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일] 아름다움에 머무름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루카 9,33)

by 어엿봄

빛나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산 아래 나를 답답하게 옭아매던 일상은 다 잊고 여기에 이대로 머물렀으면 좋겠다. 이 순간아, 영원하여라.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함께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베드로는 초막을 지어 여기서 함께 지내면 어떻겠냐고 말한다. 이내 그들을 덮은 구름 속에서 들리는 음성,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마태 9,28ㄴ-36 참조)


그의 영광이 내 얼굴을 비춘다.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없는 이 순간에 머무르고 싶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있다. 찰나에 빛난 이 영광은 산을 내려가 마주해야 할 앞으로의 여정을 비춘다. 아름다운 구원의 빛은 상처를 통해 터져 나와야 하는 것이다. 구원의 약속을 믿고 내가 잠시 맛본 달콤함을 뒤로한 채 예견된 쓴 술을 마셔야 한다. 그러나 그 잔을 드는 것은 나의 선택이다.


당신 안에, 당신 사랑 안에 머무르라 하셨던 그 말씀 따라 지금 여기에서 그 아름다움 안에 지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온 존재에서 터져 나오는 환한 빛 안에 자리를 틀고 지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머무름의 선택은 곧 당신을 따름이오니, 발걸음 옮기는 당신 따라 이 산에서 내려가렵니다. 그렇게 함께 하여 당신을 듣고 당신을 닮고 또 그 삶을 나누며, 나는 머무릅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 하셨으니 그 사랑 따라 나 자신을 내어주는 일상의 고단함을 반기는 것이 나의 머무름입니다.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를 만나고 그를 듣습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그의 삶에 새겨진 아픔에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이렇게 인간은 초라한 존재입니다. 누군가의 눈흘김과 차가운 침묵, 거센 분노의 소리침에 그는 너무나 쉽게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그 텅 빈자리에 내 숨을 조금 나누어줄 수 있을까요. 주님, 당신에게서 빛났던 아름다움이 내 안에 작은 불씨로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 사랑의 불로 내 앞에 울고 있는 친구에게 다시 살아갈 숨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아름다움에 머무름은 그리하여 다시, 산 아래 답답하게 나를 옭아매던 일상에 나를 던지는 것이다. 아주 조금은 힘에 겨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상을 마주하여 상처받고 아파하는 동안 생채기에서 터져 나오는 빛은 점점 더 밝아질 것이다. 주님은 나의 태양이다. 나는 그 영원한 빛을 닮아 빛나리라. 주님이 그러하였듯 누군가의 해가 되어 꺼지지 않을 아름다움을 살아내리라. 복된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