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사정으로 내용을 수정하고 추가해서 다시 올립니다
[-0: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어요]
어째서 나는 읽지도 않을 만화책, 좋아하지도 않는 캐릭터의 피규어, 봐도 봐도 재미없는 애니메이션을 억지로 즐기려 했을까? 어째서 나는 인터넷 공간에서 악플을 달고 익명성의 방패 뒤에 숨어 비겁한 짓을 일삼는 인터넷 공간의 무뢰한들의 방종을 그토록 동경하며 스스로를 현실에서도 가상에서도 겁쟁이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세되어 버린 공격성을 그리워한 것일까?
아마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일 거다. 나는 그런 일들을 내심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은 다르다는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런 한심한 일들을 스스로가 하게 된다면 스스로를 견딜 수가 없었기에 묶여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특별하다.’ 평생에 걸쳐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남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것도 내가 모난 돌이었기 때문이야. 언젠가는 내 모난 부분이 개성이 되어 빛을 발할 날이 올 거야. “ 정도의 어리숙한 생각일 것이다. 이 생각이 처참할 정도로 산산조각 난 건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도, 익히지도, 쌓아 올린 것조차도 없었다. 그저 근거 없는 자신감의 잔재만이 점차 재가 되어가는 것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이런 게 나였다고? 안돼, 나는 남들보다 뛰어나고 우월해야 하는데.”
”이상적인 ‘나’가 아니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
거북이에게 추월당한 토끼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나는 공포에 휩싸여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몇 번이고 이상적인 ‘나’가 되기 위해 성장통이라는 명목으로 강박에 가깝게 스스로의 정신을 자해하였다. 그것이 굳은살이 박이는 과정이라 믿으며. 그러나 박차만을 가하기만 한다면 말은 멀리 달리지 못한다. 내면의 나와의 교감 없이 스스로에게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해 체벌을 가한 끝에 나는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반항심리랄까, 나는 ‘나’가 요구했던 것과 정반대가 되고 싶어졌다. 한심하고 비겁하고 지질한 생활을 구가하고, 그런 자신의 역겨움을 가상공간에서 숨김없이 방출하는 그런 인간이. 그러나 ‘나’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포장조차 뜯을 수 없었던 라이트 노벨 표지가 더 이상 내가 서 있을 곳이 없음을 고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가상에서도.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다는, 이 문제에 대한 너무나도 간단한 해답을 당시까지 나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생각하는 걸 용납하지도 않고 있었다.
[-1: 유년기의 끝]
...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한 데에 구체적인 근거나 확신 같은 것이 동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남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 폼을 잡고 다니며 수박 겉핥기로 배운 지식으로 자신을 치장하다가 나 또한 스스로에게 속아 넘어간 게 화의 근원이었다.
“이런 걸 지적 허영심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바보 같아, 마법처럼 어느 순간 알을 깨고 아름다운 새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나는 그저 믿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나의 알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 나는 어린아이를 골려주기 위해 만든 화려한 껍질의 이스터에그, 그 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우스꽝스러운 장난감에 불과해. 아... 어째서 모든 게 끝난 뒤에 깨닫는 걸까.”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 이대로 아무것도 쌓아 올리지 못한 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모두에게서 잊히고 싶지 않아. 만약 이대로 끝나버린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아직 나의 길이 이어지고 있음을 믿고 싶었다. 하얀 머리의 소년이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래... 너무 오래 쉬었어. 이젠 가야 해. 이 놀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뒷골목의 타일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니까...!”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비로소 인지하고 비로소 세상의 껍질을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직후에, 평생에 걸쳐 축적된 에너지가 폭발하듯 거센 발길질과 함께 축복이자 저주와도 같은 황홀한 태양빛의 환희가 몰려왔다. 나의 유년기는 그제야 끝이 났다.
[-2: 태양을 짊어진 시지포스]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때의 황홀함이 나 자신마저 불살라버리는 통제할 수 없는 불꽃이었음을 잘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평생을 거짓으로 꾸미며 살아온 나는 내가 어느 정도 그릇의 장작 인지는커녕, 자신의 몸에 불이 붙은 줄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스스로에 대해 무지했다.
순간의 황홀하고도 폭발적인 의욕과 영감은 나를 비로소 ‘나’로 있게 해 주었지만, ‘나’는 너무나도 빠르게 나에게서 분리되어 나가 버렸고, 혼자 남은 초라한 나를 채찍질하고 비난해 댔다.
나는 나여서는 안되었다. ‘나’였어야 했다. 나는 저물어가는 태양을 온몸이 타들어가면서 푸른 하늘에 붙잡아두려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태양은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달아나버렸고, 나는 다시 해가 뜰 날만을 기다리며 화상투성이의 몸을 혹한의 추위에 던져놓는 미친 짓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다시 태양이 뜨는 날 태양을, ‘나’를 푸른 하늘에 완전히 붙잡아 놓기 위해. 어느 불꽃에도 녹아내리지 않을 강철과도 같은 정신을 단련하기 위하여.
[-3: 인간 실격, 그리고 쓰레기 실격]
“그만하고 싶어. 정말 정신이 찢어지는 것 같아.”
“너는 남들보다 우월해야 해, ‘나’처럼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넌 대체 뭘 위해 존재하는 거야?”
“세상에 나보다 더 못한 사람도 많잖아, 그러니까 제발, 제발... 나를 용서해 줘...”
“개들은 쓰레기나 다름없어! 너도 그들처럼 평생 방구석에서 틀어박혀 사회의 쓰레기인 채로 부모님 등골이나 빨아먹고 싶다면 그렇게 하던가!”
“그렇게 해서라도 이 고통에서 벗어나 안식을 취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어!”
나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함은, 역으로 말하면 남을 열등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나는 남을 혐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죽도록 미워하고 되고 싶어 하지 않은 인간상. 냄새나는 오타쿠, 멍청한 SNS 중독자, 열등감에 찌든 악플러. 나는 그들을 멀리서 관망하고 그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며 그들과는 다른 스스로에 대해서 우월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 나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내가 내 의지로 그런 존재가 되길 바라리라고는...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나는 용서받고 싶었다. 원초적인 행복을 누리며 마음에 한 점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뻔뻔한 인간을 동경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알게 무엇인가? 당시 나는 ‘나’에게서 벗어나 행복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만 있을 것 같았다.
오글거리는 긴 제목의 라노벨, 원색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이 난무한 저질 만화들을 나는 생필품 마냥 수집하기 시작했다. 알바를 통해 번 돈은 전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사는 게 들이부어 버렸다. 변태적인 복장의 피규어는 나에게 이제 같은 값의 두꺼운 전공 도서보다 유의미한 소비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나는 드디어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나야말로 오늘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기대와 희망에 가득 차 우스꽝스럽게 기다란 제목을 한 라 노벨의 1권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때 느낀 감정은 아직 생생하다. 내 몸 안에 피와 살이 아닌 기계장치와 기름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서 작위적인 거부반응이 기계적으로 나타나며 나는 라 노벨의 초입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그대로 던져버렸고, 이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나’의 그림자를 쫓아가며 스스로 정신에 대못을 박는 정신 나간 생활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4: 모르포나비]
나는 나누어지고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한 마리 쓸모없는 갑충과 ‘나’의 원형에서 멀어져 가며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나비로. 그리고 나비는 더 이상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비는 나를 위로해 주고, 나에게 달콤한 환상을 보여다 주었다. 그 환상 속에서 나는 갑충이 나비인지, 나비가 갑충인지 모를 꿈을 꾸고 있었고, 나비가 보여주는 환상의 나라에서 나는 비행기 조종사가, 용감한 전사가,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나의 내면에 잠재된 어리숙하고 유치한 심지어는 뒤틀리기까지 한 변태적 욕망을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간헐적으로 나는 잠에서 깨어나 갑충의 모습에서 꿈속에서 선망하던 아름다운 나비로 우화 하여 진정한 ‘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비가 보여주는 환상은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영원히 마음의 구멍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나는 점차 갑충의 모습으로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났고, 나비는 처음의 원형에서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닿을 수 없는 존재로 변질되어 이제는 마치 소름 끼치는 새까만 망령과도 같은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망령에게 계속해서 빌어댔다.
“제발, 제발 다시 당신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제발 다시 나를 비춰줘요, 나의 태양, 당신이 나를 비춰주지 않으면 나는 이제 살아갈 수 없어요.”
그러나 망령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이제는 계속해서 같은 영상을 틀어주는 영사기처럼 같은 권태로운 환상만을 상영하는 채로 나의 부름에 답하길 거부했다. 망령이 떠나가고 남은 서리 벌판에서 내가 정신이 아닌 육체에 칼을 들이댈 때 즈음 권태로운 환상은 완전히 내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환상은 모르핀처럼 현실의 결함에서 비롯된 고통으로부터 나를 일시적으로 편안하게 해 주었지만, 환상이 끝나고 나서는 그 배의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쉴 틈 없이 모르핀을 정신에 주입하며 고통을 잊고 원색적 쾌락에 모든 걸 맡기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내 모르핀이 그 효과를 다하였을 때, 바닥에는 선홍색의 피가 흩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