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많은 요인을 추가할수록 무기한적으로 판단이 어려워진다.
판단은 때론 쉽게 내려지곤 한다.
다만 많은 요인을 추가할수록 무기한적으로 판단이 어려워진다.
말 그대로다. 그는 스스로 여러 번 되물었을 것이다.
몸이 요새 안 좋으니 일을 쉴까?
병원을 갈까?
가족한테 말해볼까?
조금 자신을 돌보는 편이 좋을까?
단순히 흑백논리로 생각을 해봐도 2의 n제곱이 되어버리는데 이걸 적당히, 사실 적당히라는 것이 어렵다. 저 자체가 많은 걸 고려한다는 전제조건을 띄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에게 적당히라는 것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거였다. 본인, 스스로를 제외하면 답은 쉽다. 당연히 안 가는 걸 택하겠지. 당연한 순리이다.
그는 이타적이다. 내가 만나본사람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이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기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게 이타심이란 단순히 남을 위해주는 것만이 아닌, 자기의 시간을 넘어 마음 공간까지 그리고 삶까지 희생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타심이 과한걸 난 좋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자기의 삶 인생이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도 그와 같았던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기보단 앞으로라도 나를 더 찾기에 브런치에 글을 기재하고 있으니깐.
그는 본인에게 요인을 하나만 두지 않고 할머니 그리고 어렸던 나, 대학을 가야 하는 누나, 빚, 어머니를 위한 선물, 행복한 가정, 여러 가지 어른들의 복잡한 돈 관계, 회사 어려웠을 것이다.
계획을 짜보면 알만한 사실이 있다. 애초에 미래를 예측하고 그거에 기반하여 현재 할 수 있는 최고의 판단을 하는 건 어렵다는 것을. 더 나아가 과하게 표현을 하자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처럼. 흔히들 말하는 최고의 수 "신의 한 수"는 되게 힘들고 기이하다는 것을.
왜냐하면 미래예측엔 시간이라는 절대로 뇌로는 생각할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수억 개의 변수들 또 각각에 파생되는 수억 개의 변수들.
거기서 판단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예측할 수 없기에 그는 불안함과 걱정을 느꼈을 것이다. 본인의 판단이 최고일까 훗날 뭔가 후환이나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불안함과 걱정은 계속해서 더 깊은 걱정과 불안함을 낳았을 것이고 계속 강박관념에 시달렸을 것이다. 안 좋은 결과는 연속적인 결과를 초래하기에 그의 몸의 병은 더 심해졌을 것이고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난 어쩌면 그가 이렇게 될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2010년대에 그가 내린 최고의 판단이었겠지 이해한다.
최대한 많은 지식과 데이터 그리고 그거에 기반하여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고 결정을 내리기.
난 그가 죽은 이후 여자들이 돈 문제 가지고 많이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그를 떠올렸다.
돈 때문에 서로 배신을 하고 다신 안 볼 것처럼 서로에게 나쁜 말을 하고 버리고 죽고 싸우는 게 맞는 걸까.
그렇게 많이들 갖고 싶을까 그냥 포기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적당히 행복하게 살 정도로 있으면 되지 왜 이렇게 욕심이 꾸덕꾸덕한 걸까.
꼭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인가.
꼭 남들과 비교하며 물질적인걸 치장해서 자존감을 올려야 하는 것일까.
혼자 살 수도 있지. 매번 본인이 번돈을 부쳐야 하는 걸까?
서사가 길었던 것 같다. 잠시 옛 감정에 젖은 것일까.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가보겠다.
3일간의 장례식.
난 슬프지 않았던 게 아니라 다른 감정이 더 솟구쳐서 울음과 그리움이 묻혀버린 것이다. 감정 따윈 버리고 내가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아서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강인함, 헌신, 희생, 긍정적, 절대 포기하지 않고 꼭 성취하겠다 다짐했다.
어렸던 난, 몇 개월 전만 해도 추석 때 떠 있는 달보고 이 모든 안 좋은 상황에서 도망치고 통제하길 빌었지만, 그가 죽고 나서는 그 반대로 모든 걸 받아들이고 자기가 짊어지기로 다짐을 하였다.
의사는 돈 때문에 꿋꿋이 참고 일하셨다가 죽으신 거라고 하셨다. 이것 때문에 난 지금도 돈을 되게 싫어한다. 그러시면서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 버틴 것이 대단하신 분이라고 하셨다. 난 그때 또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하 뭐가 그리 중요하길래’라고 나왔다. 지 몸도 챙길 줄 모르는 기본적인 자세도 안되어있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 맞을까? 어리석다고 표현되어야 하지 않는 걸까?
x호실에서 그를 추모하는 장례식이 열렸다. 이쁜 화환들 그리고 식사를 할 수 있는 넓은 공간, 잠을 청할 수 있는 공간, 도우미 아주머니들까지 그리고 맛난 음식들과 술까지 넘쳐났다. 많이들 오셨다. 사람들이 올 때마다 생각했다. 그가 인복이 많은 걸까? 아니면 그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준 걸까? 아마도 후자에 가깝겠지, 그는 항상 이타적이었으니깐, 본인이 손해 보더라도 타인이 행복해하면 좋아했으니깐. 정말 바보 같은 남자였으니깐.
한분이 들어오시면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악수를 요하시면 악수를 하면서, 옆에 계신 큰아버지께서 누구신지 조용히 설명해 주셨다. 난 인맥을 그렇게 중요시 여기지 않았지만 대단하신 분들도 많았다.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자리를 안내해 주면서 가볍게 앉아서 술 한잔, 예의상 술 한잔을 받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난 다시 자리를 지키러 가는 식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서있는 것도 힘들었지만 난 그것보다, 앞으로 정말 막막했다. 기계처럼 인사하고 감정이 없었지만, 시끄럽게 울고 절망하는 할머니, 가족들, 그리고 세상을 다 잃은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 갑자기 정신을 차린듯한 누나. 어떻게 약속을 지킬까? 나는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가끔 지칠 때쯤이면 학교가 그리웠다. 이게 무슨 일일까? 잠시 잊으면서 달콤한 꿈에서 깰 때쯤 현실은 장례식장이었으니깐.
내심 아버지가 그리웠다. 진짜 싹 다 버리고 혼자 살고 싶었다. 아버지는 경주법쌍막걸리와 오징어 땅콩과자를 좋아하셨다. 24시간 쉴 틈 없이 사람들이 왔고, 중간엔 자리가 부족하기도 하였고 음식이 다 떨어졌다고도 했었다. 그럴 때면 내가 상주였기에 내가 돈을 다 지불할 테니 오는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풍족하게 더 맛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리곤 하였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깐, 최대한 그가 나였더라면 어떠한 판단을 했을까를 생각해 보면서 결정을 하나하나 해나가기 시작했다. 아들은 아빠를 닮는 것 같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 게 난 저 때 돈이 한 푼도 없었지만 말이다.
하루정도는 씻지도 않고 뭐 먹지도 않았다. 친가가 쓸데없이 과하게 모든 측면에서 유교사상을 지키길래 난 특정한 부분에서 내 생각에 이거는 아니다 싶어서, 어머니와 누나는 앉아서 쉬라고 하기도 하고 밥도 먹고 오라고 잠 오면 자라고도 했다.
아무리 사람이 죽었어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하니깐, 그리고 그도 이걸 바랐을 테니깐.
뭐 나만 힘들면 되니깐. 모두가 고통을 짊어질 필요는 없으니깐. 하루종일 장례식장에 있으니깐 시간 개념도 잊을뿐더러 한잔 한잔씩 받는 술이 날 취하게 만들었다.
왜 다들 괜찮다, 다 잘될 거라는 소리를 하는 걸까? 그런 격려 필요 없는데, 나 알아서 이겨낼 수 있는데, 오히려 더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너무 힘들고 지쳐서 꼬인 걸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동정에서 나오는 입발린 말이라고 느낀 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잘 안 오는 시간은 새벽 3시, 4시경이었다. 난 조용히 나가서 그가 좋아하는 두 개를 사들고 다 잘 때 영정사진 앞에서 술을 먹었다.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는 죽었지만 하늘에 있는 그와 약속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약속은 꼭 지키겠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재밌는 여정일 될 거라고.
하루가 저물어갔다. 느낌이 어땠냐고 훗날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매번 같은 대답을 하곤 했다.
뭐랄까? 낚싯배를 타고 낚시를 하다가 큰 폭풍우를 만났는데, 그 사람 귀에는 폭풍우 소리가 들릴까? 자기의 마음소리가 더 많이 들릴까? 언제 배가 뒤집일 지도 모르고 언제 자기가 죽을 줄 몰라서 이 상황 해결 자체에 집중을 하고 있을 텐데 폭풍우 소리가 들리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