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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홍수, 그리고 두 어머니의 이야기

by 마레

비 내리는 길 위의 모녀

2000년 초, 나는 모잠비크 중부 지역 베이라(Beira)를 여행하고 있었다. 우기철의 폭우 속, 맨발로 빗길을 걷는 한 엄마와 어린 딸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딸의 손을 꼭 잡은 채 말없이 길을 걷고 있었고, 빗줄기는 그들의 머리카락과 어깨를 적신 채 발끝으로 흘러내렸다. 두 사람의 가녀린 뒷모습은 마치 비에 젖은 나뭇가지처럼 위태롭고 안쓰러웠다. 나는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멀리서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딸에게 신발 한 켤레조차 사주지 못하는 현실이 짓누르는 무게, 그리고 서글픔이 그녀 안에 고요히 번지고 있었을 것이다. 빗속을 묵묵히 걷는 그녀의 뒷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다.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그날 본 모녀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잠비크 대홍수, 그리고 그날의 기억

저녁 늦은 시간, 방문하려던 작은 도시에 도착했을 때 비는 폭우로 변해 있었다. 숙소마저도 빗물이 들이쳐 바닥이 물로 흥건했다. 다음 날 아침, 급히 남쪽의 수도 마푸투(Maputo)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버스를 기다렸지만, 밤사이 폭우로 도로가 끊겨 차량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도로가 끊긴 지역을 걸어서 이동했고, 가까스로 수도로 되돌아가는 트럭을 얻어 탈 수 있었다. 마침내 마푸투에 도착했지만, 그곳 역시 폭우로 인해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당시 내가 경험했던 폭우는 단순한 우기철 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모잠비크를 강타한 사이클론으로 인한 대홍수였으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자연재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 대홍수로 약 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45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야 이 재난이 얼마나 심각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초래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무 위에서 생명을 지킨 여성

이 대홍수 속에서도 기적 같은 생존 이야기가 전해졌다. 피해가 컸던 남부 지역에서, 소피아 슈방구(Sofia Chubango)라는 만삭의 여성이 순식간에 불어난 물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이 지역은 낮은 지형으로 인해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고, 그녀가 올라탄 나무 주변은 완전히 물에 잠겼다.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위에서, 그녀는 기적처럼 딸을 출산했다. 극도의 피로와 배고픔 속에서도 생명을 지켜낸 그녀의 강인함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이후 구조 헬리콥터가 그녀와 아기를 발견했고, 둘은 무사히 구조되었다.


소피아는 인터뷰에서 나무 위에서 출산한 경험을 “매우 고통스러웠다”라고 회상했다. 배고픔과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를 품에 안았던 그 순간을, 그녀는 생애 가장 기적적인 경험으로 기억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홍수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저는 무언가를 얻었어요.”*


생존력을 넘어서는 세상을 꿈꾸며

소피아 슈방구의 이야기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생존력과 회복력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2000년에 만났던 이름 모를 모녀와 소피아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빈곤과 자연재해라는 통제할 수 없는 위기 속에서도 생명을 지키며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강인함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처절히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있다. 그 강인함이 더 이상 생존의 증거가 아니라, 존엄한 삶을 누릴 권리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소피아와 그녀의 딸이 나무 위에서 보여준 생명의 기적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그것은 바로 모든 이가 안전하고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https://www.bbc.com/news/world-africa-47803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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