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재를 받고는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또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순간에 나는 잠시 마음에 머물렀지요.
오늘 말씀의 핵심은 "마음"이라는 주례 신부님의 강론에 계속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닮고 싶을 뿐이더군요.
그렇게 다시 마음의 호환성을 떠올리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을 때 찬 바람이 하늘의 파아람을 휘젓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회심의 여정이 너무 무겁지만도 또 슬프지만도 않게 그저 발걸음 가볍게 또 마음을 드높이는 아침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오후가 되어 집에 돌아올 무렵에는 몸이 무겁게 축축 처지는 거예요.
아침 단식을 한 탓이었을까요. 몸이 무겁고 머리도 복잡했습니다.
주님 말씀으로 잘 정제되었던 마음 사이로 결국 엉킨 실타래와 같은 고민들이 파고들었어요.
용기를 내어 누군가에게 기도를 청했을 때,
다시 내 마음을 울린 건 순박하지만 지혜로운 주님의 양이 되라는 초대였습니다.
슬기롭고 용맹하게 그러나 순수하고 맑게 나는 목자이신 주님을 따르렵니다.
정화되어야 할 게 많이 있겠죠. 나는 당신에게 길들여지고 싶어요.
내 안의 늑대와 같은 욕망과 감정들이 당신이 마련해 둔 풀밭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뛰놀 수 있도록
사랑으로 그저 끌어안으렵니다. 그렇게 나는 늑대 새끼를 돌보며 당신 안에 머무르겠어요.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마음이 나를 길들일 때 나는 그 어떤 양보다도 유순하고 또 슬기로워질 테니,
그날엔 하늘의 파아람을 휘젓는 바람 타고 마음껏 하늘을 날고 또 땅에서 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함이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