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하루, 나에게 다가가기
특별할 것 없는 오늘이, 어쩐지 조금은 특별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오히려 더 풍요롭게 느껴졌다.
예전의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믿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엔 늘 죄책감이 따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쉬는 것도, 멍하니 있는 것도,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걸.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잔잔한 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리고, 희뿌연 하늘 아래로 세상이 조용해졌다.
그날은 하루 종일 집에서 책을 읽었다.
거실에 앉아 담요를 덮고,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좋아하는 문장을 천천히 음미했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내렸다.
따뜻한 머그를 손으로 감싸쥐고,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알람 소리에 쫓기듯 눈을 뜨던 아침이 있었다.
정신도 차리기 전에 핸드폰을 먼저 들고, 오늘의 회의 일정과 쌓인 메시지를 확인하며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괜찮아, 다들 이렇게 사는 거니까’라고 되뇌이며, 틈틈이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 말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마치 남의 삶을 빌려 사는 기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끝에서 ‘퇴사’라는 선택을 했다.
무언가를 그만둔다는 건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감각이 더 짙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많은 걸 잃지 않았고, 생각보다 많은 걸 얻었다.
퇴사 후 맞이한 첫 아침.
창문을 넘어 들어온 햇살에 눈을 떴다.
시계는 아홉 시를 넘기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초조하지 않았다.
출근길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이렇게까지 평온해질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처음 알았다.
창가에 앉아 프렌치프레스로 천천히 커피를 내렸다.
주방 한쪽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고, 원두의 향이 은은히 퍼지는 공간.
잔에 담긴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이 순간,
하루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위안처럼 다가왔다.
예전 같았으면 ‘비 오는 날엔 괜히 우울해져’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비는 내 마음속 먼지를 조용히 씻어내리는 것 같았다.
혼자 있어도 괜찮고, 조용히 머무는 시간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느꼈다.
물론, 퇴사 이후의 삶이 항상 여유롭고 반짝이는 것만은 아니다.
불안도 찾아오고, 가끔은 ‘내가 잘 가고 있는 걸까’ 의심도 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이 평온한가?”
그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집순이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천천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우는 연습.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연습.
집이라는 가장 솔직한 공간 안에서, 나는 조금씩 나에게 다가가고 있다.
나는 이제 집순이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반신욕을 하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내가 직접 만든 간단한 브런치를 차려놓고 작은 파티를 연다.
요란하지 않지만, 마음이 기분 좋은 순간들.
밖에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충분히 나다울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진짜 나에게 조금 더 가까워졌다.
집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일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진짜 나로 살기 시작했다.
집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일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고요한 시간들이 쌓여
내가 꿈꾸던 삶의 모양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