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집 안으로 들어온다 - 연극 [튤립]

전쟁이 바꾼 개개인의 얼굴에 대하여

by 윤소영

어릴 적, 다소 지루했던 역사 수업 시간에 수많은 전쟁에 대한 사실을 배우며 무언가를 느끼거나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안일한 생각이지만, 내가 알아야 하고 외워야 하는 것이라곤 전쟁이 일어난 년도와 그 전쟁으로 인해 맺어진 조약, 혹은 넓혀진 영토 등이 전부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전쟁 속의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외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문화예술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전쟁을 겪은 이들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피해자나 약자의 모습으로도, 혹은 강자나 가해자의 모습으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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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파구의 창작극 [튤립] 역시 그러한 지점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전쟁을 거대한 사건이나 역사적 장면으로 재현하기보다는, 그것이 인간의 삶 속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전쟁'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장면인, 총성이 울리고 군대가 등장하는 모습은 무대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전쟁은 인물들의 말과 선택, 그리고 무엇보다도 침묵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러일전쟁 이후의 시간에서 출발해 만주와 경성, 연해주를 지나 도쿄의 한 가정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전쟁은 더 이상 멀리 떨어진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이름이 되고, 한 집안의 질서가 되며, 관계를 결정짓는 방식이 된다.

가족과 고향을 잃고 일본식 이름으로 살아가는 조선인 남자 쿠로와 ‘튤립’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 쥬리프, 그리고 평온해 보이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 야마토와 에리코, 그 집 안을 지켜보는 미호까지. 다섯 인물의 일상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안에는 전쟁이 남긴 균열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무대는 한 공간에 머물러 있지만, 그 안에는 여러 시간들이 겹겹이 흐른다. 인물들의 대화와 시선, 그리고 말해지지 않는 감정들이 교차하며 관객에게 전쟁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전쟁은 단지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가 승리하는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관계의 방향을 뒤틀어 놓는 잔혹한 구조임을 이 작품은 조용히 드러낸다.

이러한 구조를 보여주는 연출의 방식 역시 인상적이었다. 마이크를 통해서가 아닌, 배우의 육성으로 텍스트를 직접 전달하면서도, 재현과 거리두기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는 연출은 관객이 이야기에 몰입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하나의 공간 안에서 시간이 겹쳐지고 감정이 축적되는 방식은 무대 위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게 만들며,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결국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특히 다섯 배우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긴장 또한 이 작품의 중요한 축이라고 느껴졌다.

아주 격렬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 대신, 눈빛과 침묵 속에서 서서히 변해가는 감정들이 무대를 채운다. 누군가는 지키려 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려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그 선택들이 결국 서로를 흔들어 놓는다. 그런 점에서 [튤립]은 전쟁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인간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전쟁은 역사책 속 사건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이름이 되고, 한 집안의 균열이 되며,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삶 속 어딘가에서 이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역사 수업 시간에 우리가 배워야 했던 것은, 전쟁이 일어난 년도나 조약의 이름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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