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집을 짓는 과정

by 감자돌이

이번 화는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자 상태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살면서 그릇된 사랑을 받기도, 또 그릇된 사랑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침내, 제가 생각하는 진정된 사랑을 받았고, 지금은 진정된 사랑을 줄 줄 아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사랑은 깊은 상호 인격적인 애정에서부터 단순한 즐거움까지를 아우르는, 강렬하면서도 긍정적으로 경험되는 감정이자 정신적 상태입니다. 감정을 넘어 하나의 심리적 상태로 우리 안에 오래 지속되곤 합니다.


어쩌면 독자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랑 속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혹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조용히, 그러나 진심을 담아 말해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말하는 순간 잠깐 어색할 수는 있지만, 그 어색함마저 사랑스러울 겁니다.


제가 받았던 사랑

서툴렀지만 나름의 방식이었던 그릇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집안을 통제하고 떠받쳐야 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강하게 훈육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 강한 훈육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그 방식이 올바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버지만의 서툰 사랑 방식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딴 이야기를 하자면 진심은 왜 모든 게 다 끝난 다음에 알려지는지 속상할 뿐입니다.


사랑이라고 해서 언제나 따뜻하고 완벽한 형태로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사랑은 누군가의 불안이나 상처가 뒤섞여 서툴게 전달되기도 합니다. 그걸 이해할 수도 못할 수도 있지만 존중은 해줬으면 합니다. 그 사랑은 그 누군가의 고유한 사랑이니깐요.


내가 주었던 사랑

집착이라는 이름의 오해라고 불릴 만큼 애매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불편함을 느꼈다면 잘못된 방식입니다. 저 역시 그릇된 사랑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때 좋아했던, 잠시 연이 닿았던 여자에게 집착에 가까운 마음을 쏟아부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왜 그토록 매달리고 상대를 소유하려 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때의 저는 사랑보다 불안을 더 크게 품고 있었고, 그 결과 상대도 저도 상처만 남겼습니다. 과거의 제 미숙함을 후회합니다.

그 경험은 저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내가 받은 진정된 사랑

조건 없이 나라는 사람을 사랑해 주는구나. 하지만 제 삶에는 진정된 사랑을 받은 경험도 존재합니다.

나라는 사람에게 어떤 잣대나 조건을 들이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준 사람. 그 사랑은 놀라움에 가까웠습니다. ‘아, 나라는 성질을 가진 인격체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구나’ 그 깨달음은 저에게 고맙고 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 그만한 사랑을 받기에 과분했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껴 안 좋게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누나.


현재 내가 주고 있는 사랑

그리고 지금 저는 한 사람에게 저의 사랑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현재의 여자친구이자, 곧 내년이면 '여보’가 될 '하루'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받았던 여러 형태의 사랑들을 결합해, 저만의 방식으로 하루에게 사랑을 건넵니다.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과하고, 때로는 부족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언제나 같습니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사랑이란, 내가 현재 상황과 능력으로 지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집을 짓는 과정이다.

그 집은 세심해야 하고, 정해진 선(상호 존중)을 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죠. 그리고 다 지은 뒤, 설령 내 마음에 완벽하게 들지 않더라도 “이건 내가 지은 집이다”라고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물론, 요새 뉴스 속에서 보듯, ‘사랑’이라는 이유로 폭력이나 강요, 비윤리적인 행동 등을 정당화하려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상호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두 사람이 모두 ‘사람으로서의 기본’을 지킬 때 비로소 성립합니다. 사랑을 이유로 상대의 자유를 빼앗거나 상처를 남기려는 행동은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각자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건강한 사랑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랑

여기서 글을 끝내려 했지만, 빠뜨린 가장 중요한 사랑이 있습니다. 하루가 알려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 혹은 사랑받는 법은 배워도, 정작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은 늦게 배웁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에게도 온전하고 건강한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자기혐오 위에 지어진 사랑은 결국 무너집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자기 이해와 자기 배려 위에 지어진 사랑만이 오래도록 단단하게 버틸 수 있습니다.


사랑은 고정된 정의가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받아온 사랑, 주었던 사랑, 잘못된 사랑, 다시 배운 사랑이 쌓이고 쌓여,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고유한 의미가 완성되는 단어입니다.

독자 여러분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배우고, 실수하고, 성장해 왔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경험들이 여러분만의 사랑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를, 그리고 자신의 집을 단단히 지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기억해 주세요.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사랑해야 된다는 걸요.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