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세계를 생각하기보단 상대방에게 작은 응원을
육상 대회는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xx군, xx시, xx도, 그리고 모두가 한번 정도는 나가고 싶어 하는 전국체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차근차근 올라가야 상위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높은 곳에서 잘하는 선수들과 뛰어보고 싶어 했기에 다른 참가하는 선수들처럼 좋은 결과를 얻길 원하였습니다.
처음엔 저희는 많은 장비들이나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그렇다 할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저 윗 선배들 때부터 쓰시던 스파이크신발을 물려받고 옷도 단순히 학교 체육복을 입고 운동을 했었습니다. 물론 장비가 좋을수록 좋다는 건 알았지만 저희 레벨 때에서는 장비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노력으로 승부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회에 참가해서 다양한 학교들의 육상부들을 보면서 좋은 장비나 좋은 운동복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심 부러웠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론 제가 위치한 곳에서 상대적으로 비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9등급인 학생이 3등급으로 가는 게, 2등급을 받던 학생이 1등급을 받는 것보다 더 멋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쩌면 자기 합리화 같다고 보이긴 했었습니다. 제가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여 독자분들께 제가 생각하는 바가 잘 전달이 되지 않았을까 걱정입니다.
아무튼 살짝 그런 장비 차이에 기세가 눌려서 긴장하긴 했지만 전 첫 경기로 80m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전 8조였고 4번 레인이었습니다. 1조가 뛰는 걸 보면서 많이 긴장을 했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첫 경기니깐 잘하자" 수도 없이 맴돌았습니다. 1조,2조... 7조 어느덧 저의 차례였습니다. 막상 저의 이름을 부르면서 레인으로 가라고 하니 상당히 긴장이 되었습니다. 선배님들이 입고 물려주신 노란색복에 저희 학교 이름이 적힌 마크를 하고 차분히 레인에 서서 발디딛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제가 육상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금방 끝난다는 점입니다.
땅 소리와 함께 출발해서 숨을 쉬지도 않고 팔을 열심히 휘두르다 보니 금방 끝나있었습니다. 몇 초가 걸렸을까요. 떨어지는 땀을 닦으면서 전광판에 기록을 봤습니다. 금세 경기는 끝났고 바로 다음조인 9조가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전 준결승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전 흥분해 있었습니다.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가 짜장면집을 갔을 때에도 잘 먹지 않았습니다. 오후 2시경 준결승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준결승전이라서 긴장한 탓이었을까요?
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 때 저의 마인드가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왜 준결승전 뛰기도 전에 두려워하고 이미 졌다고 받아들였을까요? 단지 그들이 걷보기에 키가 크고 다리가 길고, 잘 뛰어 보이는 이유로 겁먹을 것까지야 있었을까요.
당연히 마인드가 저런 상태에서 출발을 하였으니깐 결과도 당연히 탈락이었습니다.
냉정하게 분석을 해보면 남들보다 느려서 진 것 맞지만, 마인드도 문제가 확실하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배운 중요한 사실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것입니다. 제 마을에서는 제가 젤 잘 뛰는 아이였겠지만 이때를 계기로 저보다 훨씬 잘하는 분들이 많다고 배움과 동시에 그들을 목표로 삼고 열심히 훈련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 거다. 네가 모두를 이길 거라고 생각해라"
4학년이 되면서 대구 e스터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주일마다 들어야 하는 강의목록이 있었는데, 전 정말 e스터디를 하기 싫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왜 듣는지 진짜 이유를 못 찾아서였습니다. 이 당시에는 제가 공부로 갈 거라는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았고, 운동 쪽으로 빠져서 선수생활을 하거나, 혹은 코치, 체육 선생님이 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컴퓨터로 강의만 틀어놓고, 만화책을 보거나, 버블파이터라는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강의 틀어놓고 만약 강의가 40분짜리면 게임하고 있다가 지나있으면 다시 다른 강의를 틀던 식으로 했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지금과는 다르게 필요한 지식, 필요 없는 지식을 스스로 구분 지으면서 배웠던 시기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뿐인데 말입니다. 사실 모든 지식은 배우면 도움이 되곤 하는데 말입니다.
전 어떤 여자아이를 좋아했습니다. 밝고, 피구를 좋아하며, 피구부 주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쁜 여자아이였습니다. 너무 이뻤어서 점심시간에 저의 친구한테 여자아이의 이름을 물어봤었습니다. 이름도 이뻤습니다. 전 부끄럼이 많았고, 휴대폰도 없었으며, 어떻게 이성을 대해야 할지도 몰라서 초등학교 1학년때처럼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그러 멀리서 바라보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거에 행복해하며, 종종 강당에서 훈련을 받을 때 서로 마주치는 걸로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운동부 전체 회식을 할 때 용기를 내서 절 소개했습니다.
"안녕, 난 xxx이야, 반가워" 이게 전부였습니다. 저 말을 하고 너무 부끄럽고 수줍어져서 쥐가 쥐구멍을 찾듯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서 마음속으로 "그래, 여자보단 편한 남자들이 좋지" 하면서 고기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래도 이때 인사 이후로 여자아이가 저한테 먼저 인사도 하고 웃음도 보여주며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되게 행복했습니다. 저의 삶에 있어서 따뜻한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행했던 게임들이 많았습니다. 스타, 메이플, 서든어택 보다도 저흰 버블파이터라는 게임을 좋아하고 했었습니다. 캐릭터도 귀엽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물에 캐릭터를 가두어서 숨 못 쉬게 한다음 죽인다는 건 소름 돋지만 그 당시에는 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제가 좋아하는 여자아이(A양), 그리고 A양과 같은 피구부 절친 B양은 같이 종종 피시방을 가면서 버블파이터를 같이 하곤 했었습니다. 그 당시 봉봉이나, 바이킹을 운영하시던 할머니가 새롭게 오픈하신 pc방에 다니곤 했었습니다. 지금처럼 pc방에 대한 법? 같은 것이 명확히 없어서 담배연기에 찌들어있던 pc방, 소소하게 400원짜리 레쓰비를 마시곤 했었습니다. 담배냄새가 몸에 안 좋은 걸 알았지만 그녀 같이 있는 게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 B양에게는 불편했던 자리였을 것 같은데 왜 자꾸 A와 제가 놀러 가면 같이 껴달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전 사랑보다는 우정이 우선시 되었기에 같이 놀곤 했습니다.
저렇게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같이 학교에서 점심도 먹고, 운동 훈련이 끝나면 같이 집에 걸어가곤 했었습니다. 물론 부끄럼이 많아서 주로 제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쪽이었습니다. 함께 조금씩 시간을 오래 보낸 지 며칠이 지났을까요?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전 제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우리 사귀자"
"그래!"
조심스럽게 내민 소중한 문장에, 돌아온 아름다운 대답. 완벽했습니다. 그 뒤로 전 매일매일 일어나며 운동장을 뛸 때마다 오늘이 며칠인지 생각을 하면서 운동을 하였습니다. 고백할 때, 그리고 매일아침 김칫국을 거하게 마시면서 행복한 연애생활을 꿈꾸고 더 나아가서 결혼까지 그리고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차릴생각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수줍음과 부끄러움, 그리고 휴대폰이 많은 걸림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휴대폰이 없으니 안 그래도 연락이 잘 안 되는데, 그럼 학교에서라도 대화를 해야 하는데 부끄러움 때문에 해야 할 대화마저 못하게 되니 저희는 결국 사이가 점차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감정만으로는 전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이때 깨달았습니다. 저는 서로를 정말로 좋아한다면 상황이 어떻든 좋은 사이가 될 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연락이 잘 안 되면 시간을 내서더라도 꾸준하게 챙겨줘야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그놈의 부끄러움이 뭐길래, 말도 못 걸고 자꾸만 피해 다녔을까요?
가끔, 버블파이터란 게임이 아직도 남아있나 확인 겸 종종 들어가곤 하지만, 그때마다 친구추가창에 남아있는 지금은 잘살고 있을 A양의 닉네임을 보며 과거회상에 잠기곤 합니다. 제가 부끄럼움을 이겨내고 잘 연애를 했더라면 평행세계는 어땠을까 하며 어디서 무엇을 하는진 모르지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집에 전화가 한 통 왔었습니다. ‘xx이가 학교서 울고 있어요.’ 어머니는 얘가 웬만해서는 울 애가 아닌데 왜 그러냐고 여쭤보니 선생님께서 영어로 ‘hi, my name is xx.’ 그 짧은 문장을 하지 못해 울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반 친구들은 다 했지만 혼자만 못했다고 울었습니다. 집에 쓸쓸하게 걸어온 는 저녁식탁에서 되게 혼이 많이 났습니다. 저의 하나밖에 없는 누나한테 말입니다.
"그것도 못하냐고, 수업시간에 다 배운 거 아니냐"
속상하긴 했지만 괜찮았습니다. 모를 수도 있고, 쓴소리를 동기부여 삼아서 더 배우면 그만이었습니다. 누나와 다르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공부에는 크게 머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인성만을 중요시하셨습니다.
자기 전까지 그날 제가 울었던 모습이 생각났었습니다. 차에 치여도, 대회에서 떨어져도, 헤어져도,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도, 가정이 위험에 쳐해도 울지 않았었습니다. 근데 왜, 저 영어 한 문장이 뭐라고 울었는지 깊은 잠에 들기 전까지 계속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 어머니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영어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흔쾌히 보내주셨습니다. 운동에 너무 집중을 하느라, 피곤하면 수업시간에 자곤 했기에, 공부실력은 형편없었습니다. 영어 학원에서는 간단한 영어테스트 후, 저를 초1학생들이랑 공부하는 반에 보냈습니다. 솔직히 부끄러웠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나 되는 제가, 1학년생들과 같이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어떡하나요? 알파벳도 몰랐습니다. 부끄러움도 잠시 행복했습니다, 제가 모른다는 걸 배운다는 건 언제나 짜릿했으니깐요. 아침엔 운동,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 그리고 방과 후에는 훈련, 저녁시간에는 학원을 다니면서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덧 제1학년반을 떠나서 5학년 반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몇 개월 걸리진 않았지만 뿌듯했습니다.
어느덧 날씨가 많이 추워졌네요. 감이 이쁘게 열린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새 새로운 폐렴이 돈다니 다들 건강 조심히 사귈 바라며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