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마태 12,21)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마태 12,17-21)
그러고 보니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병든 이들을 고쳐주며 갇힌 이들을 풀어주는 데에 있어서 조용하고 편안한 방식을 택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러나 평화가 아니라 칼을,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마태 10,34-36 참조). 우리 마음속을 시끄럽게 울리는 건 우리가 따르던 관습과 믿어오던 신념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소식에 마음을 열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히려 할 때 스스로를 방어하겠다고 내세우는 무기들은 서로 부딪혀 굉음을 낼 것이다. 오늘 복음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데 그들의 속내는 매우 시끄러웠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믿고 기존이 그들이 살아오던 거짓 평화와 일치를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히브 4,12)
주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가려내고 드러낸다. 그러나 그분의 방식은 고요하고 부드럽다. 그분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인내하신다. 그분 스스로 희망을 버리지 않으시니, 모든 민족들이 그분의 이름에 희망을 건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유일한 성당을 포격하여 그곳에서만큼은 안전하리라 믿었던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갈대는 부러졌고 심지의 불이 꺼져 연기만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나는 그분이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또 사랑하심을 잘 안다. 그 자애로운 심장이 다시 꿰뚫려 아파함을 느낀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상처와 치유는 공존한다. 아픈 만큼 사랑하니 그 사랑만큼 낫는다. 얼마나 큰 사랑인지 나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나는 부러진 갈대를 꺾어 버리고 연기 나는 심지는 싹 다 모아들여 버리고 싶어진다.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가 내 기준에 따라 마음과 행동을 바꾸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그는 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히 용서를 헤아려 본다. 그가 바뀔 거라 예상할 수 없고, 나의 선을 선으로 되갚아줄 것을 믿을 수 없기에 나의 용서가 빛날 것이다. 희망할 수 없기에 희망하는 자는 복되다. 희망이 없어도 감히 용서를 논한다. 그분의 이름이 내 안에 있다면 그분이 이뤄내지 못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불편하지 않게 아주 천천히 그리고 또 조용하게 나의 평안을 이뤄내실 그분이 여기 계시다. 언제나 사랑받는 그 영이 내 안에 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