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너무 이뻤다.

모든 걸 바칠 테니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by 감자돌이

이제 뭐 하지?


이제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니 사람이 다시 간사해지기 시작해진 것 같았다. 따뜻한 물, 맛있는 음식, 편안한 침실, 향기 다시 정신을 못 차리게 되었다. 사람은 당연한 건가? 편해지면 힘들었던 시절을 깔끔히 잊어버리는가? 편해져서 잊어버리는 건가 아님 힘들었기에 애써 잊어버리려 하는 것인가? 뜻깊은 생각을 많이 하였다. 물이 100도에서 0도가 되면 당황하듯이 나도 긍정적으로 바뀌어버린 의식주생활에 뭐 자아혼란은 당연히 따라온 거였다. 저렇게 의식주가 안정되니 다시 걱정은 "언제 그들이 연락이 올까"였다. 여기서 또 하나를 배울 수 있었다. 아 어떠한 문제가 해결돼도 다른 문제가 대두될 테니 그냥 걱정이라는 건 안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살만해지니 이젠 다른 걱정을 하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스럽고 가증스러워서 역겨울 지경이었다. 어떻게 그 전의 문제를 깔끔하게 잊어버리는 걸까? 아마 이때부터 자기혐오에 빠진 게 아닐까 생각이 된다.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걸까?

이게 내가 처한 환경에서 최선일까?

왜 좋은 것만 생각해도 시간이 없고 바쁠 텐데 나쁜 걸 쫓아가는 거지?

이 상황에 자기 합리화라니 내가 드디어 미쳐버린 거나?

스스로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과 비하가 너무 강해지며 자기혐오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중3의 생활은 나름 재밌었다. 물론 어두워진 나를 어느 정도 받아들여서인가 아님 익숙해져인가 뭐 이 정도면 살만해졌다고 인지했다. 다시 육상대회 배드민턴, 영재원, 공부를 열심히 했다. 돌고 돌아 나를 제외한 모두를 떠나서 결국 내 인생이고 내가 잘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발전해야 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둠에 쭉 처져서 게임만 하고 우울해하고 부정적으로 바뀌면 뭐 하는가 이게 질려서 발전을 하리라 생각했다.


오랜만이네요, 거의 1년 만인가요?

어느덧 1년이 지나가 다음 해 추석이 되어서야 그와 그녀는 집에 왔었다. 반가웠다. 1년이랑 세월이 무색하게 할 만큼. 나는 어둠이라는 그리고 부정적이라는 감정에 익숙해져 있었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1년이면 피폐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난 뒤늦게 알았다. 그들은 날 보러 온 게 아니라 단지 추석이었기에 할머니를 보러 가러 온 것이었다. 나를 챙기기보다는 그의 의견대로 누나를 부른 다음에 급하게 할머니 집으로 향하였다. 나만 상황이해가 안 되는 거였나? 누나는 이 상황 상태를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만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차는 공허했다. 고요함을 넘어서 엄청난 공허가 넘쳐흘러서 광활한 우주에 떠도는 기분이 들었다. 왜 아무도 지난 1년을 물어보지 않는 걸까? 난 정말 죽을뻔했는데, 나 정말 힘들었는데 나 고작 중2였는데, 왜 아무도 날 안 챙겨주는 건데, 그동안 누나는 뭐 한 건데? 엄마와 아빠는 뭐 어디 놀다가 온 건데? 왜 아들인 나를 챙겨주지 않는 건데? 도대체 다들 뭔 상황인 건데?

아마 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저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혼자 꿍했던 거일 수도 있었다. 그저 관심이 필요한 그리고 사랑이 필요한 중학생이었기에 말이었다. 1년 전 B형 간염이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서 많은 것을 검색하며 얄팍한 의학지식을 배워갔기 때문이다. 아마 내 본마음은 무엇이 문제일지 알지 않았을까.

휴게소에 들러서 그가 자리를 비우자, 그녀는 조용해진 차 안에서 한마디를 하셨다.

"아들 오랜만이네, 그동안 엄마가 미안해"

"딸 공부하느라 힘들지 잘 될 거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

마지막으로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그가 화장실에 갔다 오시고 다시 침묵을 이으며 할머니집으로 마저 출발하였다. 할머니집은 완전 촌이었다. 미신을 믿으시는 그리고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으며 누가 사라져도 모르는 마을이었다. 안개가 무성하였고 풀떼기가 넘쳐나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촌이라는 곳이었다.

1년 만에 집에 갑자기 와서는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궁금증은 여기에 있었다. 할머니를 뵈었다. 그는 할머니를 끔찍하게 아끼셨다. 본인 스스로보다 할머니를 더욱더 아끼고 챙겨주셨다. 희생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예의를 넘어서 본인을 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뭔가 무거운 분위기였다. 안 그래도 어둡고 해도 빨리 지고 안개도 무성하고 조용한데 더 무서웠다. 어디선가 한기가 흐르는 듯하였다.

우리는 사과농사를 지었었다. 추가로 벼농사도 지었었기에, 우리는 사과나무를 관리하러 갔다. 아마 나의 기억 시점이 뒤틀린 걸 수도 있지만 나의 기억에 따르면, 추석 때 우리는 사과나무를 보러 갔다. 이때 기억하고 싶지는 않은 아마도 내 기억이 틀렸기를 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누나는 공부를 좋아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였고 실제로 공부를 또 잘했고 재능도 있었으며, 되게 누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누나는 할머니집에 오기 싫어했었다. 시간이 아까웠기에,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 하였지만 그에게 이거는 그저 핑계에 불가하였다. 유교를 넘어서 예의를 중시 여기는 아무리 본인이 바빠도 지켜야 할 도리는 지켜야 하는 법이었기에 그녀와 그는 소소한 말다툼으로 시작을 하였다.

그가 평소답지가 않았다. 왜 이렇게 예민한 건가? 난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폭력에 익숙하였지만 뭔가 느낌이 이번엔 많이 좋지 않았다. 점점 억양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와 그녀의 싸움, 그리고 결국에 참지 못하고 발생해 버린 폭력, 어쩌면 일방적인 학대일지도 모르는 난 그저 지켜봤다. 사실 무서웠다. 내가 더 강해지고 힘이 세진다면 그를 이길 수 있을까? 평생 노력한다면 이길 수 있을까? 내가 끼면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을까?

일방적인 학대는 심해졌다. 그는 저런 남자가 아니었다. 본인을 통제하고 폭력도 필요하다면 행하긴 하였지만 이번 케이스에서 폭력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폭력을 쓰는 건가? 난 상황이 심해지고 그녀가 고통 속에서 소리 지르고 울며 비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또한 도망치려고 하고 그와 맞서기로 다짐했다. 꼴에 남자라고 그에게 맞서라고 했던 것이었다. 시간을 벌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참 바보 같았다. 매번 그에게 맞섰지만 매번 죽도로 맞아서 쓰러지는 게 다수였지만 이제는 중학생이었고 나름 강해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난 최대한 대화로 해결하려고 했었다.

그녀가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그리고 여자니깐 화장하는 것도 이해해줘야 한다고 게다가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니깐 이해해 주자고 그리고 1년 만에 이러는 건 진짜 아니라고 말을 떨면서 말했다. 암묵적인 두려움이었다. 강자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비위를 맞춰줘야 하지 않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그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고통에 흐느끼며 아무도 없는 조용한 도로를 통해 도망가고 있었다. 우리밖에 없었고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었다. 우리의 문제였다. 그는 그녀가 도망가는 걸 봤고 그녀를 잡으러 갔다. 난 그를 막았다. 아마도 나의 패착일 수도 있는 판단이었지만 난 다쳤다. 아마도 찔렸다는 표현이 맞겠지. 아팠다. 고통스럽고 난 쓰러졌다. 그래도 그를 말렸다. 슬펐다. 어쩌다 이렇게 상황이 되어버린 걸까 이게 맞는 걸까 아니 이게 지금 뭘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걸까? 그는 나를 학대했다. 뭐 익숙했다. 아프기보단 그냥 그리웠다. 1년 동안 혼자 사는 것보단 뭐 맞더라도 같이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웃음이 지어졌다. 그녀는 도망갔다. 결국 오랜 시간 후 어머니께서 오셨고 마을이 시끄러워졌다. 해가 지고 이쁘게 달이 뜬 저녁이었다. 경찰차, 응급차, 이혼 관련 변호사? 뭐 사람들이 많았고 난 여전히 시끄러워했다. 이게 뭐 좋은 일이라고 대수라고 그들을 부르는 건지 난 참 조금 그랬다.


그녀는 실종이 되었고 난 그녀를 찾았다. 뭐 그녀가 갈 곳은 뻔했다. 아래쪽에 위치한 교회에 숨어있었다. 참 가여웠다. 그녀가 그렇게 도망치고 도망치며 신고하고 숨은 곳이 교회라니 난 참 묘했다. 종교 같은 건 믿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두려움에 떨면서 찾은 곳이 교회라니. 그녀는 두려움에 절어있었다. 난 감정을 하나를 배웠다. "두려움" 두려움은 눈에서부터 몸짓 나는 그녀를 위협하려는 게 아니었지만 그녀는 나한테도 두려움을 느끼는 거였다. 두려움은 저런 감정이었다. 향기가 달랐다. 내가 아마도 그의 피를 물려받아서인가 나도 그와 똑같이 강한 눈을 가지고 있어서인가? 난 그녀를 진정시키며 어머니가 찾으신다고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녀의 몸은 말이 아니었다. 치료가 시급했다. 나도 아팠지만 난 그저 그녀를 진정시키며 수다를 떨었다. 1년 동안 혼자 살면서 최대한 허세와 상상 조미료를 듬뿍 섞어서 재밌게 살았다고 했다. 그녀의 정신을 챙겨주기로 내 과거를 미화해 주었다. 그녀가 최대한 좋게 상황을 받아도록 말이다.


"이쁜 달 그리고 나의 독백"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왔다. 어머니는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과 서러움을 말씀하셨다. 나는 그 와중에도 하늘에 떠있는 달이 너무 이쁘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쪽은 되게 시끄러웠지만 나는 마음을 차분히 잡았다. 그녀는 할머니와 싸웠다. 할머니도 한마디도 지지 않으셨고 그녀도 지지 않았다. 이혼을 하니 마니, 경찰이 말리니 시끄러웠다. 진짜 어른들의 싸움은 이런 것인가 초등학생이나 다름없다 생각하면서 그냥 신경을 껐다. 그냥 한없이 시끄러웠다. 어쩌다 이렇게 내가 살고 있을까?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걸까 싶었다. 두 여자는 구급차를 타고 떠났고 사건은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상당히 흐지부지 끝났다. 아마도 그래도 여기서 결과를 알리는 건 조금 그렇다고 생각해서 결말은 올리지 않겠다.


나는 그날 달에게 빌었다.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도 혹은 모든 것을 잃어도 좋으니 단 한순간이라도 내가 모든 걸 결정하고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내가 아는 부처님, 알라 님, 신, 전부다 온갖 종교를 들먹이며 달에게 빌었다. 수도 없이 되뇌었다. 이게 아마 첫 강박증의 시작을 알리는 공포탄이 되었다.


달이 많이 이뻤다.




.

keyword
이전 13화15살 홀로 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