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홀로 서기

엄마, 아빠 잠시 여행 갔다 올 거니깐 잘 살구 있어

by 감자돌이

가끔 의사는 내 기억력이 뒤틀렸다고 말을 한다, 여기서 기억이 뒤틀렸다고 하는 바는 고1 때 일어난 일을 고2 때로 생각한다거나 고3 때 발생한 일을 고1 때 일어났다고 뇌가 인지한다는 것이었다. 즉 사건에 대해 무엇이 일어났는가는 대부분 그대로 기억을 하지만 사건의 시점을 헷갈려한다는 거였다.


누군가에게 말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먼저 글로 써 내려가는 건 어떨까? 13화 정도 썼으면 한 발짝 더 나에게 가까워지고 용기를 내볼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야기해도 괜찮은 이야기, 그나마 덜 어두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많은 시점이 실뭉치처럼 뒤엉켜있고 그거를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볼까 한다. 어쩌면 저 엉켜있는 기억을 풀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둠, 너무 순수한 어둠 결정체.


중2, 15살의 나이는 결코 적지도 그렇다고 많다고 보이지도 않는 나이였다. 어쩌면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을 많이 안 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였다. 운동과 지식으로 세상을 배웠기에 세상이 어떻게 어떠한 원리를 통하여 돌아가는지 몰랐다. 세상에 대한 지식은 아니었으니깐. 좋게 말하면 순수했고 나쁘게 말하면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고 혹은 무지했다고 볼 수 있다.


난 그와 친하지 않았다. 그를 많이 두려워했고 무서워했지만 어느 날부턴가 그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시작점이었다. 너무나 인상 깊어서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그는 툭 "B형 간염에 대해 아니?" 말을 던지셨다. 하나도 몰랐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 온다는 말을 남길뿐이었다. 결코 평범한 질문이 아니었고, 물어보는 그의 목소리 톤 몸짓, 얼굴 표정을 보았을 때 무엇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사실 그의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예전 같지 않은 강한 눈빛, 근육들, 부 해 보이는 몸집. 의학 쪽에 무지한 내가 봐도 무슨 문제가 발생한 건 확실했었다.

본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한 바이러스학을 공부하며 하나같이 처음 보는 용어들, 복잡한 그림을 읽어내려갔다. 생명과학이란 학문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기에, 이해가 정확히, 명확하게 되지 않았다.

구형 컴퓨터로 모르는 것을 공부를 하고 단어 하나하나 찾아보고 그림까지 그려가며 지식을 습득해 가고 이해해 나갔다. 단지 그가 궁금해하였기에 하는 것이었다. 난 그가 두려웠었다. 며칠 안되었지만 내가 이해하고 배운 것을 토대로 그에게 설명을 드렸다. 그가 궁금해 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치료 가능 여부" 이거 말고는 더 이상 크게 관심이 없으셨다.

나는 치료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설사 내가 가능, 불가능을 말한다 하더라도 그건 한낱 나의 예측일 뿐이었고 전문의가 아니기에 말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였다.


정확히 그와 그녀가 어떻게 떠났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오니 식탁 위에 내가 좋아하는 많은 음식이 정성스럽게 차려져 있었고, 그 위에 포스트잇이 한 장이 있었다.

"엄마, 아빠 잠시 여행 갔다 올 거니깐 잘 살구 있어" 전부였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두 분 다 바쁘게 사셨으니 두 분 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겉보기에는 화목해 보이고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집안이었지만, 실상은 폭력, 이혼, 엄격, 규율, 통제를 기반으로 상처를 입히며 전혀 화목하지 않았기에 나는 이해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3일간은 되게 행복했다. 큰방 침대에서 자거나 작은 방 침대에서 자거나 밤새도록 게임을 할 수도 있었고, 집에 혼자 있었으니 모든 것이 내 맘대로였다. 그러다가 주말이 지나가고 뭔가 깨달았다.

"나 다음 주부터는 뭐 먹고살지?"

날씨도 날씨인지라 부패속도도 빨랐다, 나름 처음엔 설거지도 하고 밥도 해보고, 요리도 해가면서, 집안일을 열심히 하였다. 억지로라도 좋은 면만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처음 한두 달이었다. 겉으로 티가 나기 시작했다. 외로움과 공허 속에서 15살의 남자아이는 찌들어갔다. 거의 매일 그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받지 않았고 이게 두려움으로 번져갔다.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갑니다."


"나 버림받은 건가?" 난 점점 피폐해지고 자기비판 비하 현실부정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로 날 치장하기 시작하였다. 속이 썩기 시작하니 학교 생활, 영재원 생활, 운동부 생활, 연애 모든 대인관계가 저물었다. 시간이 지나니 관리비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가스, 전기, 수도가 안 나오기 시작하면서 난 고립되었다. 문제는 돈이 없었다. 고지서를 들고 관리사무소를 가거나 은행을 가서 내는 방법은 알았지만 가장 중요한 돈이 없었다.

돈을 벌곳을 생각하지 못했다. 알바도 성인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였고 불순한 목적으로 혹은 나쁜 행위를 통하여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내가 썩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집 자체도 썩어갔다. 파리, 바퀴벌레, 악취, 때 익숙해져 갔다.

난 자존심이 센 아이였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매번 항상 스스로 뭔가를 이뤄왔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겉으론 혼자 강한 척 괜찮은 척 오만짓을 다했다.

실상 마음속에선 그저 그들의 품에 안기고픈 어린 남자일 뿐인데 말이다. 애써 설움과 슬픔을 삼켰다.

내 생일이 지나도 가을이 지나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집에 전화 한 통도 없었다. 누나도 집에 오지 않았다. 무서웠다. 진짜 많은 무서움이 다가왔다. 그들이 죽었나? 나쁜 맘을 먹었나? 온갖 생각을 다하면서 난 혼자 쓸쓸히 잠에 들거나, 벌레들과 대화를 하거나, 게임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면서 살았다.


종종 사람은 참 신기한 동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대화할 사람이 없고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자기 자신의 자아를 새롭게 하나를 창조하여서 스스로 대화를 했다. 1인 다역이었다. 엄마가 되어보기도 아빠가 되어보기도 누나가 되어보기도 여자 친구가 되어보기도 다양했다. 다양한 시점에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지금생각하면 진짜 미쳤다 싶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고 정신상태는 물론이고 자아인 코어가 흔들렸다. 글을 적으면서도 그때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불안함이 사뭇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지나고 그때쯤 난 너무 추워서 온방에 이불이랑 이불은 다 꺼내고 옷을 많이 껴입었다. 냉장고도 안의 음식들도 전부 부패하고 난 이제 먹을걸 동냥하러 다녔다.


이번 화를 쓰면서 그다지 안 좋은 이야기라고 치부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글을 써서 보여주기에도 시간이 아까운데 굳이 어두운 글을 써야겠는 이유를 못 찾고 있지만 그래도 과거의 나 이야기를 적으면서 슬퍼했던 15살의 나를 안아주면서 치료해 주기로 다짐을 하였다. 나의 마음이 편안해져야 더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햄버거 하나가 먹고 싶다


돈이 없어 영재원에 가지도 못하고, 수업 준비물도 사지 못하였고 당연히 수행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하였다. 그런데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정말 사람이 지금 당장 의식주가 급하다 보니 저런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거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오직 나에게 닥친 문제와 의식주를 해결하느라 급급하였다.


밖을 걸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그나마 가장 깨끗한 반바지와 반팔티를 꺼냈다. 롯데리아로 향하였다. 많은 가족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난 신호등 앞 바닥에 앉아서 안을 멍하게 뚫어져라 쳐다봤다. 부러웠다.난 종종 길가 바닥에 편하게 앉는 습관이 있는데 아마도 이때부터 생겼던 것 같다. 힘들게 온 집을 뒤져서 찾은 500원짜리 1개와 100원짜리 5개 총 1000원이었다. 진짜 많이 부끄러웠고 수줍었다, 그냥 진짜 모든 게 싫증이 날 정도로 타인의 눈초리가 무서웠다.

"쟨 겨울인데도 저렇게 입고 다니는 가봐"

"쟨 돈도 없고 집에 옷도 없나 봐"

설사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내 머릿속에서는 온갖 나를 깎아내리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들어가서 아무것도 없는 햄버거, 기본 햄버거를 시키고자 하였다. 안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이 내가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오자 나를 보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억지로 의식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을 최대한 끄자, 난 그저 햄버거를 먹으러 온 것이다. 저들은 남이다 그들은 나랑 무관하다. 되새겼다.

"햄버거 주세요"

"어떤 햄버거 드릴까요?"

"기본 햄버거 주세요"

"기본 햄버거가 어떤 거 말씀이실까요?"

그제야 난 메뉴판을 들고 와서 손으로 콕 집어서 말씀을 드렸다. 아무도 그 기본 햄버거를 사 먹지 않으니 기본 버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것이었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고 조금 여유가 생길때즘 여자친구와 같이 롯데리아를 가서 여자친구한테는 맛있는 버거를 그리고 난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할 겸 기본 햄버거를 먹으려고 했지만 단종이 되어서 아쉬웠던 적이 있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와서, 차갑게 식은 빵사이에 대충 뿌린 케첩 피클 2개, 3개가 전부였다. 그래도 행복했다. 애초에 집에서 나와서 먼 거리를 걸어오면서 생각했던 것이 "햄버거" 먹는 행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보면 자기 합리화 자기 타협 같은 거라고 바도 무방했다. 좋은 햄버거도, 고기가 많이 든 햄버거도 아닌 그저 햄버거였기에. 만족했다. 남의 시선이 부끄러워서 비 같은 눈을 맞으면서 바닥에 앉아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가장 맛있는 햄버거를 사 먹기로. 그러면서 이 생각은 날 좀 더 발전시켜서 이른 성공을 하도록 도와주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운동부라서 다행이었다.


운동부라서 다행이었다. 탕비실에 각종 빵 음료수 음식도 많았고 고된 훈련이 마치면 코치님이 치킨이나 배달음식을 시켜 주셨기에 거기서 내 굶주린 배를 채우면 되었다. 나름 눈치가 많이 보이긴 했지만 그것이 절대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족한 것은 학교 급식실에서 여러 번 먹으면 되었다. 운동부라는 그리고 주장이라는 그 당시 나의 진로는 거의 운동선수였기에 급식을 가장 빠르게 많이 여러 번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는 그녀가 다른 어머니들에게 부탁을 했나, 언제부턴가 어머니들이 내가 학교를 간사이 혹은 주말에 오셔서 대신 관리비를 지불해 주시고 청소부터 빨래, 음식을 해주고 가셨다.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간 아침에 띠리리 하고 나가는 소리, 그리고 내가 학교를 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 띠리리 문 열리는 소리가 전부였는데 이젠 누군가가 집에 온다는 게 되게 행복했다. 여러 어머님들이 오셔서 도움을 주셨다. 매번 다 같은 말씀을 하셨다.

"힘들 텐데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오신대" 그 말을 악착같이 믿었다.



소소한 끄적임


글을 작성하고 내가 쓴 글을 읽어보았다. 여전히 감정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 이야기를 100 퍼 전부는 아니지만 반정도는 적은 것 같았다.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저 때 힘들었기에 지금 이렇게 멋지게 성장하였다고. 태양과 마주하며 달리기보다는 태양을 등에 업고 달리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에 눈이 왔었다, 내가 서울에 오기 전에 살았던 대구에서는 눈이 잘 오지 않았는데 11월 말인데 벌써 이르게 눈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많이 좋았다. 눈 결정도 볼 정도로 아름다웠다. 늘 마무리하는 멘트로 이번 13화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다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행복한 나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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