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해서 미안해
글을 쓰기에 앞서, 글을 쓸 때 최대한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되살려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기에 다소 글이 혼잡하거나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글이기에, 좋든 싫든 저의 기억이기에 그저 가볍게 읽어주시고 자연스럽게 잊혔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씁니다..
중학교를 졸업하였으니 당연하게도 난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야만 했고, 일단 입학을 했다. 입학식 때 얼마 멀지 않은 거리라고 생각했었기에(난 실제로 20km 정도 거리면 충분히 걸어서 간 적이 많았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학교까지 걸어가서 입학식에 참석을 하였다. 난 입학 때 상장을 받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이라나 뭐라나, 지금 글을 쓰는 게 되게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로 주위에 무관심하였고 더 나아가 진짜 저런 종이 한 장에 큰 의미부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와 그녀의 사랑 혹은 나를 챙겨줄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다. 나의 성적은 상위 0.4%였다. 농어촌전형에다가 우수한 성적이었으니 운이 좋게도 기숙사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시궁창으로 변해버린 집에서 통학을 하는 것보단 일단 외로움에 미쳐서 기숙사에 들어오라는 선생님의 제안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마 공부를 못해서 지원을 못 받았더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거였고, 진짜 우수장학금을 받지 않았으면 난 아마 지금처럼 살지 못했고 안 좋은 결말을 맺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진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난 내가 공부로 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국체전에도 나갈 정도였기에 당연히 운동 쪽만 고려하고 있었고, 공부는 단순한 취미였다. 잘하면 물론 좋은 거였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을 뿐.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저 위에 올라가려는 그러한 욕망이나, 혹은 소유욕과 더 나아가 권력과 명예와 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런 게 왜 삶에 필요한지도 몰랐고 그저 태어났기에 사는 그냥 모든 게 신기하고 좋았기에 사는 것이었다.
최근에 그녀와 전화를 하면 그녀는 항상 말씀하시곤 하셨다. 태어날 때부터 뭔가를 가지길 싫어했다고,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다른 아기들과는 다르게 가진 게 없어도, 돈도 없어도 좋아했고, 옷도 없어도 좋아했다고, 너무나도 세상을 순수하게 바라보고 성격 또한 순진했다고. 최소한의 살 정도만 되면 아무 불평불만 없이 삶을 즐겼다고. 그를 닮아서 그런가 드문 남자유형이라고.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한 애매한 지표였다.
몸은 기숙사에 친구들과 함께였지만 정신은 어딘가로 사라진 채, 개학을 하기 전까지, 난 여전히 그녀와 그를 기다렸다. "기다림"이라는 무미건조한 생각만 했을 뿐, 이미 나의 마음은 그들을 떠난 지 오래였다. 명분상 기다린 거였다. 진짜 비참한 말이지만 "혹시나, 행여나" 이 단어를 마음속에서 못 지운채 기다렸다. 이제 돌아온다 하더라도, 나는 사춘기 시절을 힘들게 보냈고, 제대로 사랑도 받지 못했으며, 더 나아가 자아가 형성될 시기에 홀로였기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정신 차려야 할 시기에 이것을 하지 못했으니깐.
난 나의 통장과 집을 뒤져서 있는 돈, 없는 돈, 코가 묻든 안 묻은 돈이든 상관없이 돈을 싹 다 모아서 개학 일주일 전 캐리어를 싸서 기숙사로 향하였다.
가기 전 배도 출출하고 이제 새롭게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10000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곰탕을 먹었다. 맛있었다. 슬펐다. 나만 혼자였다. 다들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나는 혼자였으니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모두가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어느 행복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 이렇게 3명이서 밥 먹는 분이 나한테 다가오셔서는 xx고등학교 기숙사에 가는 길이냐고 물어보셨다. 진짜 감동이었다. 나한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었으니깐 감사했다. 훗날 이 친구는 나와 여자문제로 조금 부딪히게 되지만 그래도 좋은 친구이다. 아무튼 마저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 아들을 잘 부탁하신다고 친하게 지내라고, 멀리서 와서 이쪽 지리를 잘 모른다고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추가로 기숙사에서 먹으라고 맛있는 음식도 주셨다.
이 글을 적으면서 생각해 보지만, 그때 친구의 아버지와 어머니 더 나아가 친구는 날 어떻게 봤을까?
공허함과 외로움에 찌들어서 힘들어하는 아이로 봤을까? 아니면 내가 감정과 그런 분위기를 열심히 숨겨서 그냥 좋은 사립학교에 입학한 아이로 봤을까? 어른이었기에 내가 아무리 숨기더라도 티가 났을 건데 말이다.
날 가엾게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좋은 사립학교였기에, 흔히들 내신이라고 말하는 커트가 높았고 내가 사는 촌동네를 제외하고 다양한 구, 군에서 곱게 자란, 돈도 많은, 학생들이 왔었다. 기숙사에 가서 내 짐을 풀고 나는 침대에 누워보았다. 편안했다.
"이게 기숙사라는 곳이구나" 공용 화장실, 공용 샤워실, 공동체제. 모든 게 신기했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애초에 가진 게 없었으니깐, 아니 가질 수 없었으니깐 뭐라도 하면서 내걸 만들어가면 된다고 생각을 하였다. 룸메이트들과는 금방 친해졌다. 난 남자와는 잘 어울렸으니깐.
기숙사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얘들이랑 중학생 때 이야기를 하고 취미,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이제 개학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펼쳐질 나의 고등학교 3년은 전설로 남게 될지 모른 채 잠에 들었다.
많은 여자들을 보았다. 난 알고 있었다. 내가 여자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족에게 못 받은 사랑이 어느덧 애정결핍으로 뒤바뀌어 있었고 이거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나를 집착해 줄 여자, 나에게 미칠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여자친구를 사귀면 안 좋게 변질될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그리고 비인간적이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서 애써 여자친구 만들기를 포기하고, 여자들이 말을 걸어와도 무시하고 멀리 하였다.
그래도 결국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였고, 누군가는 자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자들이 자꾸 대화를 걸어왔다. 싫진 않았지만 내가 애정결핍인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마냥 고맙지는 않았다. 나도 상처를 받아봤기에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할 때 여자애들과 나눈 대화를 잠시 빌려와 보자면, 고1 때 날 가장 괜찮은 남자 2위로 뽑았다고들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만과 자신감에 차오르기보다는 내가 그만한 남자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1 때 당시 키도 작았고, 물론 피부는 하얗고 뽀얗지만 남자답게 생기기보단 강아지상이었으며, 객관화가 잘 된 내가 날 평가하기로는 마음과 정신이 썩어있었는 걸 알았기에 왜 날 저렇게 평가했는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난 어느 여자애에게 눈이 갔었다.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긴 것이었다. 그녀는 이뻤다. 어깨까지 오는 머리스타일과 하얗고 다부지게 생긴 얼굴 그리고 목소리와 그 특유의 웃음이 아름다웠다. 난 끝없이 의심했다. 진짜 그 여자아이가 좋은 건지, 아니면 단순히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우려고 좋아하게 된 건지 의심을 하고 또 했다. 어떤 일에든지 있어서 신중이라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난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느꼈고, 너무 순수하고 순진했던 난 짝사랑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였다. 한없이 바라봤다. 어릴 때부터 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기면 그저 한없이 바라보며 보는 행위 그 자체로 만족을 하곤 한다. 나랑 사귀든 말든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행복함을 느꼈다. 그 여자아이는 나름 인기가 많았다. 다른 반에서도 좋아한다는 소문이 들려왔었고 내 긱사 룸메이트도 좋아한다고 들려왔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걱정이 되기는커녕 재밌었다. 누가 저 여자아이와 사귀게 될까 정말 궁금해짐과 동시에 나는 자존감은 높았기에 그게 내가 될 거라고 생각하였었다.
3월 중순쯤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진짜 하늘이 도와준 건지 랜덤 자리배정에서 난 그녀의 옆에 앉게 되었다. 진짜 요즘말로 갑분싸였다. 막상 여자아이가 내 옆에 앉으니 난 아침부터 얼굴이 시뻘게져있었고, 인사는커녕 쳐다보지도 못하고, 안 그래도 말을 더듬었었는데 더 더듬게 되었다.
확실한 건 진짜 이뻤다. 그럼 뭐 하는가, 말 한마디 걸지도 못했는데. 진짜 놀라웠던 건 그 여자도 얼굴이 시뻘겋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여자아이도 날 좋아하나" 김칫국을 시원하게 마셨지만 이건 김칫국이 아니었다. 긱사에서 그 여자아이 이야기를 하면 얘들이 그 여자아이도 날 좋아했다고 한다.
아직도 고등학교 후배들한테 선생님들이 나와 관련된 썰을 풀어주시는 모르겠지만, 난 이 이야기만 생각하면 진짜 미쳤나? 내가 과거에 저랬다고? 싶을 정도로 내가 정신이 이상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영어 수업시간, 선생님께서 관심이 있는 주제로 영어글쓰기를 해오라고 과제를 내주셨다. 안 그래도 생각이 단순하고 없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짝꿍에 대한 스토리를 썼고, 발표시간에 이걸 그대로 발표해 버리면서 그날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교무실, 그리고 2학년, 3학년 선배들 층까지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여자아이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진짜 1도 없었으나 이미 저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이거를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뒤 스승의 날이 되어서 선생님들을 찾아뵈러 갔을 때에도 심심하면 후배들한테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다.
긱사에 돌아와서 그리고 저 일이 있은 이후로 긱사는 되게 시끌벅적했다. 입학할 때부터 외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난 유명했었고 그 여자애도 외적으로 유명했었다. 희대의 관심사에 우리 둘은 오르게 되었다.
"도대체 그래서 언제 사귄대"
3월 말까지 시끌벅적 해져갔다. 난 고백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너무 당황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게 맞았다. 스쳐지나만 가도 기뻤고, 잠시나마 외로웠고 공허했던 감정을 잊을 수 있어서, 추가적으로 나를 버리고 떠난 그녀와 그가 생각나지도 않았기에 더욱더 그녀가 너무나도 좋았다. 이제 한숨 돌리는가 싶었고 이때 난 하나의 후회를 하게 된다.
그와 그녀가 생각나지 않았다는 말은 그 여자아이를 좋아하기보다도 그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행위"를 통해 나의 외로움과 고통을 잊는 "행위"를 더 높게 쳤다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난 스스로를 속이면서 좋아하게 된 거였는데. 난 이걸 몰랐었고 애써 스스로를 부정하며 그녀에게 푹 빠져가며 그녈 미치도록 좋았했다. 짝꿍이 된 지도 꽤 시간이 지나니 우리는 가끔 서로 대화를 하곤 했다. 그래봤자 가벼운 인사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안녕", "어.. 안녕" 이게 전부였다.
난 결국 결정을 했다. 수많은 선배들 여사친들, 그리고 스스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난 그녀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