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포에 가면 젊어진다." 내가 나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자연경관이 특이하고 볼거리가 많고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한 곳인데 왜 요즘은 방문하지 않느냐고 어젯밤에도 나는 나에게 질문했다. 그러면 나의 그림자와 나의 거울은 금세 한몸이 되어 정확히 대답한다.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버스는 못 타고 운전을 하지 않는다가 두 번째 이유라고.
각설하고 오늘은 큰맘 먹고 장생포와 고래의 시간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오후 두 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아마도 오늘 저물녘 노을도 홍시 입술처럼 달큼할 것 같다. 아까 도톰한 양말을 꺼내 신을 때는 나의 발뒤꿈치가 까칠해져서 태양의 뒤통수에다 대고 무엇이라고 중얼거린 것이 분명했다. 상강(霜降)이 가까워지고 있음이라는 말일 것이다.
승용차를 타고 송정동을 지나 명촌교를 건너가는데 태화강 상류 쪽 풍경이 장관이다. 갈대들이 은빛 물결처럼 굽이친다. 태화강은 파리의 세느강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한 어느 작가의 말이 참이었다. 태화강 하류로 내려가면 먼저 현대자동차공장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미포조선이 인사를 하고 이어서 정유공장도 인사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울산의 공장들을 치어다보면 "우리의 울산, 울산의 희망" 이란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울산대교 아래를 지나가니까 급작 양죽마을 ‘망제산’이 떠오른다. 경상일보[울산화첩-장생포와 고래마을]에서 만난 그 망제산, 그 망제산이 여기 어디쯤에 있다고 했는데 그 산이 있었던 곳은 진정 어디일까. 그리고 망선대는 또 어디쯤에 있었을까. 나는 몹시 궁금해하면서 지나간다.
드디어 선사시대부터 고래의 삶과 함께 한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고래문화마을은 지난여름에 모노레일을 타고 지나갔을 뿐이다. 오늘은 도보로 5D입체체험관과 고래조각공원까지 세심히 둘러볼 참이다. 사실 나에게는 장생포 방문은 드문 일이다. 문학 행사 후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둘러볼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고래바다여행선을 타봤지만 고래를 보지 못했다.
지난여름 휴가 때는 딸의 가족이 울산에 와서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고래'라는 이름만 불러도 귀가 쫑긋해지고 두 눈이 반짝거리는 외손자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장생포에서 한나절을 보냈었다.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울산함 등을 둘러보았다. 가족 네 명이 모노레일을 탔지만 고래문화마을은 그냥 지나쳤다. 땡볕 더위라 도저히 어린 손자를 데리고 중간에 내릴 수가 없었다. 모노레일에서 하차해 울산함 쪽으로 걸어가는데 아이가 힘들고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 졸였다. 그런데 오히려 기뻐하며 힘차게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었다. 대왕고래만큼이나 큰 배도 좋아한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특이한 것은 할아버지와 울산함 내부를 둘러보는데 외손자는 무엇을 안다는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선내 시설물을 보고 설명을 하면 가만히 엿듣고 있다가 할아버지가 하는 대로 조작해 보는 것이었다. 남자 아이라 그런지 배 안의 기계와 물품에 관심이 많았다.
갓 세돌 지난 아이인데 고래와 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고래 모양이 붙은 물건은 모두 제 것인 양 욕심을 냈다. 대형 수족관 앞에서는 얼마나 큰 소리로 고래를 부르는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민망할 정도다. 귀엽고 건강한 아이 웃음소리는 그들에게는 소음이 아니었다. 고래가 나오는 영상을 볼 때는 마치 귀신고래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신비함과 평온함을 느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걷이가 끝나고 십일월이 되면 다시 울산으로 오게 해서 장생포로 달려가리라, 다시 행복한 고래가족이 되어보리라, 긴 여운을 남기고 귀가했었다.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고래 조각공원에는 빛의 영상으로 귀신고래의 시간을 소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무렵에서 오늘날까지 남녀노소가 겪은 지난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울산 장생포 일대에서 귀신고래를 목격한(미국 탐험가이자 고고학자) '로이 체프먼 앤드류스'와 포수와 선장 이야기도 알 수 있었다. 추억의 서점, 음악다방, 삼천리 복덕방, 연탄가게, 중화요릿집, 체육사, 달고나와 별뽀빠이를 파는 동네점빵, 두레박과 우물, 고래국수, 우체국, 고래해체장모형 등은 나의 기억 저편 잠자고 있던 비밀도 풀어헤쳤다. 그리고 풍금과 종소리가 사는 장생포 초등학교는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잠시 우물가 옆에 있는 기다란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동네점빵에서 구입한 별뽀빠이 한 봉지를 꺼내서 조금씩 먹었다. 구불구불한 골목이 활짝 핀 해국을 꽂고 혀 안으로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한 번씩 별의 궁(窮)이 반짝거렸다. 새끼 고래가 이빨과 이빨 사이를 헤엄쳐가는 것도 같았다. 5D입체체험관에서 느꼈던 고래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맛있는 별뽀빠이는 순식간 사라지고 빈 봉지만 바스락거렸다.
그 시절 어른들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래를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꿈 많은 소년소녀들은 열심히 학교에 다니면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어른 고래의 꼬리를 붙잡고 이 골목 저 골목을 오르내리며 굴곡진 사춘기를 보냈을 것이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고래를 그리워하면서.
왜 타지인은 울산을 공업도시로만 생각할까. 왜 울산만 오면 장생포 고래 고기를 생각할까. 나는 위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고래 고기를 먹지 않는다. 고래 고기를 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내가 울산에 살면서도 울산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이 많았으니까 더 마음이 불편했는지도 모르겠다.
왜 이름이 장생포일까. 도대체 장생포는 어떤 곳이었을까. 위의 궁금증이 조금씩 풀리고부터는 장생포를 좋아하고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의 장생포 방문은 오늘이 네 번째이지만 단체 방문객이 많아서 마음이 뿌듯했다. 옛 장생포 초등학교 교실 복도에 걸린 사진을 감상하니 어쩔 수 없이 집을 옮겨야 했던 마을 사람도 생각났다. 그 당시 아름다웠던 해변, 방어진과 장생포를 상상하면서 학교 담벼락에 걸린 종을 세 번 쳤다. 그리고 어린 고래 울음소리를 내며 운동장을 여러 번 돌았다. (이강하)
―2022년 11월, 울산《남구문화원지》 20집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