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이 말하는 버섯의 세계
들어가기에 앞서, '덕후' 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가? 일본에서 어떠한 분야에 과하게 몰입하는 이들을 칭하는 단어, '오타쿠' 에서 출발한, 과할 정도의 매니아를 지칭하는 말이다. 나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어떤 분야에서는 조금씩 덕후일지도 모른다. 내게 친숙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덕후' 성향이 있는 책으로 먼저 물꼬를 터보자면, 나는 어릴 적 마녀라는 허상의 존재를 다룬 백과사전 같은 책을 무척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도 아닌 초등학생 시절, 도서관의 하얀 백열등 아래에서 그 책을 몇 번이나 반복해 읽던 장면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 기억이 유독 각별하게 남은 이유는, 그 책이 마치 ‘덕후’가 쓴 무언가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허구의 존재를 다루었음에도 생동감이 넘쳤고, 동시에 그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과 상상력이 페이지마다 배어 있었다. 그런 책과 어린 시절을 보낸 나였기에,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을 만난 일은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버섯을 이렇게까지 진지하고 집요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다룬 책을 또 만날 수 있을까?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은 2024년 볼로냐 라가치 논픽션 부문 대상을 수상한 지식 그림책이다. (다소 생소한 분야였지만, 그림도 글도 좋아하는 내게는 안성맞춤인 분야였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수상작’이라 부르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이 책은 한 분야를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들, 그러니까 덕후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는 책이다. 버섯이라는 다소 낯선 주제를 붙들고, 그 세계를 가장 매력적인 방식으로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버섯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설정이다. 식물도 동물도 아닌 균류로서의 정체성을 ‘독립 선언’하듯 선포하는 첫 장부터, 8억 년에 달하는 역사와 신화, 생물학적 특성, 약효, 공생 관계, 심지어 ‘미스 버섯 유니버스’ 대회에 이르기까지, 페이지마다 버섯 세계의 이모저모가 빼곡히 담겨 있다. 생물학적 정보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화와 상상력까지 끌어안는 확장된 서사는 놀라울 정도로 즐겁게 전개된다. 이쯤 되면 글쓴이가 정말 ‘버섯’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10권의 버섯 잡지를 모아놓은 통권 형식은 '지식 전달' 이라는 다소 딱딱한 목적과 형식을 부드러운 형태로 바꾸어 놓는다. 어느 순간 독자는 관찰자가 아니라, 버섯 잡지의 열혈 구독자가 되어 있다.
이 책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래픽 아트로서의 완성도다. 무려 14가지 별색 인쇄로 구현한 버섯의 색채는 단순한 삽화를 훌쩍 넘어선다. 정보가 빼곡히 담긴 페이지임에도 부담스럽기보다, 다음 장을 넘기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형광에 가까운 색, 깊고 어두운 숲의 색, 미묘하게 겹쳐지는 질감은 한 페이지 안에서 긴장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버섯 특유의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형태는 '다니엘라 올레이니코바'의 그래픽 감각을 통해 더욱 또렷해진다. 단면도처럼 보이면서도 장식적인 레이아웃, 정보와 이미지가 촘촘히 엮인 지면 구성은 마치 한 권의 실험적인 아트 북을 마주한 듯한 인상을 남긴다. 지식과 디자인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책은 하나의 오브제가 된다고 느끼는데,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식물도 동물도 아닌, 그러나 인간의 삶과 깊이 얽혀 있는 존재. 이 책을 덮고 나면 버섯은 더 이상 숲속의 장식물이 아니다. 하나의 독립된 세계이자, 오랜 역사와 문화, 아름다움을 지닌 주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를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버섯 덕후들의 잡지를 한 권, 아니 열 권 모두 정독한 셈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덕후에 대한, 덕후에 의한, 덕후를 위한 책이다. 한 대상을 끝까지 탐구하고, 사소한 디테일까지 사랑하는 태도.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은 그런 태도로 만들어졌고, 그 태도는 읽는 이에게도 자연스럽게 옮겨 붙는다. 버섯을 존중하고 배려해 달라는 책의 목소리는 단순한 환경 보호의 메시지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쉽게 배경으로 밀어두었던 존재들을, 다시 한 번 주인공으로 호명하라는 제안에 가깝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은 버섯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끝까지 좋아해도 된다는 감각. 한 세계를 집요하게 사랑해도 괜찮다는 확신.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은 그렇게, 덕후의 태도를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증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