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워야 할 것
아직 6월 말인데 최고 기온이 섭씨 35도를 넘어선다. 한낮에 실내에 있는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이탈리아 전국이 그야말로 시뻘겋다!
그러나 나는 아직 선풍기를 꺼내지 않았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이 불타는 여름을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긴 하다. 매년 더 덥고 더 힘들다. 몇 년 전까지 한국에 있을 땐 여기저기 더위를 피할 곳이 많았다. 대형서점, 쇼핑몰, 식당, 지하철, 도서관 심지어 은행 ATM 부스까지 그야말로 조금만 움직이면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에어컨 바람을 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추위 보다 더위에 강한 나는 냉방병을 자주 앓곤 했고 부득이하게 에어컨 바람에 장시간 노출된 날엔 꽁꽁 싸매고 바들바들 떨어야 했다.
에어컨 바람이 차가울수록 거리는 더 뜨겁다는 걸 알게 됐을 무렵, 서울 쪽방촌에서는 전기세 탓에 선풍기조차 맘껏 돌리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나는 또다시 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매년 더워지니 에어컨이 있는 곳에선 켤 수밖에 없는데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가 모여 결국 북극곰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열기를 뿜어내지 않는 선풍기를 돌리자니 전기세 걱정 없이 사는 나의 부유한 처지에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땐 하릴없이 강풍으로 선풍기를 틀고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렇게 괴로움과 부끄러움 잊을 만큼 뜨거운 더위가 곧 나를 찾아오겠지. 나는 꾸준히 스스로에게 추위보단 더위가 낫다며 말하면서도 식지 않는 밤에 짜증을 낼 것이다. 아마 부끄러움과 괴로움을 잊은 나에 대한 불만이기도 할 거다.
불타는 여름엔 그렇게 늘 북극곰과 가난한 이웃을 떠올린다. 더 더워질수록 정비례하게 미안함이 더 커질 것이다. 나는 그들의 편에 서는 걸 자연히 포기하게 될 테니 말이다.
여름밤이 이미 덥다. 요즘 정말 너무 피곤하다. 더위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운 건지 아님 어지러워 더 덥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불타는 여름을 막아낼 재간이 없듯이 모든 게 나의 책임은 아니다. 착각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진실로 그렇게 힘과 능력이 있어서 모든 기후변화를 통제할 위인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통제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나를 탓하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으련다.
덜 발달됐고 더 가난한 지역의 이웃들이 외롭게 감당해야 할 몫은 여전하다. 우리가 문명의 혜택을 부끄러움 없이 누리는 동안 그들은 무겁게 그 짐을 짊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
그러나 내 모든 책임은 아니라 할지라도 나는 이 부끄러움과 괴로움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기억하며 내 마음에 품을 것이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이 마음 그러나 가장 뜨거운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 이 마음을 불태워 하늘에 모두 날려버리리라. 하늘은 이 땅을 결코 잊지 않으리니, 그가 우리의 수고로움과 고생을 모두 안아주리라. 진정 하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여, 불타는 여름의 모든 피조물을 다 끌어안고도 인자한 미소를 잃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