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하
빗방울은 혼자서 소리 낼 수 없다 어딘가에 부딪혀야 제 소리가 난다 피투성이가 되어 그 피투성이가 다시 쪼개어져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상대가 곧 나다
들어보라, 벽과 벽 사이 우산과 걸어가는 소녀의 가슴 치는 소리를 소녀의 어깨 위로 벌레 먹은 담쟁이 잎이 구겨지면서 돋아난 아릿한 정적을 후드득 구멍과 구멍 사이를 위로하는 명징한 소리를 그 소리들이 양철지붕을 통과하는 사이 우리 사이는 너무 현란해졌어 밤의 밑바닥을 굴리는 태양의 간주곡 같아
서로의 마음을 세심히 살펴볼 겨를도 없이 금세 가늘어지기도 하지 깊이 울음 삼키며 스며들지 그 어떤 경계의 혼적도 없이 나를 완전히 감춘, 누군가가 되었다가 다시 어딘가가 되는
빗방울은 닿는 것들에 자유롭다 큰 것에는 굵어지고 작은 것에는 가늘어지는 그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피투성이가 되어 그 피투성이는 자꾸 쪼개어진다 누군가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숙명인 듯 어둠에 더 강하다
―시집 『파랑의 파란』(2021, 7. 시와반시)
빗방울은 온몸이 부서지는 소리로 자신을 알리고 상대를 알리고 나를 알리는 존재다. 자기 몸을 오롯이 다 던져서 스며들고 파고들면서 존재의 실상을 드러낸다. 부딪히면서 소리를 내어 존재를 들춘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없다. 감춰져 있고 어둠 속에 있는 것들은 빗방울의 헌신과 희생으로 살아나기도 한다. 빗방울은 스스로가 죽지만 세상의 모든 만물을 촉촉이 적셔 생명이 움트게 하는 속성이 있다. 빗방울의 죽음은 곧 생명이 있는 모든 초목을 살려낸다.
이 시의 핵심은 “누군가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숙명인 듯 어둠에 더 강하다”(「빗방울」)에 있는 듯하다. 어둠에 더 강하다는 것은 어두울 때 빗방울의 기능이 더욱더 두드러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 감춰져 있는 것들을 들춰내는 것이 비의 숙명이다. 이강하의 「빗방울」을 읽으며 떠오르는 단상을 적어 본다.(이송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