요.

by 어엿봄

내가 좀 더 냉정하게 사람들을 대할 때엔 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란 걸 얼마 전에야 문득 깨달았다. 유난히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끝없이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거나 예의 없이 툭툭 나를 건들거나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친절을 나누기란 쉽지 않다. 때론 웃음기 거둔 차가운 표정으로 그들을 대한다. 나는 소위 정색을 할 때 상대를 무섭게 한단 말을 듣곤 했다. 언성을 높여 화를 내지 않는다. 대신 차분한 목소리로 아주 정확하게 내 기분과 의견을 표현한다. 그게 상대방을 더 언짢게 할 때가 많았다. 상대는 내게서 어린 시절 그를 괴롭혔던 선생님이나 혹은 양육자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화와 분노에 차 있는 상대를 대할 때에도 나는 결코 같은 방식으로 되갚지 않는다. 타오르는 감정이란 식힌 척해두고 하나씩 이성적으로 따지는 나의 태도는 상대방의 화를 돋우기도 했지만, 최소한 나는 나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다. 이성적으로 따지는 나의 차가움에 사실 상대는 나에게 더 화 낼 명분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차가움이 싫다는 사람들은 내게 적어도 한 번쯤은 상처를 준 이력을 지녔다. 나는 나를 따라다니는 그 냉정함이라는 꼬리표가 사실 너무 싫었다. 사람들을 대하는 그 차갑게 굳어버린 나의 마음에 많이 서러웠다. 아무리 밝게 웃어 보여도 나는 언젠가는 다시 냉정함을 찾으리라는 그 현실이 야속했다. 어쩌면 내 마음은 원래 차갑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게 끔찍하게도 싫어서, 심지어 상대가 먼저 내게 상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호하려던 차가움에 그가 아파했다는 게 나를 힘들게 했다. 죄책감이 들곤 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나에겐 나를 보호할 명분이란 게 있었다. 나 역시 화와 분노를 살아낸다. 그 뜨겁게 솟아오른 불기둥에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불기둥에 손끝 하나 데고 싶지 않듯이 내 불기둥이 당신과 세상에 피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유 없는 당신의 차가움에 여러 차례 상처를 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유 있는 나의 냉정함으로 당신에게 맞서고 싶다. 그러니 차갑게 마음이 굳어버리는 건 다 살기 위한 내 마음의 계략일 것이다. 내 마음은 이토록 똑똑하다.


많은 것들에 마음이 쓰인다. 내가 아주 많이 민감한 사람이란 걸 굳이 상기시켜 주는 나날들이다. 한편으로는 단순하게 마음의 창을 열었다 닫기도 한다. 마치 내 침실의 창문을 반복해서 열고 닫듯이 말이다. 내 침실은 동향이라 아침에 해가 떠오르면 창문을 닫고 또 블라인드도 내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열을 차단한 후, 점심 넘어 오후에서야 환기를 시키기 시작한다. 한밤 중에 뜨거워 몸을 이리저리 굴리기도 하지만 열이 식는 어느 순간 정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발끝이 시리게 하기 충분하다. 창문을 활짝 여는 건 그 바람을 맞기 위함이다. 다시 해가 뜨는 아침엔 어김없이 창문을 닫아야 한다. 이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을 따라 나를 열고 닫는다.


내 감각을 타고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 잠시 고요함에 모든 걸 가라앉힌다. 성난 파도와 폭풍우에 배가 뒤집힐 상황이 되었는데도 꿈쩍 않고 주무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분과 만나는 일이다. 그분의 현존을 기억하고 내 안에 품는 일이다. 나는 그 존재 안으로 들어간다. 다른 것들은 지우개로 쓱싹쓱싹 지워버린다. 모든 배경들을 지워버리고 오직 그분의 얼굴을 본다. 그 앞에선 나의 차가움도 뜨거움도 그 무엇도 중요하지가 않다. 순수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이다. 나의 얼굴도 그처럼 빛나고 맑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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