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환대

2026 주님 수난 성지주일

by 어엿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군중은 환호하며 맞이하였다. 그들 삶의 고통을 끝내 줄 구원자를 애타게 기다려왔던 그들은 그러나 이내 예수님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으며 십자가형을 내리라 소리칠 것이다. 예루살렘은 사실 알지 못하였다. 하느님의 도성 그리고 그 신부를 맞이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지나 부활로 나아가는 이 거룩한 주간을 주님 수난 성지주일로 시작하는데, 이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재현하는 행렬 예식을 한다. 특히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미사에서 사람 키보다 더 큰 빨마 가지를 든 추기경들과 사제 및 수도자들, 신자들의 행렬은 화려하고 장엄하여 참석하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안타깝게도 개인적으로는 바티칸 전례에 참석할 만한 기회를 지금껏 가지지 못했다. 늘 공동체 내의 전례에 참석해 왔기 때문이다. 올해는 아무래도 마지막 성주간이기도 해서 외부 전례에 참석하기로 결심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예루살렘 성읍에 몰려든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구원을 애타게 기다려온 얼굴 없는 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본 적은 없었던 터라 우선은 마음을 울린 그 이미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사실 우리 동네는 가톨릭 신자 입장에서 바티칸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로마의 핫 플레이스라고 할 수 있겠는데, 도보로 많은 대성전들을 쉽게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내가 그동안 방문하지 않은, 어쩌면 역사에서 이름 날리지 못했을 작고 조용한 성당에서, 그간 가려져 온 얼굴들과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보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딱 그 세 가지 조건에 맞는 성당을 찾아야 했다.


로마에서 나보다 오래 지낸 한 지인에게 우연히 "작고 조용한 성당"에 대해 물었고, 그는 "조용하지는 않으나" 작은 공동체 한 곳을 추천해 주었다. 로마 외곽에 위치한 평신도들의 평화 운동 및 이웃 사랑 실천 공동체였다. 동네를 벗어날 생각까지는 못했었는데 신선한 발상으로 들리긴 했다. 워낙에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으로 알려져 있어서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어쩌면 진짜 변두리일지도 모를 법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실 변두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다.

아주 젊었을 때는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도 하고 함께 거리에 나아가 그들 대신 목소리를 내어주기도 했지만 나는 어느덧 그저 조용하고 수줍은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주 작고 조용한 성당에서 가려진 얼굴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겠다고 여겼던 나였기에 살짝 망설여졌다. 아무도 몰래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나올 만한 상황은 아닐 게 뻔했다.


용기를 냈다. 사실 나는 변두리에 있기를 좋아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며, 내 핏속 아버지의 정의와 어머니의 평화가 여기까지 동반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가는 길은 예상대로 멀었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았다. 연둣빛 들풀들로 가득한 흙길을 홀로 걸으며 멀리 나아갔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구글신호가 사라졌을 때 입구를 못 찾아 조금 당황했는데, 한 자매가 친절하게 길을 설명해 주었다. 계단을 오르니 마침 성지가지를 손에 든 신자들이 보인다. 나를 초대해 준 지인과 그의 가족들도 와 있었다. 그렇게 낯익은 얼굴과 낯선 얼굴들 사이로 빼꼼히 나의 얼굴을 내밀었다.


작은 강당이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성체가 모셔져 있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살과 피를 함께 나누는 그분의 작은 벗들이 있는 거룩한 성전이었다. 시끄럽지가 않았다. 각자가 빚어내는 찬미 소리의 틈을 타고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참 따뜻했다. 부끄럽게도 미사 후에 내 이름이 불려 소개가 되었고, 인사를 하며 마주친 얼굴들을 통해 내가 환대받고 있음을 알았다. 그 자리에 나를 초대해 주신 주님과 또 그분의 벗들에게 감사했다.


성주간 시작의 아침엔 늘 공기가 싸늘했었다. 그 차가움이 내 몸을 가라앉혀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리라는 무거운 결심을 하게 해 왔다. 그런데 오늘은 그 어떤 굳은 어른의 다짐보다도 여리고 부드러운 아이의 바람이 내 몸을 흔들었다.

예수님, 저를 사랑해 주세요.
당신이 모든 것 바치신 그 사랑을 제가 느끼게 해 주세요.


어쩌면 나는 좋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사랑을 받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얼굴 안아주는 이름 모를 미소 가득한 품에 잠시 기대도 될만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조용하고 수줍고 또 평범한 나의 얼굴을 하고 스쳐가더라도 그 따뜻한 사랑만큼은 나의 것으로 담아갈 수 있는 넉넉한 마음 덕분이리라.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마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나를 보살피시니, 차가운 눈물바다에 또다시 빠진다 할지라도 희망의 무지개 타고 날아오르게 될 것을. 그날에 나는 다시 당신의 가장 가난한 친구들에게 나의 넓은 품을 내어줄 것이다.


주님, 저희가 따뜻한 품으로 서로를 끌어 안아 평화를 이루도록
그리하여 당신 수난과 죽음의 여정 끝에 진정 새 생명을 함께 누리며
서로 얼굴 마주하고 웃는 정의가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청하오니,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