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생각의 흐름 끝에 만난 레몬꿀청

by 어엿봄

요 며칠 에어컨 바람을 좀 세게 쐬었더니 어제부터 편도선이 붓기 시작했다. 소염진통제를 먹고 쉬었다. 약효가 있을 때는 통증이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파오는 걸 보니 며칠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긴 하다. 말을 하기가 싫다. 아직까지 목소리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그냥 말을 하기가 싫다. 공동체 생활이 불편해지는 순간이다. 힘들지만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걱정되었던 건 바로 나의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 생활을 하면서 함께 하면서도 나 자신을 찾고 보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보장된 개인의 시간과 공간은 다시 공동체로 나를 내어놓도록 힘을 준다.


내가 사는 기쁨과 슬픔은 오로지 내 개인의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함께 나눌 권리와 의무를 나는 살고 있다. 나는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고 희망해 볼 만한 곳이라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같이 나아가고 있는 이 길의 끝에 참 평화와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안내하고 싶다.


공동체가 내가 사는 기쁨과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가장 힘들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는 순간이다. 나는 자매들에게 소소하게 나를 열어 보이고 나누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조금 차갑다고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내 안에는 늘 칭찬받고 사랑받고 싶은, 진정한 나로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과 체험들의 진중함을 여과 없이 나누고 싶다. 그런데 나눈다 한들 그대로 전달되고 이해되리라는 데에 자신이 없다. 모든 사람이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내가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니까.


언젠가는 이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다시 존재함을 생각한다. 내가 받는 사랑의 크기를 따지지 않고 나는 공동체에 나를 조용하고 평안한 존재로 제공하기를 희망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누구나 와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고 싶다.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한 외국인 자매가 작은 유리병을 들고 서 있다. 저녁식사 때 목수건을 한 나를 보며 아프냐고 물었던 그녀는 직접 담근 레몬꿀청을 가져왔다.


어쩌면 사랑에 갈증을 느끼는 나는 시원한 샘이 바로 앞에 있는 데도 눈이 가리어져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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