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루카 9,24)
가끔 인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너무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삶이 살아나지 않아 놓아버리고 싶었던 그 마음은, 정말로 살고 싶다는 반증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고, 내 삶을 보란 듯이 잘 살아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었다. 작은 순간들, 내 뜻대로 되지 않던 그 순간들에 나는 나를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무도 내 삶을 살리지 못하리라는 결론에 다다랐던 것이다.
단 한 번도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건 내 신앙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했다. 내게 고통의 순간은 있을지언정, 그 순간에도 하느님은 나와 함께 하셨으므로 그분의 현존만큼은 의심한 적이 없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초대에 나는 내 믿음의 부재를 목격하고야 말았다. 내 삶에 켜켜이 쌓여 있던 하느님의 체험의 기억을 싹둑 잘라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일정 기간의 CCTV 원본 파일을 삭제한 것만 같았다. 파일이 사라졌다 해서 그 시간과 공간에서 있었던 일이 없어지진 않는다.
히브리 백성이 이집트 파라오의 군대에 쫓기고 있었다. 앞은 바다, 뒤는 병사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바다가 갈라졌다. 그리고 다시 헤매고 헤매 40년이 지나서야 약속의 땅을 마주한다. 요르단 강을 건너가기 전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기회.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걸을 것인가 아닌가.
(제1독서 신명 30,15-20 참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더 분명히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그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루카 9, 23-25)
나는 내 목숨을 구하고 싶었기에, 홀로 외로이 싸웠다. 그런데 나를 잃어야만 나를 구할 수 있다니. 내가 해왔던 싸움으로 나 스스로를 해치고 있었다니, 어려운 역설이다.
마치 작은 새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발을 묶어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새는 더 이상 높이 멀리 날아갈 수 없었다.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는 새장 안에서 나는 나만의 규칙으로 세상을 만들어 놓고 안주하려 했다. 그리하여 저 너머의 세상이 나를 아프게 하지 않도록 나를 지키고 싶었다. 여성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게 나를 불안하게 했다. 저 너머의 타인에게 내 몸이 가닿지 않도록 나는 내 마음까지 꼭꼭 숨기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지키지 못했으므로 나만이라도 나를 지켜야 했다. 자유롭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며 자신을 옥죄기 시작했고, 발을 점점 조여 오는 끈에 아픔을 느꼈다. 아무래도 나는 살아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문득 내 심장을 내려다보았을 때, 선명하게 새겨진 예수의 이름에 놀랐다. 내가 사는 것은 나로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존재로 사는 것이었다. 그분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구한 나로 사는 것이다. 그 귀한 이름에 나의 진정한 가치가 있었다. 하느님은 분명 나를 창조하시고 좋아하셨다. 그 아름다운 나로 존재하면 되는 것이었다.
새를 놓아줄 때다. 그렇게 그를 잃어버릴 때다.
내 마음을 모두 주님께 드린다. 그분의 이름에 모든 것을 건다. 그렇게 내 목숨을 잃어버려 다시 구한다. 도저히 나 자신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던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던 CCTV 파일의 존재를 떠올렸다. 사라진 기억 틈새로 피부 끝의 감각이 살아나는 것만 같다. 사랑을 받았었다. 지금도 그 사랑으로 숨을 쉰다. 나는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온 생명을 바칠 만큼 가치가 있는 생이다. 그렇게 사랑을 하고 싶었다. 다만, 저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갈 수 없어 답답했다. 내 몸과 마음에 새겨진 일부 기억들은 계속 나를 옥죄고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분명 다른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현재의 나를 살게 하므로 새롭게 갱신되고 있다. 주님의 존재로서 나는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고 숨을 쉰다. 이렇게 살아 있다.
나는 살기를 선택한다. 그렇게 내 목숨을 구한다.
눈 부시게 빛나는 오늘의 내가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