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다들 비만이 없는 건가..?
초등학교의 졸업여행은 그렇게 기억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 너무 무난하게 흘러갔었어서 생각이 안나는 건지, 도화지에 수채화를 그린느낌처럼 모양만 남아있고 안의 세부적인 내용은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모두들 그러하듯 전 평범하게(?)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중학교는 초등학교 바로 뒤에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보다 200m 등반을 더 해야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고지가 높고 오르막길이 대략 400m 정도 되어서 그런가 저희 학교엔 다들 체중이 마르거나 정상이었습니다.
저희 초등학교와 다른 초등학교 하나가 그대로 중학교에 가는 시스템이었기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기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잘 뛰는 친구들과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친구들이 올지 마치 더 넓은 초원에 온 치타 같았습니다.
이때 기억하는 일화는 한창 빨간 패딩? NORTHFACE나, 기타 브랜드의 패딩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가격으로 몇십만 원 정도 나갔던 것 같은데, 약간 부의 상징과, 부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권력과 이어지게 되면서 일진과 비슷 무리한 집단이 생겼었습니다. 저러면서 고작 14살 나이지만 친구들이 허세가 들려서 초등학생 때보다는 좀 더 심하게 누군가를 따돌리고, 욕하고, 때리고, 돈을 뜯는 그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저의 자랑은 아니지만 전 요즘말로 치면 인싸였습니다. 피부 하얗고, 공부도 잘했고, 운동부 리더였고 제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잘생겼었습니다. 그래서 일진인 얘들이 저랑 친하게 지내길 원했고, 제 운동부 친구들도 일진과 어울리는 얘들이 많았지습니다. 전 그래도 인성을 중시 여기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에 그들과 대화정도는 하긴 하였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한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항상 "힘이란 것은 좋은 쪽에 쓰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는 훗날 많은 걸 이뤄서 제 꿈을 이루고 싶었기에, 그때를 기약하며 무슨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고도 포함되었습니다.
저 옷이 뭐길래, 그 당시 저의 누나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조금 안 좋게 표현하자면 부모님의 등골을 빼앗았습니다. 어느 정도 이해는 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유행에 민감하고 뒤처지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죠. 물론 아닌 분들도 있습니다. 저처럼 본인만의 길을 묵묵히 가는 분들을 보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님이 옷을 안 사줬다고 뒷담 하는 친구들부터, 부모님 카드나 돈을 훔치는 친구들 다양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진짜 전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깟 옷이 뭐길래, 아마두 제가 과거에 만원을 훔쳐서 게임에 긁었을 때의 욕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나중에 다 후회하겠죠? 본인의 순간적인 욕망을 컨트롤하지 못했던 것에 있어서 훗날 많은 후회를 할 텐데 말입니다.
입학식을 했었습니다. 추웠기에 다양한 패딩 혹은 두꺼운 옷을 입고 강당에 다들 바르게 서있었습니다. 그래도 중학교라서 그런가 뭔가 선생님들이나 분위기 그리고 모든 물건들의 크기가 커진 것 같았습니다. 각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던 얘들이 좋은 성적으로 중학교를 입학하기에 나가서 상을 받았습니다. 거기엔 저도 있었습니다. 물론 전 운동부라서 그렇게 공부로 유명하지 않았지만 교단에 서있는 동안 같이 상장을 받은 친구들에게 눈치를 많이 받았습니다.
마치 "쟤가 왜 같이 서있지?" 이런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전 그들을 존중하고 존경했습니다. 아, 전 저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열심히 살거나 노력하시는 분, 혹은 뭔가를 배울 점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애기든 초등학생이든 어르신들이든 그 누구든요. 저보다 어떤 부분을 잘하는 분들께 그쪽 부분 이야기를 듣거나 배운다는 건 꽤 흥미롭고 재밌기 때문입니다. 마저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친구들의 시기적인 부분은 이해가 가능했습니다. 제가 뒷담 까는걸 친구를 통해 들은 걸 말씀드리자면,
"쟨 어릴 때 머리도 나쁘고 말도 더듬었으면서 그리고 운동밖에 안 했으면서 왜 우리랑 같이 수업 들어?" 이랬다고 합니다. 그들은 부모님들이 좋은 직장, 그래봤자 같은 마을이겠지만 풍족해 보이는 삶과 옷, 그리고 학구열이 넘쳤으니, 학원도 적게 다니고 운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저를 싫어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쭉 공부하며 배웠겠지만 전 초신성처럼 갑자기 등장해 버렸으니깐요.
그래도 전 친하게 지내길 추구했습니다. 왜냐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저보다 한 발짝 앞서 나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략 학생수는 250명 정도였습니다. 학교 건물은 초등학교 건물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고 뛰어다니기 적당한 곳이었습니다. 8반까지 있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두 개의 초등학교가 중학교로 합해졌습니다. 그 말은 두 개의 초등학교 육상부가 이제 하나의 팀이 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신기하게 전부다 남자였습니다. 입학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코치님이 강당으로 다 집합하라고 하셨습니다.
코치님의 짧은 소개를 끝으로 점심시간 동안 운동장에서 뛰는걸 다시 한번 평가하면서 종목을 정해주시고 훈련방식을 정해주셨습니다. 같은 종목에 여러 명이 겹치기도 했었습니다. 학교당 인원 제한수는 없었지만 종목 같은 부분은 특정한 기록 안에 들어가야 했기에 조금 성적이 뒤처지는 친구들은 아쉽지만 과감히 잘리곤 했습니다. 중학교 때 결과로 증명해야 체육고등학교나 시에서 스카우트를 해가기 때문에 잘 보여야 했습니다.
아침에 평범하게 일찍 나와서, 아 그래도 나름 학교에서 운동부를 응원했기에 검은색에 빨간색 선이 그인 멋진 운동복도 하나씩 받았습니다. 학교가 공부 쪽보다는 운동 쪽에 투자를 많이 했었습니다. 물론 저희들도 결과로 보답해 드렸습니다.
그때 저와 다른 초등학교를 나온 친구랑 100M를 러닝메이트로 같이 뛰었는데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스타트가 상당히 빨랐습니다. 전 스타트가 부족하였기에 그 친구한테 스타트를 많이 배웠습니다. 영상도 보면서 이론도 배우면서 조금씩 스타트를 빠르게 하면서 기록을 단축시켜 갔습니다. 0.01초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방학 때 마다 다른 고등학교에서 시에 속한 중학교 육상부끼리 단체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때 배웠던 운동방식이 진짜 아직까지 기억나지만, 이러한 훈련방식을 전 저의 모든 분야에 적용을 시켰습니다. 그 당시에는 욕이 나오는 진짜 사람이 이러다가 죽을 것 같은 훈련방식이었습니다.
먼저 처음 오자마자 가볍게 400m를 여러 바퀴 뛰며 몸을 푼다음 본격적으로 실력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200m를 뛰게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젤 처음 뛰었을 때가 기록이 젤 좋을 텐데, 그때를 기준으로, 쉬는 시간을 적게 주면서 그 처음기록을 넘을 때까지 계속 200m를 뛰게 시켰습니다. 진짜 고통스러웠습니다. 뛰면 뛸수록 체력이 저하되고 근육이 굳어갈 텐데 어떻게 첫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아무쪼록 되게 신박하지만 괜찮은 훈련방식이었습니다. 나약한 얘들은 중간에 포기하고 집에 가기도 하면서 진짜 "뛰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고 운동 쪽으로 확고한 얘들만 남아서 키우겠다는 강한 코치님의 생각이었지만요.
그래도 훈련 도중에 어, 여자코치님을 보면 힘든 마음이 사라지긴 했었습니다. 꽁지머리를 뒤로 묶으시고 모자에다가 호루라기를 불고 계셨는데 상당히 이쁘셨습니다. 그래도 엄청 성격이 불같으셔서 무섭긴 했지만 말입니다.
요새 소소한 끄적임에 뭔가를 적는 거에 재미를 들린 것 같습니다. 여기에 가끔씩 이전화에 적지 못했던 기억들을 적을까 합니다. 기억이 날 때마다 저의 메모장에 에피소드를 적곤 합니다. 이렇게 적다 보니 에피소드 안의 자그마한 코너같이도 느껴집니다. 이번엔 "피아노"에 대해 끄적여볼까 합니다. 전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피아노가 심신안정과 더불어서 산만함을 줄여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피아노"앞에 있던 "미술학원"도 다니게 하셨습니다. 생각보다 제가 학원을 꽤 많이 다녔군요. 피아노 학원에서 전 닿지도 않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매번 몇 안 되는 곡을 반복재생해서 치기만 했습니다. 그중에 대표곡이 "엘리제를 위하여"였습니다. 여자친구와 피아노 이야기를 하면 전 매번 이 곡만큼은 진짜 누구보다 잘 친다고 자부하고 합니다.
가끔 멍청하게 3/4와 6/8이 뭐가 달라?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지만 이론은 모를 뿐, 곡을 한번 들으면 대략 비슷하게 칠 줄 아는 정도로 피아노를 잘 쳤었고 대회도 나가기도 했었습니다. 전 곡을 제 맘대로 치는 걸 추구했습니다. 자유롭게, 악보처럼 치기보다는 새롭게 음악을 리믹스하든 음을 추가하거나 박자나 템포를 제 맘대로 바꾸면서 쳤습니다. 그래서 떼런 괴이한 엘리제를 위하여 그리고 때로는 상당히 더 듣기 좋은 엘리제를 위하여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며 양화대교를 지나다 보면 넓게 흐르는 한강과 수많은 건물들을 보며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전 이 다리가 왜 이렇게 좋은진 모르겠지만 뭔가 가슴에서 두근두근거리는 희망과 밝은 미래가 꿈꿔지곤 합니다. 그럼에 있어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그리고 이 글을 읽지 않으셔도 세상에 존재하시는 모든 분들이 좋은 나날들을 보내길 희망하면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