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다시 나아가기 위한 인지적 휴식

by 감자돌이

"강해져라"라는 주문에 갇혀 외면했던, 내 안의 가장 솔직한 목소리


이번 화는 슬픔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슬픔은 제가 생각하는 인간의 기본 감정 중 가장 중요한 축입니다. 사실 슬픔이 있기에 인간이 배우고 발전함이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보통 슬픔은 본인이나 주변에 닥친 상실, 혹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감정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슬픔은 뇌신경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역할을 합니다. 이성을 쫒는다는 겁니다. 에너지를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리게 하여,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재구성하고 자기 암시를 재평가하는 '인지적 변화'를 촉진시킵니다. 잘만 사용하면 아름다운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정을 사용한다는 말은 조금 좋지 않게 들리긴 합니다.


물론 슬픔에 매몰되어 다시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이 시기를 거치며 강력한 재동기부여를 얻습니다. 저 또한 이제는 이러한 슬픔의 침잠을 즐기곤 합니다. 결국 슬픔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이 또한 다 지나가기 마련이니까요. 제가 이전 글에서 썼다시피, 삶은 결국 수많은 조각을 맞춰가는 퍼즐입니다. 그중에 슬픔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가 되든, 완성된 퍼즐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울 것입니다.


연대와 경계, 슬픔이 만드는 관계의 지도

슬픔의 또 다른 기능은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공감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인류학적으로 슬픔의 표현(눈물, 침울한 표정)은 "나는 지금 위로와 지지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무언의 신호입니다.


정상적인 사회 안에서 슬퍼하는 사람을 보고 곧바로 물어뜯는 사람은 드뭅니다. 보통은 평소보다 더 친절해지고 보듬어주려 노력할 것입니다.. 슬픔을 공유하고 공감할 때, 그 에너지는 집단 전체로 번져 정서적 탄탄함을 구축하고 관계의 깊이를 향상합니다. 슬픔은 혼자 감당할 때보다 나누었을 때 그 치유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집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슬픔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다시 일어설 의지조차 상실한다면, 그 무리는 아쉽지만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슬픔을 공유하되, 적당한 선에서 위로와 지지를 주고받으며 다시 '재동기부여'의 궤도로 복귀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결국 추구하는 방향성은 슬픔의 늪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향한 건강한 발걸음이기 때문입니다.


'강함'이라는 이름의 나약한 가면

사실 저는 방금 말한 슬픔의 사회적 기능 때문에 오랫동안 이 감정을 배척해 왔습니다. 제 눈에 슬픔은 그저 나약함의 상징으로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위로를 구하는 것 자체가 비참하게 느껴졌고, 제 슬픔이 공유된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습니다.


"슬퍼도 울지 마라. 덤덤히 받아들여라. 나약함을 드러내지 마라. 별일 아니다 아들아, 강해져라. 네가 슬퍼하면 남들이 물어뜯을 것이다. 강함을 보여라. 속으로만 슬퍼하고 보내줘라."


이런 말들이 제 삶의 지침이었습니다. 전 슬픔이 곧 패배라 믿었습니다. '뭐 하러 울지? 그게 그렇게까지 슬픈 일인가?'라는 생각조차 잘못되었다는 걸 당시엔 몰랐습니다. 극도로 이성적인 척했지만, 사실은 이기적이고 공감이 결여된 상태였을지도 모릅니다. 슬퍼할 시간조차 아까워했고, 운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슬픈 상황이 닥치면, 저는 그것을 오로지 '성장을 위한 연료'로만 치환했습니다. 슬픔을 성장을 위한 차가운 데이터로만 썼고, 감정 그 자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부산물로 취급했습니다.


통제된 감정이 청구하는 뒤늦은 세금

그런데 슬픔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사실을 저는 뒤늦게서야 온몸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억지로 슬픔을 통제하고 억눌렀던 것에 대한 '감정의 연체료'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퇴적되는 것이더군요. 요즘은 가끔씩 혼자 있을 때 이유 없는 눈물이 나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우울함이나 무기력함이 저를 덮치기도 합니다. 전 어리석게도 직접 경험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는 성격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시뮬레이션'을 배운 이후로 큰 실수는 하지 않으며 살아왔지만, 감정만큼은 시뮬레이션만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었습니다.


슬픔은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따뜻한 신호입니다. 이제는 슬픔을 성장의 도구로만 소비하지 않으려 합니다. 때로는 그저 슬퍼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슬프면 울고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