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
구속되기에 자유로운 관계도 있다. 당신에게 속함으로써 진리에 닿으니, 그 진리는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다시, 관계로의 초대다. 관계 안에서 나를 새로 정의하지 않으면 나는 진리를 깨닫지도 또 그 진리로 인해 자유롭게 되지도 못할 것이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나는 나로 자유롭고 싶다. 당신 안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도리어 내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싶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들이다. 삶의 선택은 열려 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함에 있어서 우리의 자유는 제한적이다. 나는 내가 바라는 대로 살 수 있다. 오늘 하루 푹 쉬고, 푸르름으로 가득 한 숲을 걷고 싶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나를 마음껏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현재 내가 수행해야 할 일들이 나의 시간과 공간을 제한한다. 아무리 그대들이 좋은 사람들이어도 나를 마음껏 열어 보일 수 없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불안과 그에 따라 오랜 세월 굳어진 습관이 나를 막는다. 그대들이 내 진심과 내 민낯을 알게 될 때 나에게서 떠나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었나 보다. 적당히 서로를 응원해 줄 수 있는, 그러나 내가 넘어졌을 때 그대 나에게 다가올 수 없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형식적인 관계들에 이미 익숙해졌다. 그러니 나는 자유롭되, 자유롭지 않다. 깊은 곳에서 흐르던 내 역사의 강물에 발을 담그고 흐르는 물결 따라 울렁거리는 내 얼굴을 바라보면 나는 나를 좀 더 이해하고 알게 될 수 있을까.
진리는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주님에게 있다. 그분은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나의 참 얼굴을 바라보라 하신다. 그분의 얼굴에 나의 얼굴이 겹쳐지고 그분의 숨에 나의 숨이 더해진다. 씨줄과 날줄이 엮이어 자아내는 아름다움이다. 함께 있음으로 인하여 서로의 아름다움을 살려낸다. 내 민낯과 진심을 안아주는 당신의 품에서 나를 찾는다. 공동의 시공간에서 진리가 품은 나의 생명이 빛난다. 나의 저 바닥에 닿으면 텅 빈 차가움만 있을 것 같았는데 가득한 빛이 있다. 그 빛은 숨겨질 수 없으니 드러나야 한다. 비추어야 한다. 그렇게 나의 얼굴에서 터져 나오는 빛은 우리 공동의 시공간을 밝혀야 한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요한 8,42)
나는 자유롭다. 자유롭게 당신을 사랑한다. 자유롭게 나를 넘어서서 나아갈 곳은, 오직 사랑의 현존인 당신이다. 당신을 향한 열정이 커지니 이 길 역시 넓어진다. 피곤하면 잠시 누워 쉴 수 있고 따분할 땐 아이들과 정겹게 술래잡기할 수 있는 넓은 길, 그 길 위에서 내가 참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