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태 12,8)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태 12,7-8)
배가 고파 밀이삭 서리를 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이 드셨을 것이다. 바리사이들은 그들을 보고 바로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율법의 외적 행위만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져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법과 원리가 사람을 구속하는가. 그러나 진정한 안식일의 주인은 오직 주님뿐이시다.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이 백성은 말로만 나와 가까운 체하고 입술로만 나를 높이는 체하며 그 마음은 나에게서 멀어져만 간다. 그들이 나를 공경한다 하여도 사람들에게서 배운 관습일 따름이다. (이사 29,13)
마음이 멀리 있으니 그들의 온 존재가 주님에게서 멀리, 이웃에게서 멀리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조차도 멀리 있다. 주님이 나누고자 하시는 것은 가까이 지내는 우정인데 말이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은 양들의 착한 목자로서 모든 양들의 이름을 알고 하나하나 불러내신다. 그 부르심은 언제나 우리들의 자유와 존중을 전제로 한다. 또한 그분은 종을 부리는 주인이 아니라 벗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는 주인이다.
안식일의 주인은 우리가 스스로를 재단하고 속박시켜 온 삶의 관습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하신다. 그 자유를 누릴 권한은 그러나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안식일의 주인은 모든 것의 주인이다. 그분은 삶도 죽음도 다스리신다. 고통도 기쁨도 모두 그분의 것이다.
아주 작은 불안의 티끌이 나를 어지럽힌다. 마음이 그분에게서 멀어지고 입술만 남으니 마치 텅 빈 자루와 같다. 그 멀어진 마음을 주님께로 다시 돌려드림으로써 나는 나의 안식처를 찾는다. 오늘도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그렇게 주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기를 기도한다. 나는 나의 안식일을 즐거이 누릴 것이다. 나의 안식일에, 주님께서는 나를 다시 당신 곁으로 가까이 부르시니 불안을 가져오는 나의 법과 원리를 잠시 벗어둔다. 신을 벗어두고 불타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에 다가가 주님을 만난 모세처럼 나는 한걸음 한걸음 다시 나아간다. 나를 위해 타오르는 그분의 심장을 그렇게 다시 모신다. 언제나 시작해야 할 지점은 그분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