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의 기억, 27살도 애기다

덩치만 큰 애기

by 감자돌이

"입학이 엊그제인데 벌써 6학년인가?"


조그마했던 입학생들이 어느덧 초등학교 최고참이 되어있었다. "6"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건, 초등학교에서 최고이자 곧 뒤에 위치한 중학교로 입학이 가까워졌음을 알려주는 지표였다. 운동부 친구들과의 재밌는 훈련, 영재원에서의 지식 탐방, 무난했던 교우 관계, 아쉬운 점을 굳이 뽑아보자면 이성문제, 그리고 가족 문제였었다.

내가 누구인가?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난 더 발전해 나아갔다. 하고 싶은 것은 간단했다. "그"처럼 강해지고 똑똑해지는 것.


공부로 갈지, 운동으로 갈지 아직은 갈피를 확실히 정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곳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운동은 좀 더 전문적으로 해나갔었고, 100m, 200m, 400m 계주까지 나가면서 우리는 트로피를 여러 번 받았었다. 어느덧 당당하게 대표라는 타이틀도 거머쥐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영재원에서의 교육과정도 조금씩 끝나가고 있었다. 군, 구 영재원은 질렸었다. 뭐랄까, 금붕어가 사는 곳에 맞춰서 크기가 커져가는 것처럼 조금의 자만심은 섞여있었지만 너무 좁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눈 돌린 곳이 시 영재원이었다. 시니깐, 도시니깐 크지 않을까? 그래서 도전해 보게 되었습니다. 훗날 내 이름이 남게 될 그곳으로 말이죠.

수학, 과학 중에 어디를 선택할까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수학에 좀 더 매료되어 있었기에 수학으로 신청을 하고 시험을 보게 되었었다. 시험은 훨씬 창의성과 폭넓은 생각을 요하는 문제들이었습니다. 구, 군보다 훨씬 업데이트가 된 문제였고 실로 경이로웠습니다. 아마 이러한 문제를 좋아해서 수학에 좀 더 매료된 게 없지 않아 있습니다. 기억이 많이 나진 않지만 많은 문제를 풀진 못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어렵다기보다는 힘들었습니다. 항상 시험을 치면 왜 하늘은 맑고 이쁜 노을이 지고 있는 걸까요? 구, 군 영재원과 마찬가지로 왜 더 많은 잘 사는 학부모님들이 학생들을 데리러 오는 걸까요?

전보다 더 짙어진 쓸쓸함과 형용할 수 없는 우울함을 지니고 버스를 힘겹게 탔습니다. 그날 유독 하늘 노을이 이뻤습니다.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사진이라도 찍어 놓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이 아름다움을 눈에 보존하길 기원하며 하늘을 원 없이 바라봤습니다.


"시 영재원, 여기도 비슷한데"


시 영재원에 합격이 되었기에 전 구, 군 영재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을 적으면서 기억이 나지만, 이때 친구였던 얘들이 훗날 같은 고등학교 때 다시 만나게 되더라고요, 저랑 같이 전설을 쓸 친구들이었습니다. 아무튼 시 영재원은 어떤 곳일까 생각을 하며 주말에 버스를 타고 가봤습니다.

인상 깊지만 뭔가 확실히 다른, 그러면서도 괴짜의 냄새가 강하게 나서 친해지고 싶지 않은, 나까지 덕후가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했습니다. 확실히 시설을 비롯하여 수업하는 것도 비교를 하면 안 되지만 질이 달랐습니다. 진짜 학문이라는 게 뭔지, 13살 나이에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 쪽은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한 개를 찾기 위해서 혹은 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단하신 분들이 오랜 시간을 공들여서 무엇인가가 나오는 거구 나를 알았습니다.


1주일에 1번이었지만 확실히 발달된 곳이라 그런지 달랐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차선, 그리고 수많은 건설시공, 그리고 엄청나게 높은 건물, 물가가 차이 많이 나는 음식점,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 "귀티"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어떻게 뭘 하면서 자랐길래 귀티가 나는 걸까요? 전 그래도 "강함"은 있었습니다. 저의 친가 쪽에서 물려주신 아마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누구한테도 굴복하지 않는 강함.


도시 친구들은 상당히 똑똑했습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진도를 뺀 것 같지도 모르겠지만 상당한 수학적 지식이 상당했고, 일찍이 대학이라는 곳을 준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초등학교 6학년인 저의 눈엔 그저 같은 수준으로만 보였습니다. 경쟁이라는 것보단 학문을 배우는 곳이었으니깐요. 시 영재원 이야기는 중학생 때부터 에피소드가 많아서 중학생 시점이 되었을 때 얘기를 마저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안 좋았던 경험 실수 그리고 후회"


학교는 매번 평화롭지만은 않았습니다. 학교도 조그마한 사회란 걸 잊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밝게 빛난다면 누군가는 어둡게 되는 것을 몰랐습니다. 단순했기에 모두가 평화로운 줄만 알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던 것이었을 텐데 말이죠.

전 운동부였고 공부도 잘했으니 주위에 항상 친구가 많았고 인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딜 가나 힘이 약하거나 성격이 소심하여서 외로움에 타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글을 조심스럽게 써야겠습니다. 항상 민감했던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집에 돈이 많든 적든, 외적인 부분이 좋든 안 좋든, 공부를 잘하든 모자라든, 옷을 좋은 걸 입든 안 입든, 형제나 남매가 있던 없든, 저걸로 왜 갈라 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봤자 비슷비슷할 텐데, 저걸로 누구를 따돌리고, 자기들 마음대로 강자 약자를 나누고 괴롭히고, 왕따 시키고, 폭력을 휘두르는 현상을 봤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친가 쪽 어르신들은 매번 말했습니다. 힘을 함부로 쓰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고. 그들은 어리석은 것을 넘고 무지함을 넘어서 그냥 짐승이었습니다. 저와 같이 훈련을 받은 운동부 몇몇 친구들도 그들의 권력이 뭐가 좋은진 모르겠지만 그들과 점차 가까이 지내면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뭐가 잘났다고, 뭐가 대단하다고 학우들을 괴롭혔던 걸까요? 전 맞서 싸우길 추구했습니다. 저도 유치원 시절 말을 많이 더듬어서 무시를 많이 받고 놀림을 많이 받아봤기에 힘든 학우들을 도와 주웠습니다. 관계란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한쪽을 도와주면 한쪽은 멀어지고, 또 멀어지는 한쪽을 도와주다 보면 또 기존의 한쪽이 무너지는, 그러다가 제가 오히려 어려움에 쳐해 지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육상부의 리더로서, 그리고 힘듦을 겪어본 친구로서 모두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잘못된 길로 빠진 육상부 친구들을 다시 꺼내오고 화해시키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겐 행복과 긍정을 심어주는 하지만 전 아직 어렸나 봅니다. 아니면 제가 그걸 바꿀만한 힘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는 힘이 전부였으니깐요. 그 힘도 단순한 "무력"이었으니깐요.


잠시 안 좋았던 일들을 얘기한 김에 다른 이야기도 이어서 해볼까 합니다.

지금까지 전 효자라고 많이 불렸습니다. 시, 군에서 상장도 받았을 정도로 나름 부모님을 위해서 속을 안 썩이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도 정말로 속을 썩일만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초등학교시절에 했던 속 썩인 이야기를 몇 개를 해볼까 합니다.


하나의 에피소드는 "도벽"이었습니다. 버블파이터에 이어서 한때 유행했던 게임 중에 하나인 FPS게임이었습니다. 게임회사인 넥슨에서 ‘카운터스트라이크’라는 게임이 출시되었었는데, 만 15세가 되진 않았지만, 이 게임 때문에 처음으로 어머니의 물건에 손을 처음 되게 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친구들이 모두 다 총 쏘는 게임을 한다고 저녁식사시간마다 부모님께 부탁을 하였지만 부모님은 주민등록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두 분이 주무실 때 몰래 지갑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외운 채 아이디를 가입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물론 여기까지는 도벽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게임을 하다 보니, 좋은 총, 좋은 캐릭터, 좋은 스킨을 갖기 위해선 루찌를 모아도 되지만 결국 이뻐 보이고 누구나 갖고 싶은 건 매번 캐시였습니다. 5000원, 10000원 매우 큰돈이지만, 진짜 여러 번 생각해도 딱 한 번만 훔쳐서 지르고 다신 안 하자면서 자꾸 자기 합리화를 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았기에 옳지 않은 행위란 것과, 나의 그 인터넷상의 행복을 위해서 저울질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선과 악 그 사이에서 전 결국 캐시를 지르기로 마음을 하고 그들이 자는 틈을 타서 장롱을 열어서 지갑에서 돈을 훔쳤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상당히 많이 느꼈습니다.

그들이 다 잘 때까지 새벽에 자는 척 깨어있다가, 아마도 그는 예민해서 깼을 텐데, 주무시는 척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 지갑에서 10000원짜리 지폐를 한 장 꺼내오면 진짜 긴장감과 땀이 주룩주룩 흘렀습니다.


그런 지폐를 내일 문방구에 가서 문화상품권으로 교환한 다음 게임에 지르면 솔직히 생각보다 많이 아쉬웠습니다. 분명 지르기 전까지 보유하기 전까진 스킨을 가지면 세상 행복할 것 같았지만 막상 지르니 뭐랄까 맘에 들지도 않고 왜 질렀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철회라는 것도 알아보았습니다.

막상 가지기 전에는 미치도록 원했지만 막상 가지고 나니 별거 없는 이 허탈함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뒤론 허탈함에 의하여 다신 도벽을 안 하는 계기가 되면서 게임에 현질을 안 하게 되었답니다. 의미가 크게 없는 행위란 걸 일찍이 알아버렸습니다.


"소소한 끄적임 그리고 이야기"


어제 여자친구와 고기무한리필집에 갔었습니다. 최근 들어 몇 년 동안 안 꿨던 꿈도 꾸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 잘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리고 10년 동안 쌓여왔던 감정들이 솟구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최근 들어 질문을 많이 하곤 합니다. "요새 별일 없지?" , "다들 잘 되어가고 있는 거 맞지?".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감정적인 게 그리고 솔직해지라는 걸 많이 배웠습니다.

많은 감정들이 생각이 납니다.

"중학교 때 혼자 살면서 외로웠던 감정"

"한부모라고 욕 들으면서 버텨왔던 감정"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한테도 손을 안 빌리고 꿋꿋하게 참아왔던 감정"

"나도 평범해지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

"나도 아픈데, 나도 슬픈데, 나도 포기하고 싶은데 라는 감정"

많은 감정들이 솟구치고 울분을 토할 것 같지만 아직까지는 눈물이 나진 않습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하염없이 안겨서 절 달래주었으면 마음속의 갇혀있던 10년 전 성장하지 못한 절 달래주었으면 합니다.


글을 한번 읽어보니 조그마한 애기가 투정을 부리듯이 글을 써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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