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요한 8,10)
내게 남은 건 저들의 돌팔매질뿐이다. 벌거벗겨진 건 내 몸뿐이 아니다. 죄로 얼룩진 내 영혼이 모두 앞에 벌거벗겨졌으니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수치심과 부끄러움만 가득하다.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면 참으로 가엾고 짠하다. 그러나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모두 내 탓이다.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떠나갔다.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한 8,3-11)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일부러 예수 앞에 끌어다 놓는다. 그를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들은 죄에 죄를 더한다. 그들은 죄인을 파괴하여 다른 죄인을 만들고, 결국 생명이 아닌 죽음의 길을 택한다. 그들의 눈에는 간음이라는 죄뿐, 그 자신의 죄가 벌거벗겨져 비참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인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 그 한가운데의 마음을 그들은 누군가를 단죄하고 없앨 잔인함으로 가득 채워버렸다.
침묵 속에 몸을 굽히고 땅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계속 쓰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 보인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적으신 것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대개 예수님이 계명을 순서대로 적었고 그것을 본 이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죄를 가장 많이 지은, 즉 나이가 든 순서대로 떠났다고 이야기들 한다.
손에 흙을 묻히고 노는 아이들처럼 예수님의 마음이 맑다. 그분은 죄를 넘어 인간을 바라본다. 죄의 고통에 짓눌린 영혼을 바라본다. 그 순수한 마음으로 그는 한 사람에게 집중한다. 죄를 죄로 갚지 않고, 죄를 용서하여 그를 구원하는 분이시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말을 건다. 모든 사람이 떠나갔음을, 즉 폭력의 무리가 사라졌음을 그녀 스스로 직접 보고 확인하게 하신다. 그리고 당신도 단죄하지 않으리니 떠나가라고, 이제 새 인생을 살라고 희망의 문을 여신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은 사람의 본질에로 향한다.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되어 그분이 보시고 좋았다 하신 그 본질에로 나아간다. 예수님은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 내 죄를 용서하시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내게 말을 거신다. 그 속삭임이 참 좋다. 발가 벗겨졌던 내 몸과 내 마음에 약이 되고 또 위로가 되는 말이다.
나 역시 죄를 넘어 사람을 바라보고 그에게 새 문을 열어 준 적이 있던가 반성해 본다. 그가 내 마음 안에 들어올 문, 그리고 세상에 나아갈 문을 열어주고 싶다. 그렇게 맑은 마음 한 점 지닌 채 땅에 몸을 굽히고 또 오로지 그를 위해 일으킨 작은 예수가 되기를 청하는 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