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묵직한 대화
모든 걸 부정하고 싶었다
알고 있었다.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진 않았다는 것을.
사실 추석 때 들었었다.
그녀는 말했다. 그가 아프다고 어쩌면 치료가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무조건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내가 이때 유독 비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탓이었을까? 혹은 내 인성이 이 당시에 안 좋았던 걸까?
아마 말해준 건 부모의 양심이었을까? 1년 동안 여행 간다고 거짓말하고 추석을 맞이해서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상태와 나의 상태를 보니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가. 아니면 나한테 뭘 어쩌라는 거지, 뭐 달라질 게 없는데 뭐 하란 거야 뭘 부탁하는 걸 돌려 말하신 건가? 난 몰랐다.
그땐 이랬다. 그 당시에 난 그녀, 그 둘을 죽일 듯이 미워했으니깐 나의 삶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헌 옷수거함을 뒤지던 시절. 추운 날 각종 벌레들과 같이 잠자리를 청하던 시절, 구더기인지 밥인지 정체 모른 걸 먹던 시절, 가진 게 없어서 무시받고 버림받던 시절. 그들을 미워했다. 끔찍하게도.
그녀는 마저 말했었다.
유명한 ceo분도 이 병에 걸려 죽었다고.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차가운 내 마음은 날 낳아주신 아버지의 죽음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모두가 죽는다고 그저 그런 거라고 그를 아버지가 아닌 세상 속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단지 날 만났을 뿐이라고. 이 이상의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소유욕은 물론이고, 다 적진 못했지만 다사다난했던 시절 때문에 감정마저 소유하지 못했다. 애초에 소유라는 정의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난 차가운 ai와 비슷했다. 가끔 지인들이 챗gpt와 대화하는 느낌이 난다라고도 한다. 사이코패스, 감정 결여자 뭐 상관없었다. 크게 남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으니.
혼자 살 거니깐
그래도 아버지니깐
그는,
바로 췌장암이었다. 돈이 있었다면 살렸을까? 내가 막대한 부와 권력이 있었다면 살렸을까? 수많은 시점과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수 없는 가정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은 ceo의 죽음을 예로 들며 결국 죽음으로 회귀했을 거란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렇다고 부질이 없었나? 아니었다.
죽음을 결괏값으로 보지 않고 그와의 대화 시간, 가족끼리의 시간을 결괏값으로 잡으면 한없이 달라졌다.
내가 돈이 있었거나, 부, 혹은 권력 혹은 인성 더 나아가 상황이 좋으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 혹은 아들이었으면 결괏값이 좋게 나왔다. 그와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알차게 보내지 않았을까? 이것이야말로 그가 원하는 게 아니었을까?
후회의 씨앗, 가정의 유일한 단점은 바로 후회다.
과거의 후회와 생각에 갇히게 되는 시작점이 되었다.
추석 때까지 그들은 대구의 xx병원에 있었다. 정확한 진실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듣기론 그러하였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조용히 권했다. 그들과 추석 때 안 좋은 일을 겪고 집에 왔을 때 그의 몸 상태를 스쳐지나 봤지만 누가 봐도 그는 상당히 많이 아파 보였을 것이다.
언제 죽어도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저 몸을 이끌고 추석 때 할머니를 보러 간 거였나, 그리고 그런 폭력과 상황을 만든 것인가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1년 동안 엄청나게 미워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였기에 확실히 피는 피였기에 애써 무시 못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누레진 얼굴, 근육 많던 그의 몸은 퉁퉁 부어있었다. 아마도 복수?라는 거겠지만. 난 권했다.
저 몸 상태로 남은 수명이 1년 일 수가 없다고 내가 혼자 살면서 공부한 지식 엄청 얕은 지식으로 믿기지가 않았다. 그가 1년 남짓 남았다고? 휴학을 내고 1년간 마지막 가족시간을 보내자고?
xx병원에서 저 몸을 보고 할 수 있는 온갖 검진을 다하고 지난 1년 동안 관찰했을 텐데 나온 결론이 1년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가족시간을 보내기 싫어서가 아니라 이걸 떠나서 1년은 어떤 멍청한 의사가 내린 결정일까? 난 서울 유명, 한국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병원을 추천했다.
그녀는 내 말을 믿어주었다. 난 전부를 걸었다, 끽해야 몇 개월일 거라고. 최악의 상황은 며칠일 거라고 혹은 몇 주. 그녀는 서울 쪽으로 갔다. 이 시점이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시점이다.
애초에 제정신으로 입학을 하지 못하였다.
그녀가 내 말을 들은 추석 그다음 날 바로 서울로 갔으면 다른 결과였을까? 물론 그녀도 돈이 부담되었을 것이었다. 대충만 찾아봐도 비싼 병원이었으니.
그 병원에서도 치료가 안되고 못 살린다면 뭐 받아들여야지 싶었다. 그러니 대구로 내려왔겠지? 좋지 않은,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을 것이다.
xx대학교에선 1년 남았다고 했었고 서울 쪽 병원에선 한 달 이내라고 했다. 한 달 30일 정도 남짓 어쩜 전 세계를 일주할도있는 시간.
그는 여전히 몰랐다. 몰라서 다행이려나.
그가 만약 사실을 접했더라면 아마 억울해하지 않았을까 평생 자기 삶 인생 없이 희생만 강요받다 그게 목적이 되어서 주체를 잃어버린 채 수십 년을 살아왔는데 억울하지 않았을까? 그의 생각을 많이 했다.
참 나도 그를 그리워했잔 건가 싶다.
난 무능력을 탓했다. 돈이 많았자면 내가 더 월등하고 권력이 있었으면 살렸을 것이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그의 앞둔 죽음을 내 탓으로 돌렸다.
문득 적어보는 그에 대해서
잠시 그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약속한 10년이 지나니 그동안 숨겨놓았던 꾹꾹 눌렀던 감정이 복받친다. 이게 이런 거였구나. 이제 타인의 감정과 기분들 그리고 이야기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복잡 미묘한 뭔가 어휘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접근했던 내가 어리석게 느껴진다.
이런 게 하나씩 배워간다는 거겠지, 삶은 수많은 배움의 연속이다.
그는 못 배웠다. 고등학교를 나왔다고는 하나 농사를 짓는다고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다 5남매 중 셋째 장남이었다. 난 그를 거의 중졸과 유사하게 간주를 하곤 했다.
그도 마찬가지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나보다 한참 더 일찍 초등학생 때, 국민학교시절이시니.
참 힘들었을 것이다. 그 유교사상 선비의 집에서 태어나 장남으로 가족들을 다 먹여 살리려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헌신했을까. 무시 안 받고 살려면 그는 강해져야 했었다. 그래서 그는 불같은 성격에 주먹질 폭력을 어린 시절에 아주 잘했다고 한다.
그는 어리석었다, 매번 할머니에 미쳐 살았고 자기의 삶이란 게 없었다. 본인 자신보다 할머니를 챙겼고 그녈 신처럼 대했다.
그의 과거를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추석 때 그 성하지 못한 몸을 이끌고 할머니를 보러 가는 게 이해가 되었다. 그는 아마도 내심 짐작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본인 스스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럼에도 그 시간을 본인의 치료나 가만히 모르핀을 맞으며 침대에 누워서 희망을 깃대는 것보다는 그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보러 가기로. 도대체 할머닌 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삶의 목적이었을까?
난 그를 존경한다. 그의 노력 늦은 나이에도 공장에서 필요한 지식이라고 뒤늦게 물리학과 영어를 공부하며 자기 팀 후배가 서울대학교를 나온 수재라길래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며 배웠으며 대단했다. 공부를 좋아했다.
그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대단했다.
더 말하겠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으니 나중에 따로 그에 대해 적는 편을 만들어야겠다.
한 달 죽음을 앞두면 어떤 느낌일가? 몸에서 막 느껴지고 그러는 건가?
짧지만 묵직한 대화, 그리고 약속
그는 대화를 했다. 1-9 등급 그는 이것조차 몰랐다. 9가 좋은지 1이 좋은지 난 말씀드렸다. 4-5등급이 나왔다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더 공부해서 9 맞으면 되겠다고. 난 슬펐다. 하지만 강한척했다. 그의 말을 다 맞다고 해 주기로, 전혀 그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그냥 단지 못 배운 거라고. 이해를 하려 했다.
솔직히 말해서 모르는 게 뭐 대수인가
그는 이것저것말했다. 자기가 죽으면 친가와 재산싸움이나 장가싸움에 휘말릴 거라고. 단단히 마음먹고 버텨라고. 자기 아들이라고.
약한척하지 말라고. 강해지라고. 그 누구보다도 강해져서 남은 여자들을 지키라고. 나를 굳게 믿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고1 어린 나이지만, 그는 누나는 멘탈이 약해서 못 버틸 거라고 눈에 살기가 짙은 강한 내가 해야 한다고 약속 몇 개만 하자고 했다.
훗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약속 3가지.
2,3번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평생 나만 알 것이다. 1번은 그동안 날 챙겨주신 스승님, 여자친구, 절친 3명, 어머니 이렇게 밖에 모른다.
이제 독자분들께도 공개할까 한다.
간단하지만 어려웠다.
어머니와 누나를 최우선시하며, 그들을 힘들게 하지 말아라. 그들을 위해 살아라.
어려웠다. 고1 때 저 말을 들었을 때와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다른 결정이 내려지지만 난 어렸기에 단순히 공부와 돈, 높게 올라가는 것이 목표였다.
추석 때 달에게 빌었던 것처럼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1등 무작정 1등을 목표로 삼았다. 전국 1등. 그 정도면 만족하겠지.
그때 시계를 봤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었나
난 그만 가본다고 했다. 비가 내렸다.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