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요한 8,58)
내가 느끼는 자신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일상에는 불안함이 커지는 순간들이 있다. 과제와 업무를 제 때에 마쳐야 해서 쫓기고 있을 때, 누군가의 감정이 나로 인해 상한 것 같아 눈치를 볼 때, 상대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채우지 못해서 실망감을 줘야 할 때 불안함이 자라난다. 어느새 그 불안은 스스로를 장악하기에 이르러 마치 내 존재의 전부인 양 행세한다. 그러나 틀렸다. 불안은 나란 존재가 지나가고 있는 일시적 상태이며, 존재를 느끼고 이해하도록 스스로가 초대하는 시간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바와 현재의 자신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두고 불안해한다. 나에 대한 기대, 사실은 타인들의 시선을 통해 규정한 것들이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뛰는 심장으로, 사랑으로 존재하는 나를 느끼고 평가한 적 없다. 나를 지워 온통 타자들로 나를 채웠거나 혹은 타자들을 지운 채 온전히 자기만으로 나를 채웠다. 내가 생각하는, 타인들이 가질 나에 대한 기대, 그래서 결국 스스로에게 각인시킨 나의 이상은 다음과 같다. 능력은 있되 교만하지 않으며, 헌신하되 건강하게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태까지 해왔듯 씩씩하게 헤쳐나가며 절망하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들과 큰 갈등 없이 그들을 수용하고 돌보는 사람. 그 이상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게 이끈다. 그러나 나를 뒤로 물러나게 하는 힘도 있으니 불안이다. 작은 성과를 두고 기뻐하는 것이 교만이 될까 쉽게 웃지 못하고,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 달리는 와중에 피로감을 느낄 때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위기의 순간에 쓰러져 울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다시 채찍을 들고,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기분이 상해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는 나에게서 불안을 느낀다.
이 양극이 나의 본질은 아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일 뿐 그 사이의 불안함이 나 자체일 수는 없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있는 나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요한 8,54-56.58)
오늘 예수님은 당신을 '있는 나'로 계시하신다. 하느님의 다른 얼굴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이 진실에 가림이 없고 부끄럼이 없다. 당당하게 자신을 밝히신 그분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당당한 진실이 거짓이 될 리 만무하다.
이제 곧 자기 본질의 숙명에 따라 그분은 십자가를 지고 걸으실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결과였던 그 시간에 당신의 참 얼굴을 우리에게 남겨주실 것이다. 그 얼굴이 내 존재에 새겨진다. 이미 구원자 예수, 그분의 뜻이 내 심장에 남았다. 내 심장에 깊이 각인된 그 이름은 내 존재를 규정한다. 나를 살린 것은 주님이니 나는 그분의 것이 되었다. 그분이 가진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되었다. 내 심장에 새겨진 그 이름은 만물 위에 드높여져야만 한다. 끝없는 찬미 속에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야 한다.
불안한 나를 느낀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걸어가야 하는 땅이다. 이 땅의 진흙이 내 발을 더럽힐지언정 내 존재를 물들일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마음 깊이 내려가본다.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가여운 나를 받아 안는다. 나를 향한 매서운 시선을 두 손으로 감긴다. 심장과 심장이 만나니 그 고동 소리가 빈 터를 울린다. 불안의 거품을 걷어낸 자리에 감사함이 차오른다. 나를 살려준 그대에게 감사하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감추어질 수 없는 나의 본질과도 같다. 나는 사랑으로 있는 나다. 우리의 사랑 안에 있는 나다. 홀로 있지 않고 함께 있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당당한 나의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