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나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한없이 나약해

by 감자돌이

나의 밑천이 드러난 건가?


입만 닫고 있으면 멋진 놈, 괜찮은 녀석, 멀리서 보면 좋은 남자.

입학할 때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아마도 그땐 앞선 화에서 말했던 것처럼 외로웠기에 사람들이 잘 좋게 봐줬으면, 잘 대해 줄 걸 알고 사랑을 줄 걸 알기에 힘든 티를 안 냈지만, 막상 그를 보고 그의 모습 그리고 닥쳐올 미래와 현실을 마주하니 결국 참고 참았던 대략 2년 정도기간에 쌓였던 모든 감정과 정신병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안 좋은 것이 더 사람의 뇌에 각인이 잘된다고 했었나, 나의 소문은 학교, 기숙사, 선배 후배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다. 속된 말로 인성이 터진 놈이라고 소문이 났었다. 내가 열심히 티를 안 내고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것들은 하루아침에 코스프레, 거짓된 모습, 가면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로 나를 욕하게 되었다. 나를 좋아했던 그리고 나랑 친했던 아니 그들은 날 좋아하고 친했던 걸까?


그저 나와 같이 다니면서 본인들의 자존감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나와 다니면 선생님들이나 여학생 혹은 선후배들이 좋게 본다고 그저 인맥관리를 위해 날 이용하는 게 아니었을까?

저게 맞았겠지, 맞았으니 내가 무수한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을 때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막상 모든 걸 잃어보니 알 수 있었다.

여학생들이 말 걸면 수줍어하고 얼굴 빨개지는 것들은 진실의 여부를 가리지도 않고 어떠한 무리의 시기질투에 의해서 콘셉트, 혹은 어장이라고 불러졌고, 선배들에게 깍듯한 것은 인맥관리를 위한 나의 미래 돋움을 위한 콘셉트이라고 불렸고, 두루두루 친구들을 도와주는 것도 착한 아이 콘셉트이라고 불렸다.

하루아침에 사람 바보 만들어지기 정말 쉬웠다.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생각했다. 난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물론 실수한 것은 있었다. 한순간에 FM 모범생, 엄친아였던 아이가, 갑자기 어디 스르르 갔다 오더니, 인성이 터져서는 감정 통제도 못하고,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과 긍정이라곤 저리 버린 채 어둠 속에서 파묻히며 모두를 혐오하고 모두를 밀쳐냈으니 어쩌면 내가 자초할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당연한 서순이었을지도


당연히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뒷담, 인식, 사람이라면 주변의식을 신경 쓸 수밖에 없기에, 물론 내 여자친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다나 학생이었으니, 어려웠을 것이다.

어디선가 또 소문이 들려왔다. 여자친구가 몇 주째 이별을 고심하고 있다고, 곧 이별을 할 거라고, 그 소문이 내 귀에 들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저녁 9시 30분에 여자친구가 내 책상에 포스트잇을 적어놓고 갔다. 야간자율학습 다 끝나면 밖에서 잠시 보자고 말이다.


그녀를 봤다. 울상이었다. 아마도 끝이겠지, 이제 연애라고 보기도 어려운 그저 서로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연애가 끝을 맞이하는 날이겠지, 직감이 되었다. 역시나였다.

1분도 채 걸리지 않아서 우리는 헤어졌다. 벌레들이 모여드는 가로등 밑에서 그녀는 힘들게 내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고, 난 고민하거나 붙잡을 생각은 1도 안한채 바로 헤어지자고 했다.

금방이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고 난 마음속으로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혼자가 편해, 약속에 매진하자"라는 생각으로 감정을 또 하나를 접어갔다.


그가 보고 싶다


고민을 하였다.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생각을 해봤다.

그는 눈이 거의 하얀색이었었다. 눈이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백내장 같은 것 같기도 했었다. 몸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셨었고, 추운지 더운지 구분을 못하셨다. 그는 죽을 것 같다고 하셨다. 매 초 고통을 느끼셨다. 의사는 말했다. 손을 용암에 넣는 것과 마찬가지의 고통이 느껴지는 거라고, 상상을 하지도 못했다. 용암을 보지도 못했을뿐더러, 어릴 적 화상은 입어봤지만 용암엔 가보지도 않았으니깐.

그는 마약성분인 모르핀을 더 넣어달라고 하셨다. 슬펐다. 또한 가여웠다. 난 허락했다. 뭐 그의 고통을 덜어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기에 그래도 가는 길이라도 좋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저때가 그가 죽기 전 1주일 전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 지금도 기억난다. 다들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내가 젤 힘들다고 생각했었고 나를 이해해 주고 나를 챙겨주기를 원했다. 다들 그럴 나이고 그럴 상황이었으니깐. 나만 바라봤었다. 그가 죽어가든, 그녀가 그를 옆에서 간호하든, 누나가 공부에 매진하든 난 나만 봤다.


그는 나한테 공부하러 가보라고 자기 같은 사람한테 시간을 붓지 말고 자기보다도 약속에 더 집중하며 미래를 그리라고 날 먼저 학교로 보내셨다.

뒤에 엄청 몇 년이 지난 뒤에 남은 가족과의 사이가 좋아진 후에 그날의 진실을 들었다. 그가 절규하며 날 미치듯이 찾았다고, 왜냐면 저게 2년 동안 아들이랑 한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였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가자마자 폭주를 했다고 했다. 창문을 부수고 병실을 어지럽혔다고 했다. 아들이었기에 앞에서 괜찮은 척 온갖 다 나아가는 척 평화로운 척을 했지만 참는 척이었다.

난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냥 솔직해도 되는 거잖아, 뭐 하러 숨겨, 아프면 아프다, 두려우면 두렵다.
10년이 지난 난 이제 이해했어. 나름 잘 살고 있어. 내가 말했잖아
그때도 나만 잘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도 다른 의미로 나만 잘하면 끝이야


다들 너무 시끄럽다


난 학교에서 거의 왕따 취급을 당했다. 분명 아는 척하는 애들 날 욕하는 애들 비하하는 애들 다양했지만, 날 다들 싫어했다. 뭐 그러려니 했다. 2년 동안 혼자 살았고 폰도 없어서 연락할 사람도 없는데 그리고 이성적인 친구나 가족 친구도 없는데 3년 더 이렇게 산다고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저 1등을 찍어서 약속을 지킬 생각뿐이었다.


어느덧 4월 모의고사를 치는 날이었다. 난 집중이 안되었다. 그놈의 1주일이 다가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루 더 일찍 갈까 봐 혹은 조금 더 살았을까 시간이 더 있지 않을까 혹시 의사라는 사람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집중이 안되기에 시험을 던지고 우울함을 잊으려 피시방을 갔다.


난 이때 담배를 배웠다. 펴서는 안 되는 것도 알았지만 내 불안함과 걱정 그리고 강박, 우울, 포장해 봤자 좋을 게 없는 걸 알지만 이걸 도피하기 위해서 담배를 시작했다. 물론 대학교 1학년 3월까지만 피다가 여자친구를 만나고 약속을 하면서 지금까지도 끊고 있다.

담배를 하루에 10개를 피웠다. 그나마 괜찮아졌다. 불안함이 정말이지 잠시만이라도 사라져서 편안했다.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정말이지 나에겐 고마웠다.


그리고 난 피시방을 가서 공부를 포기하고 미래 준비 없이 막 놀았던 친구들과 게임을 했다. 그날 유독 비가 많이 왔다. 저녁 7시경 학교에서는 날 급하게 찾았다고 했다. 기숙사나, 학교나, 운동장이나 하지만 난 휴대폰이 없었기에 날 찾지 못하였다가, 기숙사 룸메이트가 피시방 갔다고 말을 해서 피시방으로 선생님들이 데리러 왔다. 담임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 비를 맞으시면서, 나한테 차를 타고 어디를 가자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수학을 가르치셨는데, 정말 수학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하셨다. 비 내리는 도로를 달리며 xx병원으로 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누나가 날 처음 보더니, 어깨를 톡톡 치면서 잘 될 거라고 한마디를 했다.


다 잘 될 거야


난 담배를 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옷에 냄새 배길까 걱정은하지도 않고 그냥 담배를 피우고 뒷건물로 들어갔다.


불이 다 꺼진 병원, 혼자만 밝게 빛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며 사색에 잠겼다. 금방 올라가며 띵 소리와 함께 복도가 열렸다.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 절규하는 소리, 우는 소리, 시끄러웠다. 귀가 아팠다.


시끄럽고 한없이 나약해


한없이 나약한 인간들, 난 그들을 나약하다고 칭하였다. 사람 죽은 게 뭐 대수라고, 한두 명 죽는 거냐고. 내가 가니깐 다들 내 몸에 손을 대며 바닥에 주저앉으며 절망했다. 거슬렸다. 아마도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한 것 같았다. 그는 죽었다. 차갑게 죽어있었다.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난 다시는 피시방을 절대로 가지 않기로 다짐을 하였다. 망할 피시방 때문에 그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으니깐, 난 진짜 정신이상자구나 그딴 감정 내 머릿속 하나 컨트롤 못해서 예의나 도를 지키지 못했구나 마음속으로 날 엄청 때렸다.



다들 2025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가 지기 전까지 쭉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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