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가 내 모습을 못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by 감자돌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렇게 사라져 버린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그와 할머니의 다툼. 엄청난 시끄러움. 매번 신기하고 새로운 거에 짜릿함을 느끼는 나마저도 지금 상황을 역겹게 받아들일 만큼 별로 반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누굴 따라가야 하는 것일까? 그? 그녀? 아니면 둘 다 나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이 상황에서 나 정도면 잘 큰 거 아닌가? 그냥 혼자 살까? 내가 혼자서 더 성장을 해서 더 유명해지면 되는 게 아닌가? 저들이 애초에 날 키울 자격이 되는 건가? 생각의 흐름은 우리가 인지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빨랐다.

예시를 들자면 이미 머릿속에서 책을 읽듯이 한 개의 문장을 읽는다면 이미 뇌는 수백 개를 아니 수천 개를 돌려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가족이라는 틀 안에 갇혀있는 게 오히려 좋을지도, 고아원이나 한부모가정 이와 비슷한 그런 것들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의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다. 어떻게 일처리를 했는지 모르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와 함께 단둘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2차전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누나는 학교로 돌아가버리고 그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그녀와 난 단둘이 남았다. 난 그녀에게 힘들게 말했다. 나 시험 쳐야 하는 거 있는데.


매번 왜 일정이 안 따라주는 걸까?


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이뤄놓은 내신이 있었기에 난 과학고등학교의 진학을 고민하고 있었다. 기숙사 생활이라기에 그들에게서 멀어져서 나만의 인생과 공간을 갖출 수 있음에 좋았고, 다양한 지식과 친구들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있었다. 과학고등학교, 다양한 과고가 전국구에 있었다.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다양했다. 모든 곳에 시험을 보고 싶었다.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어떠한 문제가 나오고 얼마나 날 흥미롭게 만들어줄까? 내가 붙을 자격이 있을까? 난 그녀와 전날 버스나 기차를 타고 출발해서 찜질방에서 자고 다음날 시험을 치러 가는 식으로 움직였다. 난 매번 전날 잠을 들지 못했다. 이건 아마도 시험에서 나오는 긴장감이 아닌,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발생할 불명확한 미래가 걱정되서였다. 저기 곤히 자고 있는 어머니가 날 버릴 건가? 행여나 눈뜨고 다음날 아침에 되어있을 때 그녀가 사라져 있는 게 아닐까?


매번 난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를 객관적으로 평가를 내린다. 웬만하면 비평하는 쪽으로 결과를 도출시키긴 하는데 그 이유는 나는 스스로를 깎아내릴수록 더 발전해야 할 이유를 찾고 더 노력하기 때문이었다. 중3 때 난 집에 있는 누나의 수학책을 풀 수 있었다. 영어, 수학, 물리 나름 쉽고 재밌었다. 하지만 난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서 배웠듯이 매번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다 널려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과고 시험은 날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였다.

시험은 어려웠다. 어려웠다의 기준이 손도 못 대겠다 이런 것이 아닌 이렇게 생각을 해서 풀었어야 했다고? 이 부분이 맞는 것 같다. 생각하는 다양성을 중요시 여기면서 기초의 개념이 이렇게 중요한 게 있었을까 아차 내 머리를 두들기게 되는 시험이었다. 단순한 공식의 이해가 아닌 왜 이 공식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이유는 무엇이면서 서로서로 어떻게 얽혀있는지 그러한 과정 엄청나게 날 흥분시키는 시험이었다.


객관적


객관적은 말 그대로 나의 생각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날 평가하는 것이고, 주관적은 말 그대로 나의 생각에 기초하여 날 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인과의 진정된 교류를 많이 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 객관적인 지표로 날 평가하는 게 가능했을까? 혼자 집에서 대략 1년 넘게 살면서 난 다양한 나를 만들었었다. 1시간 전의 나부터 시작해서 1년 전의 나, 혹은 애기적 혹은 초등학교2학년 적 다양한 나를 만들었다. 물론 이것을 제삼자로 보냐 마느냐는 온전히 나의 자유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고 혼자만 있었기에 난 저들을 현재의 나와 다른 것들로 보았고 객관적으로 날 평가해 주길, 스스로 과거의 시점의 나에게 현재의 나를 평가하게 시켰다.


과고는 떨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미 예측된 결과였기에 별로 크게 휘둘리지 않았다. 진정 제삼자는 내가 붙을 줄 알았다고 말을 하곤 했었다. 영재원 1등이면 혹은 수능을 풀 정도면 혹은 kaist에서 교육을 들을 정도면 똑똑한 거 아니냐고, 물론 그들 입장에서 난 똑똑하다고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아직 한참 멀었다고 그렇기에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세상은 넓고 나이를 떠나서 나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많다고 나도 더 노력해서 그들처럼 될 거라고.


그래도 여러 학교를 시험 치러 다니며 어머니와 단둘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크게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마음이 편해졌고 행복했다. 1년 넘게 안 본 아들이 어머니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이뻐 보였을까? 가여워 보였을까? 사랑을 주고 싶었을까? 어머니는 그저 내 옆에 있어서 조용히 날 지켜봐 주시기만 하셨다. 시험이 끝나고 난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어머니는 그를 찾으러 다시 떠나셨다.


다시 시작한 혼자 생활


다시 혼자 살기 시작했다. 누나는 학교로 어머니는 그를 찾아서 그는 어디 갔을까? 난 무덤덤하게 혼자 아침밥을 차려먹고 다시 중학교로 향했다. 애써 괜찮은 척 혼자 안 사는 척, 평상시의 나와 바뀐 게 없는 척, 이 "척"을 너무 많이 했다. 본인이 본인의 본모습을 잊어버릴 정도로 척을 너무 많이 지었다. 난 체고로의 진학을 희망하지 않았다. 전국체전을 나가보니 그리고 내 키를 생각해 봤을 때 내가 운동선수로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님 둘 다 키가 작으셨기에 구글에 검색해 내 예상키를 넣어보면 170cm도 된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관적이었다.

학교는 친구들 다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하냐에 관심이 많았다. 겨울이었다. 한없이 추운 날이었다. 난 가까운 학교로 진학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데 사립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되돌아온 소소한 끄적임


최근 들어 너무 안 좋았던 이야기를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끔 돌아오는 과거의 기억이 있길래 아쉽지만 브런치에 앞선 화에 적지 못했던 에피소드를 끄적여볼까 한다.


iq 테스트


중학교 때 iq테스트를 한 적이 있었다. 난 갠적으로 내 iq가 되게 궁금했다. 쉽사리 집중을 못하고 남들보다 말하는 게 많이 부족했고 또한 느렸었기 때문에 내가 혹시나 머리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수학적이라고 보이는 문제와 나름 문학적인 문제들이었는데 되게 재밌었다. 뒤집기, 추론하기, 돌리기, 넣어보기 등 나의 iq는 높게 나왔다. 담임 선생님이 불러서 iq이야기를 하셨을 때 난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신이 나한테 하나의 재능은 줬구나 정말 다행이다" iq는 높게 나왔다. 140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많이 생각을 하고 다양한 걸 봐서 높게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절대로 iq, 저거는 똑똑함의 지표가 아니니 iq가 높든 낮든 본인을 사랑하고 삶을 열심히 하면 누구나 똑똑해질 거라고 난 생각한다.


장거리를 한번 뛰어볼까?


어느 평화로운 오후 2시경 코치님이 장거리 한번 나가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바로 운동장 100바퀴 뛰라고 하셨다. 우리 학교 운동장은 한 바퀴에 200m가 조금 넘는 짧은 운동장이었지만 난 삼다수 한 병을 든 채로 꿋꿋이 뛰었다. 많이 힘들었지만 뛰어라고 시키셨고 또 난 그 오기가 엄청나게 강했기에 뛰기 시작했다. 난 지금도 친구들에게 물은 삼다수라고 삼다수 홍보원처럼 홍보를 하기도 한다. 어쨌든 뛰고 나서 그다음 수업을 들으러 가던 도중 계단에서 탈진으로 산소공급이 안 돼서 쓰러졌다. 그 당시 어머니는 학교 장애인 선생님이었다. 그 모습을 우연히 본 어머니는 화가 나서 코치님이랑 대판 싸우셨다. 집에서도 화가 나셔서 운동을 그만하라고 하셨지만 난 계속할 것이라고 하였다. 며칠 후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가장 긴 장거리를 뛰어봤다. 10km였다. 나랑 같이 스타트에서 시작했던 친구들은 이미 다 뛰고 전광판에 기록이 뜨는데 난 너무 힘들어서 혼자만 트랙을 뛰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다리다 못한 운영진들은 나에게 포기를 권하였지만 난 묵묵히 혼자서 뛰었다. 절대로 걷지 않았고 천천히 뛰더라도 완주하리라 다짐했다. 결국 운영진들은 여자 장거리를 시작시켰고 난 여성분들이 다 뛰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야 완주했다.


곧 연말이네요. 다들 연말이니만큼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좋은 나날들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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