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금요일] 좋은 일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요한 10,32)

by 어엿봄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좋은 일을 하였고, 그것은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도 좋은 일이었으니 아버지의 뜻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장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죄인들에게도 나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아버지의 빛나는 거룩하심이 드러나야 할 자리는 바로 여기, 아무도 눈길 주지 않았던 어둠의 땅이었다. 어둠에 빛으로, 죽음에 생명으로 왔거늘 여전히 암흑의 죽음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이 섬겨온 신의 형상을 버리지 못하니, 그 엄격한 틀에 맞지 않는 이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그들은 내가 한 좋은 일을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통해 이 땅에 현존하시는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서로가 참 멀리에 있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 하느냐?"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0, 32.37-38)


예수님이 보이신 좋은 일은 그분을 고소할 구실이 된다. 좋은 일의 결과로 그분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좋은 일을 나쁜 일에 사용한 이들은 죽음의 끝에 머물러야 했다. 좋은 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친구가 되길 포기하고 종이 되어 죽음으로 나아간다. 모든 것을 의무에 대한 복종으로 수행해 온 그들이다.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따른다고 말하며 온갖 규정들에 얽매여 그것들로 다른 사람들을 단죄하고 죽이니 웃을 일이 없다. 점점 더 날카롭게 그들만의 신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고 배제한다. 사랑이 없다. 그리고 또 생명이 없다.


내가 하는 좋은 일은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결과로써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생명을 낳는 사랑의 행위로써 열매를 맺어야 한다. 나의 일상이 얼마나 거룩하고 복된 시간이어야 하는지! 그러나 쉽게 잊어버린다. 모든 게 귀찮아질 때가 있다. 자꾸만 과거로 뒷걸음질한다. 사랑을 잃을까 불안해하며 집착했던 관계들이 떠오른다.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말이 옳아야 했고 그의 뜻을 따름으로써 그의 사람이 되는 안정적 관계에 종속되고 싶었다. 그의 배려는 나를 위한 사랑이어야 했기에, 그 배려가 실은 나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나는 어떻게든 나를 구겨 그 안에 맞추려 했다. 그 과거의 시간이 자꾸 떠오른다. 분명 기쁘고 좋았던 순간들도 있었을 텐데, 그의 사랑이 내겐 폭력이었다고 이제 와서 화를 내며 뒤집을 필요까진 없을 텐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져낼 수가 없다. 그의 진심이 그가 살아온 세계의 틀로 표현되고 그것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 진심의 형식을 다 내면화할 이유는 없었다. 나의 진심은 내가 살아온 이 세계의 틀로 표현되므로 그의 것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 틀을 다 부수고 그의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만큼 다르다. 내가 일상에서 맺는 사랑의 열매는 그의 것과 같아서는 안 된다. 내가 기쁘게 웃는 순간에 당신도 함께 웃어달라고 요구할 순 없다. 만일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사랑하여 내 세계 안으로 들어와 조금이라도 머물러 이해한다면, 당신은 내가 웃을 때 함께 웃을 것이다. 당신이 기쁠 때 나는 먼저 웃었다. 당신 안에 머무르기엔 우리가 멀리 있었다. 그 거리가 두렵고 무서워 나는 먼저 웃어 보였다. 먼저 웃음으로써 당신의 틀 속에 나를 가두었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내 깊은 내면의 바닥까지 내려올 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안에 잠시 머무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잠시 쉬어가는 오늘의 시간에, 나는 그대 안에 머무르고 싶다. 그대의 뜻을 인정해 주고 지지해 줄 것이다. 그냥 지금 그대가 느끼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 괜찮은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여줄 것이다. 나는 다시 그대의 눈을 바라본다. 그대의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지 못한대도 잠시 그대의 눈 안에 머무른다. 그렇게 나를 그대에게 준다. 이것이 내가 행할 좋은 일이다. 만일 그대의 길과 나의 길이 다르다면 눈을 감아라. 날카로운 그대와 나의 눈빛에 서로 상처받을 일 없을 터이니, 그렇게 우리 다시 서로를 살려내자. 적어도 내 틀에 그대가 못 박힐 일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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