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아가 3,4)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요한 20,16-17)
예수를 잃어버려 울고 있던 마리아는 과거에 갇혀 있었다. 자신이 지나온 고통의 길을 다시 걸으며 그 아픔과 슬픔을 살아내는 중이었다. 예수를 잃어버려 전부를 잃어버린 그녀는 그렇게 그 부활의 아침에 깊은 어둠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는 새벽을 밝히는 동쪽 해와도 같았다. 마리아의 몸과 영혼을 일깨우는 그 목소리에 그녀가 살아온 사랑이 다시 생명을 찾는다. 과거의 슬픔과 아픔이 아니라 행복과 기쁨이 새로워진다. 주님이 살아나셨다. 그리고 그녀는 주님을 본다.
그렇게 옛것은 지나갔고 모두 새것이 되었다 (2코린 5,17 참조). 그녀의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옛것으로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 새롭게 태어났다. 십자가 사건의 비극이 덮고 있던 과거의 진실이 드러나 새로워지는 순간이다. 그 비참한 장면 뒤에 사랑, 차마 자신의 존재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이 있었으니 사랑의 기쁨으로 새로 난다.
마리아는 다시 격하게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갇혀 있던 과거에서 나와 등을 돌려 스승을 마주한 그녀의 눈물은 더 이상 비탄의 노래로 울리지 않는다. 그녀의 눈물은 반갑고 반가운 스승을 향한 환호며 찬미의 노래로 울린다. 그녀는 언제나 그의 님을 노래하였다.
아가서의 신부는 신랑을 찾아 헤맨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이다. 다만 님의 부재의 시간에 겪는 그리움이 너무 커서 가슴이 아릴 뿐이다.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아가 3,1-4ㄴ)
사랑해서 님을 노래하는 이에게 부끄러움과 수치란 없다. 옛것을 붙들고서 깊은 어둠 속을 헤매는 그녀는 용감하다. 세상의 시선이 두렵지 않은 그녀는 오직 자신에게만 향하는 님의 시선만 그리워하고 있다. 그녀는 안다. 그녀의 노력으로 사랑하는 님을 찾아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 누구도 그녀에게 사랑하는 님이 계신 곳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사랑은 힘이다. 다 털어내지 못한 옛것의 고통을 짊어지고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다. 신부를 간절히 찾고 있을 님에게서 오는 힘이니 그 힘에 모든 걸 맡기고 일어서는 그녀다. 그리고 끝내 그녀는 목말라하며 그리던 님을 찾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으로 불러주던 달콤한 어제의 목소리에 대한 갈망이 때론 그녀를 너무 아프게 하였지만, 그 목소리의 추억이 오늘을 살게 하고 또 오늘의 님을 찾게 하니 남는 건 다시 희망이요, 기쁨이다.
내일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님을 찾았다. 님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니 그 무엇도 아쉽지 않은 오늘이다.
언젠가는 님을 등지고 다시 거리에 나가 외치리라.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요한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