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진짜 죽었다.
그는 죽었다. 진짜 죽었다. 가끔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때 체감이 확 되곤 한다. 종이쪼가리에 그의 이름 옆에 괄호치고 (사망)이라고 적혀있다. 틀린 말을 한건 아니지만 나에겐 언제부턴가 조금 두 글자가 거슬리게 느껴졌다. 이것도 아마 내가 나의 본모습과 감정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나아지기 때문이겠지. 다른 이쁜 표기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도 괜히 애매한 말보다는 가장 직관력 있고 좋다고 생각한다.
가끔 주위에서도 아버지 뭐 하시냐라고 말하면 괜히 얼버무리는 것보단 묵직하게 "돌아가셨어요" 이 말이 그래도 가장 정확하게 전달되곤 하니깐 뭐 나름 슬프지만 그러려니 한다. 애써 현실을 부정해 봤자 가장 힘들어지는 건 나였으니깐.
그는 진짜 죽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가 당연히 죽을걸 알고 있었지만 진짜 심장이 멈추는 소리와 영화에서만 듣던 "삐~~~~~~~~~" 그리고 그 화면에 심장박동이 0이 찍히는 것과 요동치는 파동이 꺼지는 것. 그리고 동시에 육안으로 미동조차 보이지 않으니 실감이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걸 본 가족 친척 모든 사람들은 더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걸 운다고 표현하는 게 맞나? 절규에 가까웠다. 한탄이 섞인.
그런 와중에도 난 그 생각을 했다. 이렇게 일이 이 사단이 나기 전에 뭐 했냐고 마음속으로 그들을 싫어했다. 아버지께서 혼자 할머니를 챙기시고 농사짓고 다 하실 때 도대체 형제자매라는 사람들은 뭘 했는지 가식적인 울음이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본이 아닐까 생각을 했지만, 이러한 생각도 잠시 그의 죽음 앞이었기에 그에게 있어 그들은 가족이었기에 존경의 표시를 표하면 생각을 금방 접었다.
뇌는 이해했는데 마음은 이해하지 못한, 불균형적인 상태
너무나도 시끄러웠다. 다 나가있어라고 소리를 치며 욕을 했다. 쉬고 싶었다. 상황을 받아들이긴 했어도 내 마음은 이해를 못 했으니깐, 솔직히 내가 젤 울며 절규하고 절망하고 싶었다.
1년 반 동안 혼자 살며 폐인이 되어서 어둠을 주식 삼아서 먹다가 추석 때 그런 쇼크를 겪고 다시 혼자 살다가 갑자기 와선 죽는 이거를 나라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나에겐 귀띔도 없었으면서 갑자기 이렇게 가버리면 나 어떡하라고, 나 뭐 하나도 준비된 거 없는 아직 사회에 적응하지도 못한 풋풋한 고등학생이었는데.
내 과거를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그것도 풀스토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브런치에도 전부 다 공개하는 건 프롤로그와 1화에서 말했다시피 살아있는 지인들에게 실례가 아닐까 해서 작성을 못할 것이었으니깐. 추가적으로 어머니께서도 나랑 3년 이상 연을 끊을 정도로 멀었으니깐. 그래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내 과거를 남한테 오픈하고 대화를 하면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괜찮은 방법이 대화인 것 같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45살도 안 되는 나이. 한창일 때 가버렸다. 서울을 와보니 되게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스토리가 있는 것처럼 난 그가 그들처럼 늙기를 희망했었다. 그는 항상 서울을 오고 싶어 했고 완전 깡촌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세상의 문명을 멀리하며 살았었기게, 난 열심히 해서 그와 그녀가 나중에 서울에서 풍족한 생활을 느끼게 도와주고 싶었다. 뭐 이것도 결국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로 내 마음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장례식도 결국 식일 뿐 의미만 다를 뿐이다.
기억 속에 꽁꽁 묻어놓았던 장례를 치렀던 3일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솔직히 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 워낙 잠도 많이 못 잤고 이때가 아마 나의 정신병이나 뇌전증 다양한 병의 시초가 되기 시작했다고 난 생각한다.
제일 먼저 담당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사망판정 같은 걸 했다. 영화인 줄 알았다. 무거운 분위기 속 의사가 꺼내는 한마디
xx월 xx일 xx시 xx분 xx초 xxx 씨 돌아가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무덤덤했다.
내가 아무리 그를 싫어했고 혐오했다 하고 내가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하더라도, 그 말을 들었을 때 진짜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적으로 그가 죽었구나, 난 저 말을 듣기 전까지 의사가 확실하게 말을 해주기 전까진 그가 죽은척하는 건가? 다시 살아나나? 연기인가 현실을 엄청나게 부정했었다. 하지만 그저 부정에 그쳤을 뿐 그는 죽은 게 맞았고 난 거기서 내가 절망 따윈 할 수 없었다.
내가, 나마저 절망하고 절규하며 슬픈 척 아픈 척 티를 낸다면 우리 집은 아마 지금쯤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장례일 3일이 지난 다음, 오랜만에 만난 누나, 나, 어머니는 본가에 다 모이게 되었는데 그때 엄청 싸웠다. 누나는 돈 때문에 그동안 폭력, 정신적 충격, 자기 인생 등등의 각종 이유를 대며 돈을 달라며 그녀와 다퉜고 그녀도 자꾸 왜 다들 돈돈 거리냐면서 스트레스받으면서 서로 욕설과 폭력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뭐 훗날 이 이야기도 다룰거니 지금은 마저 하던 장례식날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를 흰 천? 가운? 같은 걸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이지 않게 덮고 지하실로 가서 여러 가지 결정을 했다. 내 나이 17살이었다. 문득 그의 생각이 들었다. 그는 더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를 잃었는데 어떻게 이런 걸 다 했을까? 그의 어깨가 무거워질 만하고 그가 이까지 노력하고 자신을 희생 헌신한 거에 대해 다시 한번 존경을 함과 동시에 그의 인생을 알게 되자 충격을 먹었다. 내가 알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새발의 피였구나 난 아버지를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평생 넘보지 못할 남자였는데 내가 되게 폭력적이고 나쁜 가부장적인 남자로만 알았구나, 그동안 이렇게 힘든 짐들이 많았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게 대단하구나 생각했다.
결정해야 할 게 많았다. 화장인지 아닌지 어디서 할 건지 옷을 무엇을 입힐 건지 장례식장 크기는 어떻게 할 건지. 음식은 무엇을 할 건지, 숙박해야 할 장소가 추가로 필요한지, 꽃은 무엇으로 할 건지 사진을 뭘로 할 건지 뭐 진짜 결정을 회피하고 싶었다. 듣기 너무나도 거북했다.
그 와중에 모든 결정에 돈이 같이 따라온다는 게 참 뭐 같다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가장 좋은 걸 해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친가는 선비의 집이었기에 유교사상이 짙었기에 큰아버지 고모부는 내가 장남이기에 모든 결정을 맡기되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누구는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돈을 고려해라 요샌 뭐뭐가 좋더라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하지 않겠느냐 등등 참 듣기 싫었다.
돈이 뭐가 중요한가?
난 긴 글 긴 설명 읽지도 않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가장 좋은 걸로 해주세요. 돈 같은 건 고려할 필요 없습니다, 그가 죽었으니깐요. 잘 부탁드립니다.
시끄러웠다. 어른들의 싸움이란 돈을 누가내니 누가 이제 할머니를 책임지니 참 딱했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람 혐오가 생겼다. 그동안 효자효녀 노릇 하나도 안 하다가 이제 와서 그가 죽으니 아마도 친가의 정신적 지주가 죽어버렸으니 그들이 싸우고 소리치며 다투는 건 당연한 거였다. 항상 아버지께서 균형을 맞춰주었으니깐 요샌 말로 감정 쓰레기통이었으니깐, 참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친가가 죽도록 미웠다.
한없이 나약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이제 진짜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결정을 한 다음에는 장의사가 나를 데리고 아버지로 향했다. 아버지였다. 우리가 한 것은 제일 먼저 그의 옷을 벗기는 거였다. 옷에 뭐가 이리 많이 묻어있는 건지 대소변을 비롯해서 체액 진물 색깔이 진한 노란색이었다. 벗겼다. 그의 옷을 난 살면서 한 번도 벗겨본 적이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양말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종종 술을 마시고 만취하면 양말을 벗겨 드리곤했다. 발은 시원해야 좋으니깐.
과거를 회상해 보니 둘 다 한없이 해맑고 뛰는 것을 좋아하였기에 발에 열이 많았던 공통점도 있었다. 이게 행복인가.
그가 불쌍했다. 축 처져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나의 탐구자아가 요동쳤다. 이왕 그가 죽은 김에 인체적인 온갖 실험을 하고 싶었지만 하진 않았다.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바질 벗길 때 몸이 엄청 무거웠다. 물론 안 좋은 냄새도 많이 났다. 장의사분이 시키는 대로 하나씩 고이고이 벗겼다. 냄새는 냄새일 뿐 그래도 한때 아버지였으니깐, 아니 한때가 아니라 영원한 아버지가 될 거니깐 내가 죽든 안 죽든 세상은 변하지 않을테니깐.
다 벗기곤 이제 알코올 솜으로 몸을 닦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세하게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도 얼마 가지 않아서 사라짐과 동시에 그가 불쌍했다. 45살이라니 참 어리게 느껴졌다. 손톱정리 발톱정리 머리카락빗질 온몸을 가꿨다. 솜에서도 진물이 묻어져 나왔다. 아마도 닦아도 계속 나왔을 것이었다. 그러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장의사의 말과 함께 종료했다.
다음은 옷을 입였다. 내가 결정한 것 중에 하나였는데 되게 아주 곱디고운 삼베옷이었다. 친가외가 양쪽 다 촌동네라 그런 고운 옷들이 많았다. 난 그 옷을 그에게 입혔다. 끝이었다. 꼭 마네킹에 옷을 입히는 기분이었다. 무슨 끝이냐면 내 스타일로 말하자면, 조금 순화해서 말하면 화장하기 전이고 조금 이쁘게 말하자면 세상과 작별할 준비를 마친 거 있었다.
"자 이제 들어오세요"
시끄러운 사람들이 다 들어왔다. 그녀, 누나, 할머니, 친척, 지인, 이름 모를 사람들. 왜 오라 한 건지 모르겠었다. 다시 시끄러워졌다. 이럴 거면 부르지 말지. 다들 그래도 어른들이라 그런지 이제 이게 무슨 시간인지 아는 것 같았다. 시간은 밤을 지나 새벽을 향하고 있었고 그들은 1시간 2시간 정도 다들 그를 놓아주지 못했다.
난 욕을 많이 먹었다. 난 욕을 먹어도 별감흥이 없어 사람들은 그녀, 어머니께 활시위를 틀었다. 이유는 시덥잖았다. 왜 내가 안 슬퍼하냐 눈물도 없고 무표정이냐고. 이게 욕을 할 이윤가. 나약했다. 난 덤덤히 받아들이기를 추구했다. 왜냐고? 약속을 했으니깐, 마지막 유언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무방한 약속 3가지에 난 목숨을 바치기로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너무 가여운 남자
가만히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의사는 말했다. 왜 그가 나에게 끝없이 엄격하고 강하고 감정을 없애길 원했는지. 간단한 이유였다. 누군가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지금 상황처럼 저렇게 친가 쪽이 서로 헐뜯고 남 탓을 하며 싸우고 무너지고 흩어져버릴 텐데 그거를 누군가가 통합해야 한다고. 가정의 온기 화합을 총대 메고 다시 건사하다고 알려야 하니깐.
그렇게 바로잡기 위해선 감정보다는 타인을 위한 본인보다는 대의를 위한 희생이 따라야 하니깐, 필수적이어야하니깐. 엄격하게 감정을 억제하고 통제해야. 그래야 그가 죽었을 때 슬퍼하지 않을 거니깐.
추가적으로 그가 죽어도 감정에 동요하지 않고 해결에만 집중할 테니깐.
이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아빠답다"라고.
또한 그 암은 몸에 다 퍼지기 되게 몇 년이 걸린다고 하셨다, 그걸 그는 정신력과 강인함으로 버틴 거라고.
단지, 돈을 모으기 위해서 어떠한 돈?
누나 대학 좋은 곳 보내려고
혼자 사는 할머니 돈 보내드리라
은근 물질적이셨던 어머니 챙겨드리라
빚 갚으시라
그깟 돈 때문에 참고 일하셨다가 죽은 거였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실용적인 지식을 많이 갖고 있기에 본인의 죽음을 대략 알았을 것이고 많은 생각을 한 끝에 자기의 엔딩과 계획 그리고 미래를 판단 내렸을 것이다.
글을 적다 보니 너무 글이 길어지고 산만해지고 감정적으로 적은 것 같아서 이번화는 여기서 끝을 마쳐야겠다.
다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