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요한 7,46)
나를 심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하지만,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그저 나의 출신을 안다. 나의 깊은 세계에 들어와 본 적 없고 또 관심조차 두지 않는 그들은 나를 심판하고 죽이려 든다. 그러니 상대를 향한 단죄의 칼이 날카로워 그들은 매 순간 긴장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나 역시 이러한 상황이 무섭다. 나는 다 잃고 죽게 될 것인가.
예수님의 목소리가 부재하는 오늘의 복음에서 우리는 그를 믿지 않고 반대하는 지도자들과 적어도 그를 지지하는 소수의 군상을 마주하게 된다.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지도자들은 묻는다.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말한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요한 7,45-52 참조)
힘 있는 자들이 그를 반대한다.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떤 내적 체험을 하고 있었을까.
나라면 많이 속상하고 화가 났을 것 같다. 자존심도 상했겠다. 그리고 도저히 앞으로 나갈 용기가 나질 않았을 것이다. 내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들이 나를 이렇게 평가한다면 내 앞길은 안 봐도 뻔하다. 결국 나는 이곳에서 끌려나가게 될 것이다. 내가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그들이 틀렸다. 그들이 알고 있는 나는 내 전부가 아니며 그저 표피에 불과하니, 그들은 내 깊이에 달하지 못하였으므로 나를 알지 못한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확인해보지 않는 그들이다. 그러니 그들의 심판과 단죄는 옳지 않다. 그들의 틀린 평가에 내 존재를 걸 이유가 전혀 없단 말이다. 그들에게 내 생명을 빼앗을 권한을 나는 주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들이 내 표피를 공격한다 해도 나는 아프지 않다. 표피는 그저 장식이며 진실한 내가 아닌 까닭이다. 참이 아닌 것을 참으로 믿고 자기들만의 일방적인 잣대로 재고 뭇매를 하려는 그들이야말로 사라져 버릴 허상이다.
힘 없는 이들이 나를 지지한다. 그들은 나를 만났기에 나를 안다. 내 열린 마음에 그들의 자리가 있다. 그 수많은 작은 이들 중 하나라도 내 사랑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문을 활짝 연다. 사실 힘 있는 자들에게도 닫힌 적은 없었다. 다만 그들의 선택이 내가 아니었을 뿐이다.
예수는 자유로웠다. 인간으로서 그 역시 지도자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긴장과 불안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두려움을 딛고 일어난 그는 그것이 사라져 버릴 허상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의 아버지를 알았기에, 언제나 그 사랑 속에 자유로이 숨을 쉰다.
나는 이 자유로의 초대를 받아들인다. 나의 깊음을 그들이 알리 없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으리라. 흔들리지도 않으리라. 나를 증언해 주시는 그분이 내 깊은 곳에 머무르신다. 나 역시 그분 안에 머무르니 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 그 든든한 사랑이 나를 일어서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는 나로 존재한다. 어느 누구 하나라도 이 자유로운 사랑을 느끼고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그렇게 나는 내 소명을 다해 주님께 영광을 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