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 생각보다 괜찮은걸?"
드디어 초등학교를 입학하다니.
누나랑 같은 초등학교를 가고 싶었습니다. 뭐랄까? 누나와 같이 등교하는 약간 행복한 등굣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누나 같이 가"라고 말하면서 손을 꼭 잡고 가는 흐뭇한 그림을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떤 알고리즘으로 학교가 배정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집에서 담을 넘으면 5분 거리에 그리고 정상적인(?) 루트로 간다면 15분 정도 걸리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글을 작성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심도 있게,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다 보면서 점점 과거의 기억이 생생해지는 것 같습니다.
" xx 초등학교, xx회 입학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추운 날 이젠 어엿한 학생이 되어버린 저희 마을의 수많은 쪼꼬미들이 강당에 서있었습니다. 엄연히 이런 단체생활은 처음일 거기에 다들 술렁 술렁이며 앞으로 1학년 생활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어느덧 커버린 나와, 그대로인 초등학교"
학교 시설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2년 전에도, 어머니가 근무하실 때 잠시 어머니를 데리러 학교를 가봤었는데 시설이 상당히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뭔가 학생수가 감소하니, 지원금을 학교를 관리하는데 많이 투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쁜 꽃이며, 정원이며, 아름다웠습니다. 저희 학교는 두 개의 큰 5층짜리 건물이 하나의 다리를 두고 이어져있었는데, 그 넓은 다리는 구름다리라고 저희들끼리 부르고 그랬습니다. 학교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다니다 보면 적응했었지만 1학년땐 힘들어했던 이 높은 길을 어떻게 걸어가지 하며 투덜투덜거렸던 기억이 났습니다.
8살 때 입학한 학교를 25살이 되어서 가보니, 계단이 이렇게 낮았구나, 교실도 이렇게 작았구나, 묘했습니다. 그만큼 제가 성장하고 컸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가끔 어렸던 저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고 싶습니다. 잠시 과거의 회상에 젖으며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눈을 지그시 감아보았습니다.
특히 학교를 거닐다가 놀이터나 운동장을 볼 때 저런 감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놀이터를 가지도 않고, 가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어릴 때는 하염없이 커 보였고, 운동장은 한 바퀴가 무지하게 길어 보였지만, 지금은 몇 초 뛰면은 금방 한 바퀴를 돌아지는 걸 보며, 벤치에 앉아서 놀이터 기구를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 시절의 놀이터, 추억의 뱅글뱅글 원심기, 미로 찾기, 평행봉, 미끄럼틀, 시소 등 다양했습니다.
정신이 어지러워질 때까지, 아니 토를 하면 토했지 정말 극한으로 돌려버리는 뱅글뱅글 원심기.
피라미드 모양이었지만, 톰과 제리 게임을 하면 엄청 재밌는 미로 찾기.
한 번씩 거꾸로 매달린 채 발목을 무릎이나 발목을 걸고 대롱대롱 걸려있는 애들을 보며 신기해하던 평행봉.
내려오는데 1초밖에 안 걸리지만 그 1초를 즐기기 위해서 계단 12개를 올라가야 하는 미끄럼틀.
은근히 물리학적인 지식이 들어가 있는, 그리고 시소의 끝을 지탱하던 폐타이어에 공기가 빠져버리면 반동이 약해서 재미없어지는 시소.
지금은 학생수가 저희 때와 다르게 1/3 나서 그런지, 아무도 안 쓰는 건지 무수한 푸른 잡초가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제가 다닐 땐 삽을 하나씩 주시면서 잡초 뽑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1인당 5개를 뽑아오라고 할 정도로 방학이 지나고 나면 무성하게 자라있었습니다. 진짜 이름 그대로 잡초였습니다. 질겼어요.
"밤송이의 산만함은 언제쯤 고쳐질까요?"
삐쭉빼쭉 밤송이의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외부에서 절 힘들게 한 게 아니라 스스로 힘들게 만들었다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앞화에서 설명드렸다시피 전 호기심이 상당히 많았고, 상관관계는 없지만 산만함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거의 가만히 못 있을 정도로 산만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수업시간이 40분 정도로 길지 않았지만 저는 5분도 자리에 앉아있지 못했습니다. 다리가 아파서도 아니고, 어머니께서 물어봤을 때에는 제가 행복하게 방실방실 웃으면서, 걸어 다니고 싶었다고 말했답니다. 자유분방함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생각도 자유분방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종종 제 담임선생님의 호출에 학교를 오시곤 하셨습니다.
저의 초등학교의 유명한 일화였었는데 지금은 기억하시는 친구들이 적겠지만, 제가 초1 때 가끔 수업시간에 제 반을 나가서 다른 모든 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합니다. 저도 진짜 제가 이랬었나 생각하면서 심각했구나를 깨닫습니다. 산만한 건 좋은데 남한테 피해를 준거니깐요.
그럴 때마다 집에 오면 저녁시간에 차분함을 추구하는 그에게 예절교육을 받고 그랬습니다. 상당히 지루했지만 나름 내면의 참을성과 끈기를 키워주셨습니다.
결국엔 천진난만함과 산만함이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생 첫 부모님 참관수업에서 전, 수업도중에 반을 나가서 자유롭게 복도를 돌아다니는 것을 시작으로 제 담임선생님을 당황케 하였습니다. 그걸 넘어 결국에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훗날, 20살이 되었을 때 첫 휴대폰을 구매하고 전 저 때문에 속상하셨을 초1 담임선생님께 전화로 사과를 드렸습니다. 글을 쓰는 27살, 지금도 저의 마음에 남아있는 걸 보면 아직도 많이 죄송스럽습니다.
"어쩌면 공부에 재능이 있는 걸 지도"
초등학생 1학년때 무엇을 배웠는지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납니다. 저는 공부머리가 영 아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달리 저의 하나뿐인 누나는 많이 똑똑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매번 똑똑하다고 들어서 그런가, 진짜 똑똑해진 걸 수도 있지만 저와 다르게 책도 많이 읽고, 공부를 좋아하고 또 잘했습니다. 잘해서 좋아진 건까요?
그런 누나를 저희 부모님은 열심히 키우셨습니다. 밤늦게 학원도 마치고 그랬었습니다. 수학학원을 갔다가, 영어학원도 갔다가, 글쓰기 학원까지 다양했습니다. 제 기억상으론 그때 전국적으로 법(?) 같은 것이 생겼던 걸로 압니다. 밤 10시 이후에 초등학생이 학원을 가는 건 금지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 그와 단둘이 있는 것보다는 많이 어둑어둑하지만 밖에 나가 노는 걸 좋아했기에 누나를 데리러 가는 척 어머니와 함께 밖에서 놀고 그랬습니다.
진짜 신기한 건 그때 저희 누나를 가르쳐주셨던 글쓰기 선생님의 남편분(이번 글에서는 선생님 A라고 칭하) 이 훗날, 제가 가게 되는 고등학교의 문학선생님이셨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1학년일 때, 놀다 지쳐서 누나야가 공부하는 집에 들어가 앉아서 주스를 홀짝이며 선생님 A와 이야기를 할 때, 때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천진난만한 저를 보며 "애는 커서 뭐가 될까" 생각하셨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훗날 한껏 성장한 저를 보고 놀라시긴 하셨지만요.
전 누나와 다르게 학원을 다니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습니다. 학교를 마칠 때면 많은 학원에서 카레, 짜장, 오리지널 떡볶이를 주시면서 학원홍보를 하고 그랬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주시면서 홍보하기에 어린양들의 귀에 그런 것이 들릴까요? 더 떡볶이를 먹으려고 애교를 부리며 몇 번 더 얻어먹을 뿐입니다. 하지만 제 친구들은 이르게 공부에 눈을 뜬 건지 다들 학원을 다니곤 하였습니다.
그래도 유치원일 때와 초등학교가 다른 점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심지어는 방학숙제와 수업숙제가 있는 거였습니다. 전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왜 있는 거야"
특히나 방학생활계획표를 작성하고, 일기 쓰는 건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학구열이 높으신 분이셨습니다. 어릴 땐 되게 공부를 시키시거나, 하라는 소리가 듣기 싫었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이해가 전부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 마을을 떠나서 서울로 상경을 하였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저의 마을에선 공부를 많이 잘하지 않거나, 특별한 재능이 없으면 서울은커녕, 대학도 못 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물론 서울이나 대학 가는 게 중요하진 않습니다. 다만 엄청나게 넓은 세상을 둘러보는 게 불가능하다 게 핵심이었습니다. 전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첫 중간고사 날짜가 정해지기 시작하면, 각 문방구에서는 정말 다양한 문제집을 가져다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평소에 100원 300원으로 슬러쉬나 불량식품을 먹으러 가는 게 아닌, 시험기간이 되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여러 종류의 문제집중 하나를 고르러 가야 했습니다.
문제지의 구성은 다들 비슷했습니다. 그중에서 신중히 고르시는 어머니의 모습과, 다른 어머니들을 보면서 다 비슷비슷한데 뭘 저렇게 고민하나 생각하였습니다. 결국 골라진 문제지는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먼저 탁자 앞에 앉아있는 연습을 해야 했거든요.
어머니께선 "오늘 공부 다하면, 100원을 줄 거야, 해보자" 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100원 200원을 더 주는 걸로 지금생각해 보면, 돈 받고 공부한(?) 행복 공부를 했었습니다.
지금 배우는 건 지금도 어렵듯이, 초1 때 공부도 초1 때는 어렵게 느껴지기 나름입니다. 늘 쉬운 것만 할 수는 없듯이 새로운 건 누구에게나 어렵게 다가오곤 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이해하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기억상으론 전 과목에서 몇 개를 안 틀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공부에 재능이 있기보다는 노력이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렇게 성적이 나와도 공부에 더 관심이 있기보다는 세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돌아가는 원리나, 제가 좋아하는 수학이나 과학, 공학 쪽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기름을 얼마어치를 해야 어느 정도를 갈까?, 속도와 온도, 높이에 따라 다를까?"
"집에서 이마트까지 가는데 최적의 동선은 어디일까?, 시간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저도 뛰어도 되나요?"
아침마다 등교를 할 때,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달리고 있는 누나, 형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뛰는진 모르겠었지만 매번 뛰곤 하는 걸 보면서 궁금해져 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복도를 걷다가 "육상부"를 뽑고 있는다는 모집공고를 보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육상".
아직 글을 쓰는 거에 많이 익숙지가 않아서 분량을 정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래도 나름 글을 쓰다 보니 조금씩 발전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육상"은 다음 화에 작성을 하도록 하며, 오늘 하루도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좋은 일이 있기만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