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은 사실 경쟁스포츠가 아니다

본인의 라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달하는 스포츠이다

by 감자돌이

"학교에서 하는 친구들과의 게임"


초등학교는 두 개의 큰 5층 건물이 구름다리라고 불리는 다리를 두고 이어져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의 삶은 상당히 규칙적이었습니다. "아침밥", "육상훈련", "오전수업", "점심식사", "육상훈련", "하교", "잠" 반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육상부를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하다 보니 긍정적인 에너지가 마구마구 샘솟으며 오직 저의 삶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말더듬으로부터 놀림을 받던 거를 조금씩 자존감을 통해 이겨내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직 폰이 없던 시기였으므로 경찰과 도둑이나, 좀비게임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신기한 게 전국적으로 했던 게임이 비슷비슷했습니다. 저희가 했던 게임은 육상부가 하기에 적합한 놀이였습니다. 스피드를 필요로 했으며 추가적으로 폐활량도 좋아야 했거든요. 운동코치선생님도, 그리고 담임선생님도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학교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면서 즐기라고 하셨습니다.

쉬는 시간이 10분이었지만 10분 동안 하기엔 충분했습니다. 경찰팀과 도둑팀을 정한 다음, 온 학교를 뒤집으면서 후다다닥 후다다닥 뛰어다니면 되는 거였습니다. 얼음땡의 리메이크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학교가 고지에 위치해 있었고 상당히 부지가 넓었고 또한 다양한 지형이 많았기에 정말 재밌었습니다. 목숨을 건 것도 아니고 단순한 게임이었는데 왜 다들 계단에서 구르고 무릎을 찍으면서 발목도 꺾이고 그 정도로 진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을 다할 만큼 게임은 재밌어졌습니다.


하지만 너무 뛰어다니면 숨이 차고 힘들어서 그다음 쉬는 시간에는 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걱정은 없었습니다. 저희에겐 앉아서 편하게 할 수 있는 구슬게임과, 각종 카드게임, 그리고 딱지치기가 있었으니깐요. XX문방구에서 1000원이나 500원으로 포켓몬스터, 메이플 각종 알록달록한 딱지를 구매해서, "이상해씨 출발!!" 하면서 한판한판에 진심을 다하며 어깨가 나가는 줄도 모르고 딱지를 치곤 했습니다. 생각보다 딱지치기가 힘이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배우면서 딱지를 다 잃으면 세상 다 잃은 듯이 절망하곤 했습니다.


나름 똑똑한(?) 친구들은 유희왕 게임을 하고 그랬었는데 전 아직도 이 게임의 규칙을 모르겠습니다. 저랑은 별로 어울리지 않았던 게임이었습니다.


"첫 대외활동 RCY, 내가 귀여운가?"


지금은 초등학교에도 있는진 모르겠지만, 제가 학생일 때는 RCY나 보이스카우트 이런 단체들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조금 큰 동아리였습니다. 저는 그중 봉사점수를 받으면 좋다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RCY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운동에도 진심이었지만 나름 학교 생활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중학교 이후가 지나면서 진심이 아닌 봉사활동은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요.

뒤늦게 선서를 할 때 알았지만 담임선생님이 RCY 담당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아마 봉사활동 점수에 꼬심을 당한 게 아니었을까요? 솔직히 들어가서 봉사활동을 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기억이 잘 안나는 걸 수도 있습니다.


신청이 다 끝나는 날, 학교에서는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 아람단, RCY 등 각자 복장을 입혀서 선서를 하였습니다. 종이컵에다가 초를 끼우고 불을 키우면서 노래를 부르곤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군대 입소와 느낌이 비슷했습니다. 다 같이 강강술래를 하듯 조그마한 애들이 조그마한 컵에 양초를 꼽고 원 모양으로 둘러앉아서 앉아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소속감을 느끼기보다는 밤이라서 날씨가 꽤 추웠지만 양초에 의존하면서 저물어가는 하늘을 본다는 그 감성에 취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필수적으로 구매를 해야 했던 그 나름 비쌌던 복장비용, 과거를 회상하며 비용을 생각해 보니 초등학생 때, 여러 가지 비용 합해서 20만 원이었으면 꽤 컸을 텐데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생각을 하다 보니 저번화에 작성했던, 누군가는 돈이 부족해서 참가하고 싶어도 대회활동에 참가하지 못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집니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외부적인 요인에 의하여 못한다는 건 정말 속상할 일이니깐요.


한 번씩 방학 때면 체험활동을 놀러 가곤 했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꽤 큰 비용이 들어야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뒤로 가고 저희 집이 옛날에 도둑을 들었던 것 때문에 돈이 많이 없었지만, 전 그것보다는 저의 놀러 가는 행위가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정말 어린애다운 생각이었습니다. 집의 힒듬 보다는 본인의 재미를 선택했으니깐요. 집도 많이 힘들었을 땐데, 어머니도 부업을 하시고, 아버지도 힘들게 일을 하셨었는데, 누나 학원비로도 부족하고, 빚도 있으셨을 텐데, 제 자신이 한심합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서 통신문을 나누어 줄 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졸랐었습니다. 군중심리일 수도 있고 부러움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얘들은 다 간다고 하니깐 저도 당연히 가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게 정말 힘든단 걸 성인이 돼서야 알았지만 그땐 그저 저도 가기를 희망했었습니다.

어머니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매번 거절하시다가 한 번쯤 보내주시길 선택하셨을 텐데, 지금 여자친구와 미래를 준비하면서 한 달 비용을 계산하며 살아보니 정말 다른 쪽에서 지출을 막고 저를 보내주신 것을 알기에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특별히 기억에 나는 건 처음으로 에버랜드라는 곳을 2박 3일로 놀러 간 거였습니다. 거기서 1년 선배인 누나들이 차를 타고 놀러 갈 때부터 저를 되게 많이 챙겨 줬었습니다. 얼굴은 가물가물하지만 주근깨가 많았고, 되게 말랐었습니다. 지금생각해 보면 무시무시한 누나들이지 않았을까요?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일진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워터파크를 가더라도 항상 동생처럼 챙겨주고 나비공원을 가더라도 애기처럼 대해 줬습니다. 항상 저의 손을 꼭 잡고 같이 움직이고 그랬습니다. 제가 피부도 뽀얗고, 아버지를 닮아서 잘생겨서일까요? 왜 저를 그토록 챙겨주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렇기에 한 번씩 논공에 가게 되면 그 누나들을 찾기 위해 노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때 고마웠단 말을 전해주려고였습니다.


"배드민턴 그리고 팀워크 훈련"


시간은 흘러 흘러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습니다. 한창 강당에서 몸을 풀고 있으면 배드민턴부도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었을까요, 아니면 육상이 질린 거였을까요, 전 운동부 친구들과 종종 배드민턴을 치곤 했습니다. 모든 운동이 체력과 호흡 그리고 힘을 기반으로 하기에 나름 꽤 잘 쳤습니다. 부종목으로 운동해도 될 만큼.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훈련에 해이해졌는지 코치님이 안 계시거나 저희끼리 있으면 배드민턴을 하거나 축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지금도 제 오랜 친구 중에는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는 얘들이 있습니다. 전 정말 그들의 선택과 그들의 실력 그리고 추가로 노력에 존중을 표합니다.

저는 나름 제 또래 중에선 잘 뛰었기에 그동안은 80m와 100m같이 혼자 뛰는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더라면 이제부턴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400m라는 종목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선배들이랑 함께 뛰어야 하기에 제가 잘할 수 있을까 라는 부담감이 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선배님들은 키도 훨씬 크시고 상당히 잘 뛰었고 그중 한 분은 제 로망이셨거든요. 중학생 때까지 유명했었습니다. 매번 대회 일정이 나오면 대회 종목을 정하고 훈련에 들어갔었습니다.

400m 훈련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제가 스타트(첫출발 속도)가 빨랐기에 1번 주자를 맡았었습니다. 하루에 수십 바퀴를 배턴을 주고받는 훈련만 했습니다. 저희끼리 맞춘 구령에 의하여 배턴을 주고받을 때 가장 효율성을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1번 주자인 제가 "어이"하면서 2번째 주자에게 배턴을 토스하면, 2번째 주자도 "어이"하며 3번째 주자에게 그리고 최종 4번째 주자는 배턴을 받으면 배턴을 바닥에 던졌습니다. 육상부 리더님이 마지막 주자셨는데 매번 일부러 멀리 던지곤 하셨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선배님들보다 체력이나 실력적으로 많이 부족했기에 멀리 던진 배턴을 주우러 빨리 뛰어가고 다시 주워서 다시 토스연습을 하면서 실력이 증진되길 추구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대회 그리고 시작"

매번 대회를 뛸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같았습니다. 학교의 이름을 걸고 임하는 만큼 부끄럽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였습니다. 솔직히 지든 이기든 상관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육상은 아름답습니다. 누가 1등인지 꼴등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라인에서 각자 열심히 최선을 다해 뛰면서 먼 훗날 모두가 결승점에 들어왔다는 거에 초점을 둔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본인의 발간격과 스타트에 최적화되게 스타트 블록을 고정하고 각자 소개에 맞춰서 입장을 합니다. 항상 출발점에 서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 긴장감.

"제자리에~~" , "차렷!!!" 그때 찰나에 벌어지는 정적. 왜냐하면 모두들 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스타트 총소리 신호가 울리면 발과 다리 그리고 앞뒤로 열심히 팔을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요.

스타디움이나 경기장은 상당히 넓습니다. 물론 하루 만에 끝나는 경기일정이 아니므로 주로 남는 시간에는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하며 좋은 점을 배우고 피드백을 하거나 혹은 훈련을 받거나, 저희는 그 와중에도 경찰과 도둑을 하였습니다.

가장 기다리던 시간은 점심시간이었습니다. 항상 저희는 스타디움 근처에 있는 단골 중국집을 가곤 했었습니다. 매번 가서 남자들이 모인 만큼 짜장면으로 통일하고, 탕수육 같은 요리를 추가하는 식이었습니다. 확실히 운동부라서 먹을 때에는 제약 없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체중관리는 온전히 본인의 몫이었습니다. 화목했습니다, 경기 결과 이야기도 하지 않고 오직 육상이라는 운동이 좋아서 모인 만큼 친형제나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었습니다.


"소소한 생각"

저번에 한강에서 열린 불꽃축제가 많이 아름다웠습니다. 직접 가서 보진 못했지만, 세상이 발전한 덕분에 실시간 유튜브로 관람하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화학으로 예술을 표현할 수 있구나, 정말 다양한 색깔과 표현을 할 수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아직도 제가 쓴 글을 제가 여러 번 읽어 보다 보면 아직도 많이 딱딱하구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언제쯤 부드러워질까 유해질까 생각을 하면서도, 10년 이상동안 딱딱했으니깐 그만큼 시간이 걸리겠지 생각하며 천천히 시간상관없이 결국엔 유해진다고 생각을 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오늘 하루도 스도쿠와 함께 머리를 식히며 잠자리에 청할까 합니다.

다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면서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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