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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두람이 Jan 29. 2022

여행의 힘 6

평등을 꿈꾸는 세계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며 더불어 문화를 만들고 공유하며 소통하는 세계를 갖고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상의 무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문화는 도처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씨앗으로 꿈틀댄다. 그러다가 뿌리와 잎으로 꽃으로 열매로 각기 다른 성격의 형태로 선명하게 나타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라고 하는 의문을 갖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문화를 매 순간 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화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갈 때가 있다. 문화는 좀 더 편리하고 평온한 성격을 찾고 있기에 우리는 더 크게 눈을 뜨고 귀를 열어야 한다.      


생활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생활을 만들고 서로가 공존해가는 가운데 서로가 수평을 유지해간다. 가끔 나태해지는 일상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지 않는가. 우리는 날마다 긴장하고 변화하는 문화를 보다 슬기롭게 받아들이고 또 자신도 변화시켜야 한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 문화도 새롭게 탈피하고 있다. 좀 더 아늑하고 지적인 자연을 만들기 위해 봄이 되면 각종 나비가 태어나듯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성충 나비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인간에게도 의식주의 해결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문화는 인간에게 큰 힘을 준다. 내일을 꿈꾸게 한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세상,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으로 치닫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그런 세상이 되었다. 부자는 부자의 수준에 맞는 문화가 가난한 자는 가난한 수준에 맞는 문화가 맞춤식으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는 종종 상상했다.    


온 세계에 공평하게 경제력이 넘쳐난다면 나라마다 무슨 큰 고민이 있겠는가. 어떤 문화를 접하고 어떤 문화가 유용해서 사람들에게 큰 효과를 불러온다면 삶의 의미로 달라지겠다는  상상을 한다. 또 어떤 인연으로 어떤 계기로 특정 부분의 공연을 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 있어서도 그런 봄날의 계기가 있었다.


울산광역시 장애인식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공연 티켓을 선물 받았다. 울산의 장창호 작가께서 연출한 뮤지컬 공연 ‘충신 박제상’이었다. 그때가 2010년 4월 16일 오후 5시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의 공연이었다. 놀라운 것은 공연장 분위기가 엄숙하면서도 참 편안했다. 조용한 가운데 막이 오르고 열렬한 노래극이 많은 관객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어투와 행동이 다소 서툴렀으나 사투리로 맛깔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들이 좋았다. 거동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천상의 목소리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한 여성의 목소리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총 28명의 순수 장애인으로만 구성된 것이 크나큰 이슈였다. 그날 그 순간만큼은 모든 출연진들이 당당하고 멋졌다. 관객은 관객대로 출연진은  출연진대로 함께 울고 웃는 평등을 꿈꾸는 세계였다. 앞으로도 이러한 공연이 자주 열리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소통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그런 문화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후, 시 한 편 ‘맹인(盲人)’을 썼었다.  


어떻게 맹인이 되어보지 않고 이런 감각적인 시가 나올 수 있냐고 어느 지인이 나에게 말한 적 있다. 사실 오래전 남편과 부부 감성토크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내 신체에 큰 장애가 찾아와 수술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시작장애인, 남편은 비시각장애인이라 정했다. 나는 눈에 안대를 하고 남편은 나의 지팡이로 부부가 함께 소통하는 놀이문화였다. 나는 안대를 하고 걷고 남편은 옆에서 걷거나 앞에서 걸으면서 지팡이가 되어주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면서 힘든 고비도 많았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기도 했다 안대를 벗으면 금방이라고 저 멀리가 될 것만 같았는데 멀 리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나보다 더 신체가 불편한 분들도 이렇게 힘든 고비를 견뎌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  


몇 년 전부터 지적장애인 복지관에 봉사를 가곤 했었지만 나는 이미 마음은 장애인이었다. 자주 몸이 불편하다고 핑계 아닌 핑계로 나태한 마음을 보일 때가 많았다. 어떤 일이든 자신 있게 도전해야 하는데 신체 탓만으로 오랜 시간을 낭비한 세월이 안타깝다. 누구나 세월이 가면 신체가 고장 나고 죽음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는 법인데 흔들리는 어제의 고통에 자주 머물러 나약한 마음을 글로 내보일 때가 나는 가장 부끄럽다. “지금이 ‘최악’이라고 말할 기력이 남아 있다면 아직은 최악이 아니다”라고 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 명언이 지금 현재 나에게 큰 채찍으로 다가온다.(이강하)  



─2015년 4월 2일 울산매일신문[문화산책] 게재,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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