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는 모두에게 행복한 날이니깐요

그렇죠?

by 감자돌이

"육상"


가끔 잔잔한 새벽 혹은 늦은 저녁에 달리시는 많은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비가 오나 안 오나 매일 6시 30분에 뛰시던 어느 중년의 여성분 혹은 맛집을 지나 횡단보도를 걸을 때면 매번 보이는 다수의 러닝크루분들.

저도 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5화에 이어서 초등학생1학년으로 돌아가자면, 모집공고를 본 조그마한 밤송이는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이름과 학년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후 강당으로 갔습니다. 강당에 가면 체육선생님이 계시던 조그마한 교실이 무대 위 왼쪽에 위치했었습니다.

"똑똑똑"

"누구니"

"아, 저....저....달..리기 지원...해보려구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을 많이 더듬었지만, 최대한 차분하고 말을 안 더듬으려고 노력하며 힘들게 말을 꺼냈습니다. 다행히도 선생님께서는 "들어와" 하셨습니다. 키가 너무 크셨고 연륜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많이 쓴 거 없는 지원서를 보시더니, 점심시간 때 운동장으로 모여라고 하셨습니다.

2교시가 지나고, 3교시가 지나고, 4교시가 지나고 원래는 집에 가야 했지만, 집에 가는 걸 잠시 미루고 운동장으로 가니, 다양한 형 누나들 그리고 또래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쟁"


갑자기 학년별로 서라고 하시더니 학년별로 뛰어서 잘 뛰고 마음에 드는 몇 명만 뽑는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속으로 상당한 긴장감에 엄청나게 심장이 두근두근거리면서 폭발할 지경이었지만 차분히 후아후아 하며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하필 1학년이었던 제가 1조에 편성되면서 제 또래들과 붙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엄청 짧겠지만 그 당시 몸에 비하면 엄청나게 길었던 한 바퀴를 뛰어오는 거였습니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 말이라도 해주시지, 갑자기 총소리라뇨. 생각할 틈도 없이 전 달렸습니다. 신발끈도 혼자 묶을지 몰랐기에 대충 신발에 구겨 넣고 뛰었습니다. "후아후아", "헉헉" 뛰다 보니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가벼워지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서 행복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먼저 앞장서든 뒤쳐지든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골인하는 게 중요했었습니다. 결국 2등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다음 2학년, 3학년... 6학년들까지 다 뛴 후에야, 몇 명을 추려서 뽑히는데 저도 다행히 뽑히게 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xx시까지 조회대 집합"이라는 말과 함께 해산이라고 하셨는데 그 모습이 아직까지도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체계화된 질서와 무언가 모르겠는 멋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산 뒤에는 뭔가 쓸쓸했습니다. 선생님은 들어가셨지만, 누군가는 떨어짐에 속상함을 누군가는 기쁨을, 심지어는 울음을 뭔가 복잡 미묘했습니다. 달래줄틈도 없이, 그땐 남의 마음을 챙겨주기보다는 저만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마음으로 집에 갔습니다.


집에 가서는 어머니께 자랑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도 운동을 잘하셨고, 어머니도 어릴 적에 육상부였다고, 심지어는 누나도 육상부였기에, 아들도 당연히 될 수 있었다고 하시면서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날 행복하게 잠에 들었습니다. 혹시 알까요? "이 조그마한 소년이 훗날 유명한 선수가 될지"


"아침 일과"


아침에 1시간을 더 잘 수 있지만 육상부에 들어서게 되면서 1시간을 더 일찍 깨게 되며 운동을 하러 나가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있거나, 힘들게 신발을 챙겨서 운동장에 가면 일찍 오신 선배분들이 열심히 운동장을 돌고 계셨습니다.

어리바리한 밤송이인 저는 여전히 신발끈을 구겨 신고 운동장을 따라 뛰었습니다. 언제까지 뛰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무작정 선배들을 따라 뛰었습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열 바퀴까지 뛰었습니다. 훈련은 간단했습니다. 가볍게 저를 소개하고, 뛰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면, 호흡법, 다리를 높게 치는 법, 스타트를 하는 방법, 스타트블록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니 많이 먹게 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아침에 1시간을 운동하니, 체력이 다 빠져서 그런가 수업시간에도 졸았지만 차분히 앉아있게 되었으니 산만함도 줄어들었습니다.


"운동회"


여름이 되어가고 초등학교 운동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운동회를 어떻게 진행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말로 그 마을의 행사였습니다.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다 참여를 하시고, 아침 일찍 제일 시원해 보이는 곳에 돗자리를 피기 위해 다들 부지런히 학교에 오셨습니다. 또한 동생, 친척들, 심지어는 할머니들도 오셨습니다. 말 그래도 잔치였습니다. 학교 앞부터 100m까지는 솜사탕, 설탕과자, 병아리, 치킨, 분식 등 다양한 장사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그런 감성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두 번 다신 볼 수 없음에 속상함이 존재할 뿐입니다.

친한 친구들과, 어머니들과 같이 조를 만들어 돗자리에 올라가서 맛있는 걸 냠냠 먹고 있으면, 9시가 딱 되면 이제 국민체조를 시작하였습니다. 덩실덩실 음악을 들으며 국민체조를 하면서, 청백계주, 학반계주, 줄다리기, 제기차기, 콩던지기 등 다양한 게임을 진행하였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있었던 만큼, 많은 분들이 오시며 "함께 논다"라는 감정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사람의 인파도 많고 그 많은 인파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제일 중시 여겼으며 아무런 사건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모두가 진짜 순수히 운동회를 즐기러 온 게 멋졌습니다.


잠시 감성에 젖으니 마음이 두근거리며 새록하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저도 나름 육상부였기에 물론 꼬마 신입이긴 했지만 학반계주를 뛰면서 저의 4반을 1등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많은 분들의 함성소리에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 피자, 치킨, 다양한 음식을 시켜 먹었습니다. 전 그때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었습니다. 뭔가 뭔가가 기분이 이상했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뒷문으로 나가보니 몇몇 친구들이 뭉쳐서 그냥 급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는 바빠서, 혹은 회사에 가시거나 일을 가시거나, 혹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저 친구들을 보러 오지 못했다는 사실을요. 전 그래서 곧장 어머니한테 달려와서 치킨 한 마리를 가져와서는 그 친구들한테 갔다 주면서 같이 먹었습니다. 운동회는 모두에게 행복한 날이니깐요, 제가 아는 건 많이 없었지만, 하나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마음속으론 다들 사랑하는 분들과 행복한 운동회를 누리고 싶다는 거를요.


물론 허락 없이 어머니와 같이 조를 짠 친구들의 치킨 한 마리를 사라지게 한 죄는 혼남이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졌었습니다.


그래도 운동회가 마치고 깔끔한 정리 후, 진짜 몇천 명의 사람이 청소를 하니 정말 깨끗하게 학교가 정리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집에 어머니와 오면서 어머니한테는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운동회는 다 같이 즐겁게 노는 날인데, 못 먹는 아이들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가져다줬다고" 어머니께서는 방긋 웃으시며 "아들이 벌써 이렇게 많이 컸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을 주셨습니다.


"가벼운 딴 이야기"


브런치를 몇 화를 써보면서 아직까지도, 독자분들께 어디까지를 공개하고 어디까지를 공개하면 안 될지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매번 생각은 하는데, 정말 어렵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100%"를 듣지 않으면 정확히 이해가 안 될 텐데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섭고, 충격적이고, 잔인한 이야기도 있어서 어디까지 조절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글 쓰는 것은 점차 재밌으니 순서가 왔다 갔다 하더라도 쭉 적을 수 있는 만큼 적을까 합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초등학교 생활 그리고 첫사랑"


꾸준했던 육상, 아직은 실력이 좋지 않아서 대회를 나가보지는 안 했지만 열심히 느는 실력.

육상 덕분에 산만함은 감소했지만 수업시간에 졸게 되었지만 조용해진 학교.

수줍음이 많고 부끄러움이 많아 폭넓은 친구보다는 좁지만 깊게 친구를 사귀는.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기억이 납니다. 물론 지금은 저와 7년을 사귄 여자친구가 있지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햄스터를 닮은 조그마한 체형, 현재까지도 패션을 잘 몰라서 그렇지만 아무튼 바가지머리와 가까웠던 찰랑거렸던 머리, 하얗고 뽀얀 피부, 이뻤습니다.

제 짝꿍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마치고 방과 후 활동도 같이 했었습니다. 그때는 저학년일 때는 보통 점심 먹고 집에 가지만 방과 후 활동을 신청하면 학교에 남아서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글을 적으면서 조금씩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습니다. 진짜 첫사랑이긴 했나 봅니다. 말을 잘 못하기도 하고 순맥이었지만 바보였었기에,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생각해 보면 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억지로 말을 거려고 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전 솔직히 부끄러움이 상당하게 많아서 그저 바라볼 뿐 뭔가 막 주도적으로 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희 둘은 인연이 없었던 걸까요? 짝꿍은 병결을 많이 쓰기 시작하더니 어디가 많이 아픈지는 모르겠지만 치료를 위해서 도시로 이사를 가는 걸 끝으로 저와 가벼운 작별인사 끝에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저게 정말 전부인데 뭔가 쓰다만 것 같은 기분을 주게 되어서 뭔가 찝찝함이 남아있습니다. 집전화번호라도 물어볼걸 그랬나?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어디로 가는지 주소라도 받아놓았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합니다.


아름다운 햇빛과 하늘, 그리고 선선하게 부는 바람, 아마 가을인가 봅니다. 항상 뜨는 해와, 가끔씩 보이는 말똥말똥한 불빛들, 그를 생각하며 창문밖을 쳐다보며 버스를 타면 가끔 그립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좋은 나날이 있기를 기원하며 오늘은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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