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생존 본능이자 자신의 가치관을 설계하는 시스템

by 감자돌이

(커버사진은 제미나이가 만들어 준 것입니다)


두려움


이번엔 두려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고 전문적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두려움은 현재 또는 임박한, 구체적인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인간과 동물이 본능적으로 경험하는, 생존 중심의 불쾌한 감정 상태입니다. 사전적 정의에서 비롯되어 많은 분들이 두려움이란 부분에 있어 저보다 훨씬 더 잘 아실 겁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정말 다양한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뇌가 느끼기에, 혹은 생각하기에 무엇인가가 본인의 기준 하에 위협이라고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최솟값과 최댓값'이 다르듯, 저희 모두 위협에 대한 민감도와 두려움의 '값의 범주'가 다릅니다. 불쾌한 것을 좋아하는 생물은 없기에, 위험 앞에서 자연스레 이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위험이 있을까요?

위협에 각인되는 생명의 지도와 오작동

제가 두려움을 처음 느꼈던 순간은 어릴 적 생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충격이 정말 두려워서 편도체에 깊이 각인되어버렸습니다. 이 편도체는 감정적 기억과 공포 학습의 핵심 센터로, 생존에 직결된 위협을 저장하고 유사 상황에서 빠르게 반응을 유도합니다.

제가 앓고 있는 뇌전증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의 일시적이고 비정상적인 과도한 방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두려움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측두엽에서 발작이 시작될 경우, 환자는 실제로 눈앞에 위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고 강렬한 공포감이나 두려움을 발작의 전조 증상이나 발작 자체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두려움을 관장하는 뇌 영역이 외부의 실제 위협이 아닌, 내부적인 전기적 오작동만으로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즉, 두려움은 지극히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뇌의 반응이라는 뜻입니다.


덕분에 저는 생명을 엄청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때로는 그 덧없음 앞에서 하찮게 여기기도 하는 모순적인 시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단순히 피해야 할 감정을 넘어, 우리의 가치관과 존재의 모순까지도 형성하는 근원적인 힘을 가집니다. 두려움이 만들어낸 학습된 회피 행동은 곧 우리 삶의 우선순위와 규칙을 만듭니다.


두려움이 없는 세상은 파국의 필연성 띕니다


두려움은 어떤가요? 여러분들은 두려움이 없었으면 하시나요? 만약 우리에게 이 본능적인 감정이 없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흔히 두려움을 피로함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감정이 사라진 세계를 상상해 봅시다. 여기, 두려움이 없는 존재인 광견병에 걸린 개를 생각해 봅시다. 그 개는 통제력을 잃어 두려움이 없습니다. 없기에 난폭하고 무서우며,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마저 마비되어 경계 없이 달려들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신경과학적으로 볼 때, 두려움은 '위험 신호'를 통해 생존의 경계를 설정하는 뇌의 가장 중요한 방어 시스템입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뭐가 뭔지, 어디까지가 내 능력의 한계이고 사회적 선인지 판단을 못합니다. 우리의 전두엽 피질이 위험을 예측하고 판단하는 정보를 편도체가 제공하지 못해, 결국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고 타인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어 파국이라는 안 좋은 엔딩을 맞이할 겁니다.


두려움은 단순히 "분수를 알라"는 말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무엇이 지켜야 할 윤리이고, 넘어서는 안 될 선인지를 생생하게 알려주는 가장 정직한 안내자입니다. 이 경계선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고, 스스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형상화한 것이 곧 사회를 유지하는 법과 윤리의 근원이라고 생각됩니다.

두려움의 역설: 동력으로서의 (비)착한 채찍질

다음은 우리가 착한 두려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설적인 동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저는 '착하다'는 키워드를 붙이는 게 맞을까 일주일 동안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런 파괴적인 결말을 막는 역할 말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두려움도 존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불안'이라고 부르는 모호하고 광범위한 감정과는 명확히 다릅니다. 이 두려움은 구체적인 미래의 실패나 상실에 대한 예측에서 비롯되어,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준비하고, 노력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우리를 채찍질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욕망과 욕심 속에서 발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승진에 실패할 두려움'은 승진이라는 욕망이 있기에 생기고, '떠날까 봐 두려운 마음'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에 생깁니다. 채찍질과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착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근원은 불쾌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승진 시험에 떨어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밤새 책을 보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오늘 더 따뜻한 말을 건네게 합니다. 어찌 보면 뇌가 생존과 만족을 위해 의식적으로 '설계'를 하고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가끔씩 그럴 때 있지 않나요? 제 옆의 여자가 떠날까 봐 두렵다. 전 요새 그렇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구분을 하려 합니다. 두려움이 시키는 특정 행위가 아닌, 제 본마음을 전달하려고 말입니다. 좋은 영향이 있어 '착한 두려움'이라 불리지만, 그 근원은 그렇게 착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우리를 멈추게 하는 족쇄가 아니라, 우리가 온전히 존재하고, 이웃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뇌가 끊임없이 발송하는 생명의 알림입니다. 두려움을 없애려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두려움은 무시하거나 회피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이 알림 소리를 경청하고, 그 메시지를 활용하여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좋은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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