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이성적인 글을 때론 감성적인 글을
지금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시간엔 등을 기댄 채 스도쿠를 풀면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사각사각 연필소리가 너무 정겹습니다. 어디에 어떤 숫자가 들어가야 가장 이상적일까? 혼자 예측을 머릿속으로 돌리면서 암산을 하는 그러한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의고사나 수능이 있는 날 혹은 심심하면 문제를 풀면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보기도 합니다. 저는 이게 재밌습니다. 머리에게 스트레스를 가하면서, 풀 방법을 추론해 내는 과정이 너무나 행복하고 재밌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특했다는 소리를 가끔씩 나마 듣긴 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불교를 믿으셨는데, 종종 불교에 가셔서 스님과 대화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되게 용한 절에 유명한 스님이셨는데 저를 유치원시절부터 봤다고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가거나 봄날에 가면 꽃떡이나 절밥을 맛있게 먹곤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병이 생기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그 스님이 용한 것이었어"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도대체 그 스님이 어릴 적 저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긴 내용이었지만 어머니께선, 저의 전반적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다고 합니다. 겉은 강한데 속은 한없이 여리고, 사람을 못 버리며, 자기의 신념을 강하게 믿고 나아가되, 자기 주변 지인을 자기보다 더 아낀다고, 결국 그걸 조절하지 못해서 뇌에 병이 생길 거라고, 제가 유치원 때 말했다고 그랬습니다.
"본인 힘으로 모든 걸 이루지만, 아쉽게 용이 되진 못하고 이무기가 될 거라고...., 본인이 누구인지를 찾는데 오래 걸릴 거라고...." 씁쓸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 말을 듣고 절망을 많이 했었습니다. 물론 그 절망을 긍정으로 바꾸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요. 도대체 그 스님은 제가 유치원일때 모습을 보곤 어떻게 이 많은걸 아셨을까요?
현재와 과거가 왔다 갔다 함에 글의 흐름이 이해하기 어려울까 죄송함을 표합니다. 다시 초등학생 5학년으로 돌아가면 영어학원에서의 수업은 재밌었습니다. 뇌에 많이 든 것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뇌가 새로운 지식에 맛을 들려버린 건지, 스펀지가 된 것처럼 빠르게 지식들을 흡수하기 시작했었습니다. 초등학교5학년과정이 너무 쉽게 느껴지자 어느덧 나이는 12살이지만 중학생인 형 누나들과 같이 공부를 하며 실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영어는 무척 재밌고 좋았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흥미로움과, 무수히 많은 단어들, 그리고 그걸로 만들어가는 무궁무진한 문장들이 맘에 들었습니다.
비록 제 이름을 영어로 말하지 못해서 시작한 영어학원이었지만 배운 지 1년도 안되어서 많은 걸 배웠음에 전 스스로가 뿌듯했습니다. "나도 할 수 있구나" 전 여기서 저의 발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걸 배워서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좋은 쪽으로 성장하기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렇기에 학원에서 추가적으로 수업이 있는 수학을 어머니께 듣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전 바로 영어가 끝나면 늦게까지 선배들과 수학공부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브로콜리가 그려진 이쁜 수학 책이었습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선배들은 시기와 질투가 많았습니다. 저도 이해가 됩니다. 본인들보다 3살 4살 어린 초등학생이 같이 수업을 들으면 조금 기분이 상한감이 없지 않아 있을 것 같았거든요. 선배들이 눈치를 줘도 전 제 할 일만 열심히 하며 수학을 배웠습니다. 재밌었거든요, 세상의 모든 게 수치학적으로 보일 정도로 영어의 흥미를 잃을뻔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저는 운동부 생활은 쭉 한채 학교친구들 중 공부에 관심이 많은 애들이랑 어울리다가 "영재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학교에서 똑똑한 애들만 뽑아서 따로 다른 학교친구들과 수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전 운동부를 하면서 얼마나 세상이 넓고 잘하는 애들이 많은지 알았기에 다른 학교 친구들을 어서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들어가는 방법은 나름 운동이랑 비슷했습니다. 학교에서 영재원을 다니고 싶은 얘들한테 수학, 과학시험을 친다음 상위 몇 명만 영재원시험을 치게 해서 통과하면 영재원에 다니는 거였습니다. 전 처음엔 시영재원을 가진 못했고 시보다 더 작은 군, 구 영재원에 가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은 지금까지 배운 지식으로 열심히 문제를 풀어서 상위권으로 통과하였습니다. 영재원 시험을 치러 갈 때 혼자 버스를 타고 가봤는데 내심 긴장이 되었습니다. 나름 학교에서 내놓라 하는 친구들이 오는 거였으니깐요. 시험은 학교시험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어쩌면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를 푸는 게 아닌, 해결과정 혹은 창의성을 요하는 되게 신박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문제에 특화된 아이였습니다. 산만한 만큼 세상에 호기심도 많았고, 엉뚱한 생각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치고 나오면서 지고 있는 해를 뒤로 하며 아이들을 기다리는 많은 학부모들과 차를 보았습니다. 어떤 기분이었는지 묘사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은 화목한 가정에 데려오시는 부모님을 보니 솔직히 많이 부러웠습니다. 가족 이야기는 조금 뒤에 다루겠지만, 이 시점에서는 화목한 가정이 부러웠던 마음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많이 어둡기도 하고 제 지인이 읽으면 슬퍼할 수도 있기에 조금 각색을 해서 이후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저 이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한편으론 지극히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화목한 가정에 많은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지지 못했던 것이었으니깐요. 그래도 애써 웃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자기 합리화를 했습니다. 쟤들은 쟤들이고 전 저만의 삶이 있다고 말입니다.
영재원 발표가 나는 날 두근두근거리면서 교사실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합격이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근데 어째서인지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과거를 회상할 때 과거시점으로 돌아가서 무엇이 문제였나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확인하곤 하는데 아직까지도 찾지 못하는 제 마음속의 어둠에 꽁꽁 숨어져있나 봅니다.
멀리 떨어진 학교로 일주일에 두 번 수학, 과학을 공부하러 갔습니다. 교재는 지급되었고, 학부모님들이 저녁식사를 배급해 주셨습니다. 맛있었습니다. 집밥보다 훨씬. 다양한 똑똑이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문제를 푸는 친구, 하염없이 책을 읽는 친구, 정체 모를 문제를 푸는 친구, 좋았습니다.
공부는 어려웠습니다. 중, 고등학교 수학을 배우기보다는 수학, 과학이라는 학문에 있어서 탐구하는 거였거든요. 토론도해보고 설명도하면서 다양한 의견과 방법을 수용해 나가는 걸 배웠습니다. 틀리더라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다름을 이해하면서 설득도 시키는 아름다웠습니다. 분쟁을 하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해부학 시간이었습니다. 토끼, 소 눈, 오징어, 다양한 해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토하고 해부를 거부하였지만 전 좋았습니다. 물론 동물에 대한 슬픔은 있었지만 슬픔을 슬픔일 뿐 그 이상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의 호기심과 지식에 의해하는 해부였습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걸 보면 흥분되었고, 잘못 혈관을 건드려서 피가 날 때에는 신기했습니다. 그거를 머릿속으로 사람에게 대입하는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돌려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그림을 그리며 혈관중요도를 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못 참았습니다. 아마 이러한 점들이 쌓이고 쌓여서 사이코패스라고 불렸던 것 같습니다. 1년 동안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으로 참된 지식과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복숭아 털 알레르기"였습니다. 통제력이 강했지만 몸이 너무 간지러워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눈에서는 안 나던 눈물이 나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전 가방을 챙겨서 집으로 급하게 뛰어갔습니다. 뛰어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욕실에 들어가 욕조에 찬물을 가득 받고 제 몸을 푹 담그는 거였습니다.
숨을 가득 들이마시고 풍덩, 동시에 몸을 식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몸을 빠득빠득 씻기 시작했습니다. 강박증이 걸릴 정도로 비누로 여러 번 씻은 후, 잘 안 쓰던 누나의 헤어드라이기로 온몸을 말리니깐 그나마 괜찮아졌습니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머릿속 뇌리에 깊게 박히게 되었습니다. 복숭아 털을 조심하자, 피가 날 정도였으니 앞으론 복숭아 털을 진짜 조심하게 생각하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머니께서 항상 깨끗이 씻은 복숭아를 주셨으니 몰랐을 뻔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무 탈도 없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경험 삼아서 앞으로 조심하면 되는 문제였습니다.
기억이란 한 번에 되돌아볼 수 없기에, 문득 생각지도 못할 때에 생각나기에, 글을 적다 보면 아쉽게도 뒤늦게 생각난 에피소드를 못 적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기억이 날 때마다 따로 적어서 외전에 쓸까 생각중이었습니다.
가볍게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글 안의 글이랄까요?
오늘은 연인과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잠시 끄적여보자면,
연인과의 사랑을 수치화할 수 있을까? 그 많던 시간과 추억, 시점과, 시각으로 돌아가면 무수히 많은 점들과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유독 한 점만 콕 집을 수 있을까? 어느덧 이미 선분이 되어버렸을 텐데? 무의미하게 한 점을 콕 집기보다는 앞으로 유의미한 선분을 이쁘게 그어나갈 생각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화학시간에 배웠듯 기화가 되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들이부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부디 이것이 연을 위한 사랑의 힘이었기를 기다리는 게 아닐까?
기화되기 위해서 많은 분자들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안정을 추구하며 움직이기 싫어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그 수많은 분자들이 왜 기화 되려 하는 것일까? 누군가와 결합하기 위해서 누군가와 합을 맞춰보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그 친구들은 누군가에게 힘을 때론 그 힘이 스트레스로 발현되어서 온도가 높아지고 자기들끼리 부딪히면서 기화가 되어가겠지.
그들도 안정되어 있을 때는 분자이기에 자기들과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하지, 주변이 전부인 줄 알고 세상 전부가 본인들인 것처럼, 하지만 기화를 하다 보면 알 수 있지. 세상은 넓고 자기와 결합해 주는 결합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 가는 거지 않을까?
하지만 자기와 가장 잘 맞는 결합체는 딱 하나라는 사실을 스트레스라는 과정을 겪어가면서 찾아간다는 걸.
하지만 그걸 아는가?
그 기화도 결국에 하늘 저 위에 올라가서 차가운 공기를 만나면 그 스트레스 모양에 따라 생성되는 모양에 따라 이쁜 결정체가 되어서 눈으로 내린다는 걸.
우린 그걸 눈이 온다고 말하지.
오랜만에 감성적인 글을 쓰게 되었네요.
다들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