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폭풍우가 몰아칠 일만 남은 건
신경이 끊기는 기분
신경이 끊기는, 감전을 당하듯 신경이 찌릿하는 것이 느껴지는 그런 기분을 느껴보았다. 유독 그날 심했다. 잠도 안 자고, 많은 스트레스, 강하게 숨기는 감정,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부정, 맹목적인 목표 추구, 본인의 희생, 알코올과 담배. 몸이 망가지기에 최고의 조건이었고, 아무리 강했던 몸이었을지라도 부서지는 건 당연했다. 훗날 이때를 위해서 몸을 키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과언이 아니었다.
그걸 알리는 신호탄인 신경이 끊기는, 순간적인 필름이 끊기는 기분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둘째 날은 첫째 날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난 뭔가 더럽고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잠을 자야 하는 걸 알면서도 뇌에서 자야 한다고 본인의 몸부터 챙겨야 한다면서 찌릿찌릿 신호를 보내오는 걸 알았지만 그의 마지막 3일을 추모하고 싶었다. 근처 지인들도 압박 비슷 무리하게 하기도 하였고 난 그저 버티려고 생각을 하였다. 애초에 pc방에서 게임을 한다고 자기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한 불효자가 자러 간다는 게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도 하였다.
나도 슬퍼하고 울 줄은 알아요, 티를 안 낼 뿐이지
몸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럴 때면 조금 양해를 구하고 병동 샤워실로 가서 혼자 샤워를 하면서 찬물을 머리에 흘려보내며 감성을 더욱더 강하게 제거했다. 몸에서 꿉꿉한 냄새가 내려감과 동시에 내 몸에서 감정도 동시에 씻겨 내려갔다.
조용히 울었다. 내 눈물인지 샤워기물인지도 몰랐으니깐 좋았다. 그래도 소리는 내어서 울진 않았다. 난 감정을 숨기고 강해져야 했으니깐. 혹시나 그가 듣고 있을까 봐 구천을 떠돌고 있는 아버지가 들을까 봐, 조용히 정말 조용히 물과 함께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러게 한참을 씻었다.
아무도 없는 시간, 조용한 병원 샤워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 너무나 평화롭고 좋았다. 이때의 기분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아무도 날 터치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서 좋은 것일까? 난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면 전자기기를 멀리한 채 조용히 호텔에 가서 적막을 즐기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샤워가 끝나고 다시 돌아온 장례식장, 반복이었다. 인사와, 안내, 절, 덕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먹고 추모하는 걸 보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게도 그들의 이야기가 상황자체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귀가 나간 걸까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릴까? 그렇게 멍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덧 3일이 끝났고 결산을 하였다.
결산은 말 그대로 장례식비를 결제하는 거였다. 뭐 피차 피곤하게 어른들의 돈 문제에 끼이게 된 나였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풀고 싶지 않으므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그, 아버지는 완벽히 죽었다
그가 이제 완벽히 죽었다. 죽은걸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고, 세상 사람들의 추모를 받았으니 남은 건 한 가지가 남아 있다. 그의 살아왔던 터전과 그의 기억을 되살려 주는 일.
비교적 간단하였다. 역사 혹은 사회책에서만 보던 그런 누런 옷을 입고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혹은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비가 왔었지만 아버지가 살았던 고향과 그리고 우리 집 그리고 그가 기억할 만한 곳들을 걸어 다녔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항상 비가 올까? 그가 비를 좋아했었나? 아니면 감정을 억누름과 동시에 사람들의 슬픔을 무뎌지게 하라는 그의 큰 뜻이 있는 걸까?
그와 함께 처음 살았던 2층 집에서부터, 우리의 마을, 우리가 같이 갔었던 운동장, 거리들, 그리고 이사를 오게 되었던 아파트, 그리곤 두 번째로 이사 갔던 아파트, 그의 고향 밭, 논, 농장 다양한 장소 추억의 장소를 걸었다, 이걸 마지막으로 난 그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가끔 어른들이 말하곤 한다. 사람이 죽었어도 며칠간은 혹은 몇 달간은 이승에 머물다가 간다고, 가족이나 지인들이 자기를 그리워하는 모습이나 잘살고 있는 모습을 잘 보고 맘이 편해지면 그제야 이승을 떠난다고.
그렇게 그와 이곳저곳을 거닐다가 그를 납골당에 모셔주었다.
납골당이 어땠냐고, 기억을 해보면, 최악이었다.
납골당에서까지 돈을 따지게 될 줄은 몰랐다. 납골당을 가보니깐 산을 깎아서 만든 구조였는데, 좋은 위치부터 안 좋은 위치, 무엇보다도 면적에 따른 그 비용이 상당히 달랐다. 참 돈이라는 게 뭐길래, 사람의 죽음으로 돈을 받는 걸까? 그때 난 그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냥 어머니가 좋아하는 화분에다가 아버지 유골로 이쁜 나무를 한그루 키우는 것은 어떻겠냐고, 혹은 더 나아가 추억이 담긴 강가에 흘려보내는 건 어떨까라고
어느 책에서 보았었다. 어느 사람은 유골을 가족끼리 마시기도 했다고, 차마 이것은 충격적이라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였다.
1평 남짓한 땅에 그나마 남아있던 좋은 자리를 선별하고 아버지를 묻어 드렸다. 이로써 아버지는 영영 땅에 묻히게 되었다.
가족들도 지인들도 친척들도 다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아마도 다신 보지 못하겠지, 그렇게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우리 아버지에게 압박을 준 친가는 내 마음속에서 씻을 수 없는 혐오를 주었기에 다시는 보지 못하겠지 다시는 안 봐야겠지 하면서 떠나갔었고, 그 이외의 지인들은 그저 말이 없어진 나를 토닥이며 떠나갔다.
이제 폭풍우가 몰아치겠네
남은 가족 3명, 어머니, 누나, 나는 본가로 돌아왔다.
조용했지만, 집에 오자마자 누나는 감정적으로 변하였다. 그동안 스트레스가 많이 받았었고, 그동안 힘들었다고, 폭력을 나아가 무서웠고 두려웠다고, 자기는 이제 혼자 살 거라고 성인이 되었으니깐 더구다나 이제 돈만 주면 떠날 거라고 어머니와 싸웠다. 물론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 날 사건을 기억한다. 내가 그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날이자 내가 그녀들은 떠난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모녀는 엄청나게 싸우기 시작했다.
"너는 딸이라는 애가 아버지가 죽자마자 돈 얘기니?"
"내 인생이 망했는데 그러면 어떡할 건데?"
3일 동안 잠도 못 잤는데, 진짜 아버지와 한 약속 때문에 계획을 짜느라 정신도 없는데, 저 둘이 싸움까지 말려야 한다니, 난 그저 묵묵히 얼음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심장이 조여왔다. 칼로 푹푹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다. 아팠다. 아파도 지금은 내 몸이 중요하지 않다기에 나의 어린 나이와 회복력을 믿었기에 잠시 아팠으니 하고 넘겼다.
난 그녀들의 싸움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였다. 3시간 정도? 지나면 조용해질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싸움은 점점 켜져 갔고 이내 욕설과 비하 서로 상처밖에 남지 않을, 감정이 다 수그러들고 나서는 무조건 후회할 수밖에 없는 말들을 하기 시작하였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은 아들인가? 내가 이걸 어떻게 좋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는 내가 이럴 때 어떻게 문제 해결을 하기를 추구했을까?
처음엔 대화로 그들의 싸움을 중재하려고 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이걸 이야기해 봤자 바뀌는 게 없을 거라고, 지금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합쳐서 문제 해결에, 문제라고 보기보다는 가족의 화합을 다져야 할 시기라고. 그런데 여기서 감정적인 문제나 자본 문제로 번지게 되면 우리는 다시는 영영 못 볼지도 모른다고. 돈은 내가 금방 성공해서 내가 어떻게든 벌어서 줄 테니깐 일단은 싸우지 말자고.
그놈의 돈돈돈 진짜 지겨웠다. 나도 사회라는 곳이 돈으로 인해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지만 돈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들어도 기분이 나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날 어린아이 취급하였다. 어려서 뭘 모른다고, 빠지라는 식으로. 그러려니 했다. 난 그들보다 어렸고 아직 세상이란 걸 크게 경험해 본 적이 없었으니깐. 내가 경험해 본 것은 지식이 전부였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들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약간 싸움이 무서워졌다. 잠시 멍 때린 사이에 왜 죽자고 이럴 거면 다 같이 죽자는 이야기가 나와버린 걸까? 도저히 문맥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명 떠나보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다 같이 나쁜 마음인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단어인 죽자는 단어가 나오게 되었을까? 그렇게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었을까,
난 어머니와 누나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들도 별바 다를 거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에 힘들면 나오는 모습이 난 사람들의 본모습이라고 믿었기에 그들 역시 한없이 나약하고 물질적인 속물인 사람이구나 치부하게 되었다.
난 그녀들마저 안 좋은 결정과 틀린 결정 더 나아가 나쁜 마음을 먹는걸 더 이상 지켜볼 수많은 없었다.
난 이때를 후회한다. 내 판단이 옳았을까? 누나를 볼 때마다 수도 없이 떠올랐고 수도 없이 후회했고 수도 없이 사과했다.
난 누나를 때렸다. 그 당시 누나라고 보이지도 않았다. 내 눈에는 그저 감정적으로 바뀌어버렸고 돈을 받고 싶어 하고, 예의라는 것을 1도 없는 사람 그 이상도 아니었다. 글을 적고 있음에도 이걸 적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나게 고민을 하였다.
긴 설 연휴 동안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