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요한 8,28)
당신이 누구인지, 나의 인생에 당신이 차지한 몫이 얼만큼인지 아니 나란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진지하게 물은 적이 없다. 당신 얼굴 떠올렸을 때 내 가슴을 흔드는 설렘과 즐거움은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누리는 사랑과 기쁨은 모두 당신에게서 왔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정의 내리지 않았다. 내 사랑과 기쁨의 원천인 당신에게로 내 의식을 온전히 향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당신을 내 존재 바깥의 한 객체로 남겨두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누구요?"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요한 8,25-29)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이 돌고 돌아 나의 모든 친구들을 스치고 예수께로 향한다.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신 당신을 온전히 아주 구체적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던가. 모세가 구리뱀을 광야에 높이 달아올려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이 살게 했듯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실 것이다. 예수님이 느꼈던 배신감과 외로움, 숨을 앗아가는 육신의 괴로움을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그 순간을 넘어서야 한다. 내 삶에서 당신이 갖는 의미, 그 현존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 나는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결국 당신은 들어 올려지고 나는 십자가에 달린 당신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분이 살아낸 건 하느님 아버지의 뜻, 사랑의 뜻이었다. 그분 스스로 아버지의 뜻이 되셨다.
당신의 의미. 당신은 나를 사랑하여 다 견디고 다 내어준 나의 구원자. 내 모든 순간을 함께 살아내서 구석구석의 나를 알고 보살펴주는 나의 동반자. 나의 사랑과 기쁨. 내가 왔고 또 내가 다시 향하는 곳.
당신은 나에게 나를 살게 하는 의미가 된다. 수많은 당신들의 의미가 내 안에서 피어나게 하는 열린 문이요, 인생의 길이 된다. 그 길을 따라 나는 당신들의 의미 또한 찾는다. 하나하나의 얼굴이 내 안의 의미로 새로 태어난다. 질문엔 답이 따라야 하는 법이다. 당신들을 바라보고 향하니, 이는 더 이상 그대들을 밖에 버려두지 않고 내 안으로 모셔와 진정한 사랑과 기쁨의 원천을 함께 누리고자 함이다. 함께 누리는 순간에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될 것이고 또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