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아래 앉아 계절의 속삭임을 듣는 시간
예전엔 계절이 이렇게 조용히 스며드는 줄 몰랐다.
늘 바쁘게 움직였고,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다.
봄이 오면 벚꽃 인파 속을 걸었고, 여름이 오면 에어컨 아래서 더위를 견뎠고,
가을이 오면 빨갛게 물든 은행잎을 밟으며 퇴근했고, 겨울이 오면
두꺼운 코트 깃을 세우고 바람을 피하듯 걸었다.
그 모든 계절은 ‘스쳐지나가는 풍경’ 같았다.
그리고 나는 계절을 감상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왔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나의 리듬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계절을 천천히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창밖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커튼을 젖히고 빛이 천천히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날따라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예전엔 몰랐다.
봄바람과 가을바람이 이렇게 다르고,
겨울 공기는 유리창 너머로도 차가움이 느껴진다는 걸.
지금은 아침마다 작은 날씨 일기를 쓴다.
날짜 옆에 그날의 하늘색, 공기의 냄새, 창밖 풍경 같은 걸 짧게 적는다.
"3월 19일. 햇살이 부드럽고 공기가 약간 습하다.
옆집 베란다에 민들레가 피었다."
이렇게 짧은 문장이지만, 그런 기록이 쌓일수록
내가 이 계절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요즘은 봄이다.
아직은 쌀쌀한 공기가 남아 있지만, 분명 겨울과는 다른 부드러움이 있다.
나는 가끔 창을 열고 깊게 숨을 들이쉰다.
흙냄새, 바람냄새, 햇살냄새.
이 모든 게 계절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집 안에서도 나는 계절을 누릴 수 있다.
햇살 좋은 날엔 거실 바닥에 얇은 담요를 깔고 앉아 책을 읽는다.
스탠드 조명 대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만 방을 밝히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하다.
커피를 내리고,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틀고,
그저 조용히 앉아 바깥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바라본다.
그게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을 즐기는 방식’이다.
예전의 나는 늘 무언가를 ‘하러’ 나가야 계절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봄엔 꽃놀이, 여름엔 바닷가, 가을엔 단풍 산책, 겨울엔 크리스마스 마켓.
계절을 기념하려면 ‘행동’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계절을 ‘조용히 맞이하는’ 법을 배웠다.
봄이 되면 나는 식탁 위에 꽃을 하나 꽂아둔다.
꽃가게에서 무작정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골라와
예쁜 병에 담아놓는다.
며칠 뒤 시들어가는 모습까지 유심히 본다.
생기가 느리게 빠져나가는 모습조차
그 계절이 흘러간다는 걸 알려주는 풍경이 된다.
여름이 오면 방 안에 손선풍기와 얇은 리넨 시트를 꺼내고,
창문을 더 자주 열게 된다.
아침 햇살이 쨍해지고, 바닥의 그림자가 또렷해질수록
나는 여름의 기척을 느낀다.
오후엔 자주 시원한 탄산수를 꺼내 마시고,
저녁엔 냉수 샤워를 하며 하루를 식힌다.
가을이 오면 나는 커피를 따뜻하게 바꾸고,
좋아하는 시집을 다시 꺼내든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엔 창틀에 앉아 음악을 듣고,
방 안에 계피 향을 피운다.
그 향은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주던 조청의 냄새를 닮았다.
그래서 가을이 오면 나는 조금 더 느슨해지고,
조금 더 그리워진다.
겨울이 오면 반신욕과 따뜻한 담요,
그리고 소복하게 쌓인 이불 위에서 보내는 밤이 많아진다.
초 하나 켜놓고, 어두운 방 안에서 조용히 손을 녹이며
‘그래도 오늘 잘 지냈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덮는다.
밖은 추워도, 이불 속 나만의 계절은 언제나 따뜻하다.
나는 이제 안다.
계절은 밖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집 안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감각은 오히려 더 섬세하고,
더 다정하게 마음에 남는다는 걸.
집이라는 공간은 외부 세계를 완전히 차단한 곳이 아니라
계절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는 ‘프레임’이다.
창문은 내게 계절을 들여오는 문이 되고,
햇살은 하루의 기분을 바꾸는 조용한 손짓이 된다.
예전엔 빠르게 지나쳤던 계절이,
지금은 느리게 머문다.
그 속에서 나는 오늘의 나를 발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순간들.
창밖으로 계절이 지나가는 걸 바라보는 일.
그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