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다

죽음을 통한 사랑

by 어엿봄

당신은 세상을 이기셨나요?

오늘 문득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신부님 생각이 났어요.

신부님은 아우슈비츠에서 가족이 있던 다른 처형 대상자를 대신해 죽겠다고 자원하셨죠.

콜베 신부님은 세상을 이겼던 걸까요?

세상의 눈에는 십자가 죽음이었겠지만 사실 죽은 건 세상이었는지도 몰라요.

무자비하게 생명을 짓밟던 폭력에 목숨을 잃은 건 그 세상이었을 거예요.

세상이 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일지도 몰라요.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물질을 파괴하죠. 그가 파괴하는 생명도 딱 거기까지에요.

물론 우리가 받아야 하는 고통도 어마어마합니다. 영혼의 생기를 앗아가 버리는 그 폭력을 당해낼 자 없어요.

하지만 나는 다시 콜베 신부님 생각을 했어요. 그건 사랑을 위한 죽음이었으니까요.

죽음을 통한 사랑이란 표현이 맞겠네요.

당신께서 우리를 구하시고자 다 내어주신 것처럼요.

사랑이 죽음을 이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가끔 너무 막대하는 것 같아요.

운명이라고 해두죠.

내 손아귀에 담기지 않는 그 운명이 가끔은 우리를 심하게 괴롭힙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불행이 얼마나 자주 찾아오던가요.


세상은 그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나를 거친 바닥에 패대기쳐놓고 죽어라 짓밟겠지만 내 몸 망가질지언정

나의 거룩한 영과 숨이 살아있을 테니까요.

사랑으로 다시 살고 싶은 나의 마음을 어찌하진 못할 테니까요.

세상은 나의 자유를 이기지 못합니다.

내가 자유로이 선택하는 삶은 세상에 지는 법이 없어요.

나는 그렇게 당당하게 일어설게요.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나를 언제나 반대할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그러한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싶어요.

나를 죽임으로써 스스로 죽어가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요.

당신이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사랑으로 이기셨으니 저도 그 길 따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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